올해 들어 1달러대까지 급락했던 정제마진이 최근 4달러대까지 올라서면서 정유업계에 봄바람이 불고 있다. 국제유가와 정제마진 하락으로 지난해 유탄을 맞았던 정유업계의 실적 개선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14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3월 첫째주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국내 정유사 정제마진 기준이 되는 공개지표)은 배럴당 4.2달러를 기록했다. 1월 넷째주(배럴당 1.7달러) 바닥을 찍은 뒤 6주 연속 뛰어오르며 연중 최고치를 찍은 것이다.
정제마진은 휘발유ㆍ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구매비용과 수송비 등 각종 비용을 뺀 금액으로, 정유업계의 실적을 결정하는 주요 지표다. 보통 정제마진이 4달러를 넘겨야 정유사에 이익이 남는다. 정제마진이 그에 못 미칠 때는 석유제품을 팔수록 손해를 본다는 얘기다. 실제 지난해 4분기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 4사의 영업손실 합계액은 1조136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7달러를 웃돌던 정제마진이 4분기엔 배럴당 2.8달러(3분기 3.2달러)까지 급락한 탓이다.
정유업계의 시름을 깊게 하던 정제마진이 반등에 성공한 건 미국 정유회사의 정기보수로 석유제품 재고량이 줄었기 때문이다. 정유사들은 보통 2, 3년 주기로 정기보수를 진행한다. 전 세계 석유제품 공급의 약 19%를 담당하는 미국 정유사들이 잇달아 ‘개점휴업’ 상태에 놓이면서 공급이 줄어들자 석유제품 가격이 상승했고, 이런 분위기가 정제마진 급상승을 이끌었다는 얘기다. 조상범 대한석유협회 팀장은 “미국 정유공장 가동률이 지난해 연말 사상 최대인 97.4%에서 현재는 87.5%(이달 1일 기준)까지 내려간 상황”이라며 “미국인들이 자동차를 많이 타고 다니는 휴가철(6~9월)을 앞두고 미국 내 주유소 등에서 앞다퉈 휘발유와 경유 비축에 나선 것도 정제마진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메리츠종금증권이 최근 내놓은 ‘미국 정유사 정기보수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정기보수 예정인 미국 정유사 21곳 중 19곳이 2~5월 사이에 정기보수 일정을 잡았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지난해 4분기 대거 영업손실을 기록했던 국내 정유사의 실적 역시 크게 좋아질 가능성이 높다. 최근 국제유가가 상승하고 있는 것도 이런 분위기를 뒷받침하는 요인이다. 국내 정유업체 관계자는 “정제마진과 국제유가가 함께 오른다는 건 실적 개선에 분명히 긍정적인 신호”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벌써부터 실적 개선을 기대하는 건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나온다. 황규원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정제마진이 최악의 상황을 벗어난 건 맞지만 아직 예년 수준은 회복하진 못했다”며 “중국과 말레이시아의 신규 정유설비가 가동을 앞둔 만큼 안심하긴 이르다”고 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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