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 불구 수백명 모여 집회… “문 대통령 관심에 감사” 편지 전달
노조 “잠적한 사장은 10년 전에도 다른 지역서 비슷한 사건 일으켜”
“그 누구도 우리 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크지 않습니다. 법이 지켜지고, 기계가 아닌 인간으로 대접받고 싶습니다.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십시오.”
14일 오후 자카르타 시내 가톳 수브로토 거리에 위치한 주인도네시아 한국 대사관 앞. 베라와티 ㈜에스카베(SKB) 공장노조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담담히 읽어 내려갔다. SKB 노동자 100명과 인도네시아 섬유노조연맹(SPN) 조합원 200명이 함께 했다. SPN은 SKB를 포함해 650개 공장 노동자 32만명을 조합원으로 두고 있는 상급단체다.
베라와티 위원장은 “무엇보다 감사 드리고 또 감사 드린다, 대통령님이 우리의 어려움을 알고 한국 정부에 문제 해결을 지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노동자 4,000명이 속한 SKB는 한국인 투자자가 소유한 봉제공장으로 한국인 소유주들이 몇 달 전 아무런 통보도 없이 사라졌고, 우리의 임금과 사회보험료를 강탈했다”고 경위(본보 7일자 1, 2면)를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본보 보도가 나오자 즉각적인 상황 파악과 적극 대응에 나설 것을 정부기관에 지시한 바 있다.
노동자들의 요구는 명징했다. “빼앗긴 임금과 사회보험료를 돌려달라”는 것이다. 최소 5억원 이상으로 추정될 뿐 아직 정확한 금액조차 산정되지 않은 상태다. 그러면서 “우리의 재산을 강탈하고 우리의 안전을 파괴한 범죄자인 한국인 소유주들이 인도네시아와 현행법에 맞게 법률적 책임을 다하기를 원한다”고 덧붙였다.
그간의 아쉬움도 토로했다. 베라와티 위원장은 “대통령님이 우리의 어려움에 관심을 보일 때까지, 그 누구도 우리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고, 지난 몇 달 우리가 어려움을 겪는 동안 한국대사관과 한국인 투자자 단체는 우리 피해 노동자들을 찾지도, 공장에 오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 편지를 쓰는 지금까지도 상황은 달라진 게 없다”고 호소했다.
아득한 희망도 담았다. “끔찍한 노동조건과 어려운 상황이 하루아침에 확 바뀌지 않음도 잘 알고 있지만 SKB 노동자들에 대한 대통령님의 관심이 인도네시아 봉제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점진적으로 개선할 뿐 아니라, 양국 국민들의 우호 증진에도 전환점이 되리라 확신한다”고 기대했다.
체감온도 36도, 서있기만 해도 땀으로 범벅이 되는 날씨도 아랑곳하지 않고 노동자들은 목이 터져라 절규했고 목놓아 울었다. 대사관 정문을 빙 두르고 연설이 끝날 때마다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했다. 대부분 여성 노동자였다. 문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는 대사관에 전달됐다.
SKB 노조는 “잠적한 사장 김모(68)씨가 10년 전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사건을 일으켰다”고 주장하면서, “한국에서 형사 소송하는 방법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사장 김씨는 보도 이후 이뤄진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몸이 아파서 갑자기 귀국했고 치료하느라 몇 달째 시골에 있었다”라며 “적자가 누적되고 대출도 막혀 월급을 주지 못한 게 맘에 걸려서 돈을 모으고 있다”고 해명했다. 현지에선 “글쎄요”라는 반응이다.
한편 현지 온라인매체 쿰파란닷컴(KUMPARAN.COM)은 ‘문재인 대통령이 인도네시아에 있는 한국 기업을 수사해달라고 요청하다’는 제목의 기사를 최근 내보냈다. 인도네시아 정부와의 적극 공조, 인도네시아 모든 한국 기업 조사 등 문 대통령의 지시와 이런 문제로 양국 관계가 나빠지는 걸 원치 않는다는 내용이 담겼다. 기사 밑엔 ‘남한의 대통령 대단하다(Keren Presiden Korea Selatan)’ ‘그의 마음이 범상치 않다(Luar biasa perhatian nya)’는 댓글이 달렸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