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변호사의 돈과 영혼
“정의는 돈으로 사는 거야. 그러니까, 돈을 가져오라구, 돈!” (드라마 ‘리갈하이’ 변호사 고태림)
영화나 드라마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직업이 변호사지만, 그 이미지는 극과 극이다. 영화 ‘변호인’의 송우석(송강호)처럼 사회적 약자를 위해 싸우는 인권 변호사가 있는가 하면, 드라마 ‘리갈하이’ 고태림(진구)처럼 돈만 밝히는 뻔뻔한 변호사도 많다.
실제 변호사들은 어떨까? 정말 변호사는, 돈만 주면 누구라도, 어떻게든 변호할까?
◇나쁜 놈 변호하면 나쁜 놈일까
헌법이 ‘누구든 체포 또는 구속되면 즉시 변호인 조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지만, 흉악범이나 사회적 지탄을 받는 피고인의 경우 그 변호사에게도 손가락질이 가해진다. 1994년 유산을 노려 부모를 살해하고 불태운 ‘박한상 사건’에서, 패륜아 박씨의 변호를 맡으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장관 출신 황산성 변호사가 나섰지만 “박씨가 앞뒤가 안 맞는 논리로 범행을 부인한다”며 석 달 만에 물러났다.
딸 친구를 성추행하고 살해한 ‘이영학 사건’에서도 비슷한 경우가 반복됐다. 이영학의 부탁으로 변론에 나섰던 김윤호 변호사는 선임계를 제출한 지 사흘 만에 물러났다. “흉악범도 변호받을 권리가 있다”고 말한 김 변호사에게는 “범죄자에게 인권이 어디 있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변호사 윤리장전 16조는 “사회 일반으로부터 비난을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수임을 거절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변호사들은 “나쁜 놈을 변호하면 나쁜 놈”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두려워 흉악범 사건을 맡지 않으려 한다. 토막살인범 오원춘, 연쇄살인범 유영철 등 변호를 맡은 것은 모두 사선이 아닌 국선이었다.
사회적 비난은 두둑한 돈으로 이겨내기 쉽지 않다. A 변호사는 “미투에 연루된 유명 인사가 변호사를 찾지 못하겠다며 꽤 높은 금액을 제시했지만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너무 커 포기했다”면서 “파렴치범 변호는 돈에 비해 일이 많은데다 욕만 먹기 쉬워 웬만한 신념 없이는 맡지 못한다”고 했다. 국민적 지탄을 받았던 이명박ㆍ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대형 로펌에 사건을 맡기려 했으나, 논란을 두려워한 대형 로펌들이 수임을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상’ 만나면 돈 잃고 고생… 변호사도 사건 가린다
변호사들이 사회적 비난만큼이나 중시하는 게 바로 ‘뒤탈’의 가능성이다. 대다수 변호사는 “돈을 많이 준다고 아무 사건이나 무작정 수임하지는 않는다”면서 “우리도 평판ㆍ경력을 관리하기 위해서라도 사건 수임을 놓고 치열하게 고민한다”고 항변한다. 서초동의 B 변호사는 “유죄가 확실한데도 무죄를 만들어 달라고 우기는 의뢰인은 높은 수임료를 제시해도 맡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 변호사들은 변호를 맡기 전에 의뢰인이 ‘진상 고객’이 되지 않을까를 가장 고민한다. 약속한 돈도 못 받고 멱살만 잡히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려는 거다. 검사 출신 C 변호사는 “악독하고 무능한 변호사라고 소문이 나면 피해가 막심하기 때문에 수임을 신중하게 한다”고 말했다.
자신만의 기준을 세워 사건을 가려 받는 변호사들도 있다. 조직폭력배 사건이나 마약사건 등이 주요 기피 대상이다. “판검사에게 돈을 먹여서라도 이겨 달라”는 의뢰인 또한 탈 날 가능성이 높다. D 변호사는 “사기 사건을 맡았는데 온갖 핑계를 대면서 잔금을 안 주는 경우도 있다”면서 “변호사한테까지 사기 치는 사기꾼만큼은 피하고 싶다”고 털어놨다.
그러다 보니 변호사들은 결국 돈이 되면서도 업무처리가 깔끔한 기업 사건을 선호한다. 사안이 복잡해 한 번 맡으면 오래 가고, 관련 소송도 많이 들어온다. 문제는 한 번 반대쪽에 서면 그 기업에서 다시 사건을 받기 어렵다는 점. 로펌들은 웬만해선 대기업을 적으로 돌리려 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돈과 양심 사이, 기로에 선 변호사의 영혼
“내가 이 사람을 변호해야 하나”라고 되뇌는 변호사의 고민은 사건을 맡고 나서도 계속된다. 전말을 알고 보니 의뢰인이 정말 악인이라면 어떡해야 할까? 예컨대 살인범을 변호하던 중 의뢰인이 진범이라는 증거를 알게 된다면?
이런 상황에서 변호사는 ‘직무상 비밀누설 금지(변호사법 26조)’라는 가치와 ‘진실은폐 금지(변호사법 24조)’라는 두 의무 사이에서 고민하게 된다. 다만 영화처럼 의뢰인을 배신하고 적극적으로 의뢰인 혐의를 밝히는 일은 현실에선 있을 수 없다고 변호사들은 말한다. 검사 출신 E변호사는 “내 정보를 가진 변호사가 언젠가 창끝을 돌릴 수 있다면 불안해서 누가 변호를 맡기겠나”면서 “양심에 반한다고 의뢰인을 공격 대상으로 삼는 것은 변호사 윤리에 정면으로 반한다”고 했다. 도저히 양심이 용납하지 않으면, 사임하고 함구하는 것이 최선의 조치라는 얘기다.
결국 하나의 진실을 두고 둘 이상의 이해 관계자가 다퉈야 하는 법률 분쟁의 특성상, 변호사 일을 하는 동안에는 ‘돈과 양심’ 사이의 줄타기를 피해 갈 수 없다. 진위를 뒤집는 완벽한 왜곡 대신 변호사들이 자주 쓰는 수법은 바로 의뢰인에게 불리한 증거를 제출하지 않는 것과 같은 ‘적법한 꼼수’다. 그 줄타기에서 치열함을 잃거나 초심에서 눈을 돌리게 되면, 돈이 양심을 무디게 만드는 결과가 이어지게 마련이다. 진실을 은폐하려는 돈과 권력이, 변호사의 무뎌진 양심과 만나면 법조 비리로 이어지게 된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간간이 조명될 뿐 일반인들이 접근하기는 여전히 어려운 법조계. 철저히 베일에 싸인 그들만의 세상에는 속설과 관행도 무성합니다. ‘법조캐슬’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한국일보>가 격주 월요일마다 그 이면을 뒤집어 보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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