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사장이 잠적한 인도네시아 봉제업체 ㈜에스카베(SKB) 노동자들(본보 7일 1, 2면 참고)이 돌려받아야 할 체불임금 총액이 67억원(845억루피아)에 달한다고 이 회사 현지 노동자들이 주장했다. 당초 알려진 5억~7억원의 10배에 달하는 규모다. 양국 노동자들은 20일 한국-인도네시아 동시행동 집회를 서울과 자카르타에서 잇따라 열었다. 아세안(동남아) 전체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를 고발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사태가 확산되고 있다.
이날 인도네시아 섬유연맹노조(SPN) 등에 따르면, 2017년부터 SKB 사측이 노동자들에게 매달 최저임금을 밑도는 월급을 주면서 연말에 정산하기로 합의하고 주지 않은 임금과 퇴직금은 845억5,914만루피아다. 이는 1,182명분으로 현재 SKB 노동자가 4,000명인 걸 감안하면 차후 정산과정에서 그 액수가 훨씬 늘어날 수도 있다.
SPN 관계자는 “인도네시아 헌법재판소에서 임금 미지급분을 주지 않을 경우 형사 고발 사안이라고 결정한 2017년 이후 임금만 합산한 것”이라며 “2013~2016년분과 나머지 인원에 대한 임금 계산은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라고 주장했다. SPN는 이날 본보에 당시 노사 합의서를 보내왔다.
이에 대해 SKB 사장 김모(68)씨는 서울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월급 못 줬고 잘못은 인정하지만, 집이 아내 명의로 돼 있고 난 아무것도 없다”라며 “아내 명의를 빌려 6억5,000만원가량 모아 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먼저 잠적한 동업자 김모씨 때문에 힘들었고 3년간 적자가 나 땡전 한 푼 못 받고 내 돈 100만불(11억4,000만원)을 운영비로 썼다”라며 “결코 횡령을 하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그러면서 “10년간 현지에서 지켜본 결과, 임금 한 푼 안 주고 도망간 사례도, 나보다 10배 이상 체불하고 달아난 사람도 많은데, 내가 샘플(본보기)이 됐다”고 억울해 했다. “인도네시아로 돌아가라는 것은 죽으라는 말과 같다”고 호소했다. 그는 돈이 입금된 통장 사본을 보여 줬다. 그러나 아직 인도네시아로 돈이 송금되지는 않았다. 김씨는 “복잡한 절차 탓”이라고 했다. 해당 은행에서도 돈이 입금돼 묶여 있는 사실을 확인해줬다.
한편 이날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선 기업인권네트워크(KTNC) 회원 10여명이 “SKB의 임금체불 및 야반도주 사건은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해외 진출 일부 한국 기업이 저질러 온 인권침해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라며 “사업주가 해외에서 ‘처음부터 임금체불의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경우’ 대한민국 형법에 의거해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본보가 15일 보도한 20개 문제 기업 중 14개 업체의 명단과 구체적인 행태를 공개했다.
아울러 △한국 정부의 종합적 대응체계 구축 △한국연락사무소(NCP) 개혁 △해외 진출 기업에 대한 인권침해 예방교육 △문제 기업, 기업인 리스트 작성과 공개 및 제재 △한국 기업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 △해외 공관의 대응체계 구축 등을 제안했다.
이날 오후 자카르타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에 운집한 현지 노동자 200여명은 “인도네시아의 노동법을 따르지 않는 한국 기업들을 적발, 구속하고 사업 허가를 철회하라”고 절규했다. 집회 후 대사관 관계자 면담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재인도네시아한인상공회의소(KOCHAM)는 23일 인도네시아 내 한인 기업의 문제 및 어려움에 대해 방법을 찾고 기업의 윤리의식을 제고하기 위한 공청회를 개최한다. 한인 관련 업계에선 잇따른 노동자들의 폭로에 대해 “사실과 다른 게 많다”는 입장이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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