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서 구독자 1,400 여명을 거느린 탁지혜(37)씨의 ‘오탈누나’라는 호칭은 아픈 사연을 담고 있다. 그는 변호사시험에 다섯 번 탈락해 앞으로 변호사 시험에 응시할 수 없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졸업 후 5년 내 5회 응시 기회를 주는 변호사 시험법 제7조 ‘5탈 규정’ 때문이다.
탁씨는 2001년 연세대학 법학과에 입학했다. 정의 구현이나 입신양명 같은 거창한 꿈을 꾸고 입학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변호사를 꿈꾸며 사법고시를 준비했다. 3학년 때부터 사법고시 공부를 시작했으나 2007년 기존의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을 폐지하고 로스쿨에서 법조인을 양성하는 법안이 통과되며 2017년부터 사법시험을 볼 수 없게 됐다. 그는 사법시험 순혈주의와 로스쿨의 효용성에 반신반의하는 분위기 속에 2011년 부산대학 로스쿨에 입학했다.
2014년 제3회 변호사시험에 처음 응시했지만 불합격했다. 모의고사를 보면 상위 20% 안에 들어 합격을 자신하며 이듬해 재시험을 봤으나 결과는 아니었다. 아예 붙을 줄 알고 2주 정도 다른 회사에 다니기도 했으니 충격이 컸다. 2015년 말 사법시험 폐지 연장 논의가 일면서 로스쿨 학생들 사이에 변호사시험 응시를 취소하자는 분위기가 일었다.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 제대로 준비도 못하고 치른 2016년 세 번째 시험도 떨어졌다. 로스쿨 졸업 후 2년간 집에서, 다시 2년을 더 서울 신림동에 올라와 공부했다. 그렇게 치른 네 번째 시험과 다섯 번째 시험 모두 연이어 낙방했다.
자신에게 맞는 학습법을 못 찾아 연거푸 실패
탁씨에게 연거푸 다섯 번이나 낙방한 이유를 어떻게 보는 지 물었다. 그는 “스스로 바보는 아닌지, 공부에 소질이 없는 것은 아닌지 수 차례 곱씹었으나 결론은 공부법이 잘못 됐다”는 자기 반성을 했다.
돌이켜보니 탁씨는 일부 과목의 경우 학원 강의보다 혼자서 책을 찬찬히 읽어보며 공부하는 게 더 나았다. 무조건 학원 강의를 맹신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유독 어려웠던 상법을 학원에서 여러 번 되풀이해 들었다. 그러나 그는 처음 이해가 되지 않으면 반복해 들어도 소용이 없어 학원 강의를 따라가기 힘들었다. 혼자서 책을 다시 들여다 보고 정리를 하니 그제야 이해가 됐다. 그는 “맞는 공부법을 찾지 못해 허송 세월을 했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각자에게 적합한 방식으로 공부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공부 못지 않게 스트레스 푸는 방법도 중요했다. 탁씨는 네 번째 시험을 준비하며 수영을 시작했다. 하루 종일 머리만 쓰다가 운동을 하니 머릿속이 말끔하게 정리됐다. 그는 “그저 열심히 공부만 하는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니다”라며 “각자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는 것도 공부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양한 운동이나 명상을 추천했다.
같은 차원에서 로스쿨 재학 시절 해금도 배웠다. 그때 배운 실력으로 지금도 틈틈이 어려서 배운 피아노와 함께 해금 연주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리기도 한다. 유튜브 영상에 들어있는 배경음악도 직접 작곡했다. 악기 연주 영상을 올리면 더러 “자랑하는 거냐”는 비판성 댓글이 달리기도 하지만 수험생들이 공부뿐 아니라 여유를 갖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올렸다.
5탈 규정의 부당함 알리려 유튜브 시작
탁씨는 다섯 번째 시험에서마저 떨어지자 죄인처럼 지냈다. 마지막 시험은 공부마저 잘 되지 않았다. 더 이상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니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막막했다.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있을 수 만도 없었다. 지금까지 해온 법학 공부를 생각하면 더 이상 시험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고 화도 났다. 특히 5탈 규정은 아무리 생각해도 가혹하고 부당했다. 그는 “누구나 실패할 수 있다”며 “문제는 5탈 규정이 패자부활의 기회마저 앗아간다는 점”이라고 주장했다. 고시 낭인들을 막겠다는 것이 5탈 규정의 취지지만 법학을 전공하며 사시 공부나 법학전문대학원 3년 동안 수험 생활을 해온 이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많지 않다. 그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의 윤석열 지검장도 아홉 번 사법시험을 봤다더라”며 “만약 5탈 규정이 없어져 6, 7회 시험 끝에 변호사가 되는 이들은 나중에 어떤 대우를 받을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5탈 규정의 부당함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2018년 5월 ‘오탈누나’라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그는 5탈 조항, 즉 변호사 시험법 제7조의 위헌성을 집중적으로 파고 들었다. 헌법소원 신청 과정이나 같은 견해의 변호사를 찾아 인터뷰를 하고 이를 영상으로 만들어 올렸다.
여기에 법학 관련 정보들이 추가되면서 탁씨의 유튜브 채널은 점차 로스쿨 TV가 됐다. 면학 분위기, 입시, 졸업시험 등을 알려주는 로스쿨 관련 정보를 비롯해 변호사시험 답안지 작성 실험, 부산대 로스쿨 소개 영상 등을 올렸다. 모교인 연세대 탐방, 사교육 없이 연세대 입학하기, 연세대에서 A+ 학점 받기 등 대학 입학을 앞뒀거나 대학생 시청자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영상도 올렸다.
탁씨의 영상을 통해 5탈 조항을 알게 된 사람들은 댓글이나 장문의 이메일로 많은 격려를 보내 줬다. 물론 응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탁씨가 ‘금수저 아니냐’는 근거 없는 억측이나 ‘정신을 차리라’는 악플이 달리기도 했다. 원색적 비난이 많아서 지난 1월 ‘악플러에게 하고싶은 말’이라는 영상을 따로 만들어 올릴 정도였다.
“나의 실패담이 누군가에게 힘이 되기를”
5탈 조항과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탁씨는 동시에 토익 시험을 보는 등 취직 준비도 하고 있다. 그는 “취직이 되거나 나중에 5탈 규정이 없어져 변호사가 돼도 계속 유튜브에 영상을 올릴 생각”이라고 말했다. 실패 경험을 알리는데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고시나 입사시험 등 각종 시험에서 실패를 맞닥뜨린 사람들은 자꾸 고립된다”며 “그럴 때일수록 실패담을 공유하며 서로에게 힘이 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탁씨 역시 고시에 실패했을 때 힘을 얻은 것은 다양한 분야에서 좌절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는 모르는 사람에게서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자신의 실패담이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오늘도 영상을 만든다.
주소현 인턴기자 digita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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