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 가면이 고개를 숙이면 내려오고 고개를 들면 올라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렇게 간단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뮤지컬 ‘라이온 킹’에서 아기 사자 심바의 삼촌이자 왕위를 노리는 악역 스카 역을 맡은 배우 안토니 로런스의 말이다. 사자 가면을 움직이는 건 배우들의 땀과 노력이다. 커다란 가면은 고갯짓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와이어로 연결된 컨트롤러가 가면을 조종한다. 배우들의 섬세한 신체 연기 덕에 컨트롤러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을 뿐.
‘라이온 킹’의 가면은 그냥 가면이 아니다. 스토리와 캐릭터의 핵심을 드러내고 공연의 예술성을 완성하는 소품이다. ‘라이온 킹’은 동물의 모습을 한 인간의 이야기다. 배우들은 가면으로 얼굴을 완전히 가리지 않는다. ‘휴매니멀’(휴먼+애니멀의 합성어)’ 기법을 통해 배우인 사람과 캐릭터인 사자가 하나의 극적 실체로 결합한다.
‘라이온 킹’의 가면은 연출가이자 디자이너, 시나리오 작가인 줄리 테이머의 작품이다. 캐릭터 조각과 디자인은 테이머가 맡았고 파트너인 마이클 커리가 기술적 설계를 완성했다. 공연에 나오는 가면과 퍼펫은 200여개. 두 사람이 제작에 들인 시간은 3만 4,000시간에 달한다.
심바의 아버지이자 ‘프라이드 록’의 왕인 무파사와 스카의 가면은 더욱 특별하다. 가면이 배우 얼굴 앞으로 내려오면 ‘사자’임이 도드라지고, 머리 위에 있을 땐 ‘사람’임이 부각된다. 배우들은 손에 안보이게 부착된 컨트롤러의 버튼을 눌러 가면을 올리고 내린다. 커리의 전문 분야인 ‘애니마트로닉스(Animatronics )’가 활용됐다. 와이어로 가면을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특수 효과다. 물론 버튼을 누르는 게 전부는 아니다. 가면을 자연스럽고도 정확하게 움직이는 건 배우들이 오랜 훈련으로 익힌 ‘감’이다.
사자 가면의 모양과 기능에는 캐릭터의 성격이 반영돼 있다. 무파사 가면은 주로 위, 아래로 움직이는 반면, 스카의 가면은 다양한 각도로 움직인다. 스카의 교활함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무파사와 스카의 가면의 형태에도 테이머의 ‘의도’가 담겼다. “무파사의 갈기는 원 모양입니다. 우주의 중심인 태양신 모습인 동시에 생명의 순환을 암시합니다. 스카의 갈기는 왜곡되고 비대칭적인 모양이고요.” 무파사의 가면은 왕관을 상징하기도 한다. 극중 무파사가 어린 심바를 타이르는 장면에서 잠시 가면을 벗는데, 왕이 아닌 아버지로서 이야기한다는 뜻이다.
가면은 언뜻 나무처럼 보이지만, 탄소 섬유로 만들어졌다. 알루미늄보다 가벼우면서 철에 비해 탄성과 강도가 뛰어나 항공기 동체에 쓰이는 소재다. 무파사 가면의 무게는 사과 한 개 수준인 약 300g. 가면은 여분이 없다. 배우 별로 딱 하나씩만 맞춤 제작했다. 전부 미국에서 만들어 공수했다. 핵심 제작 기술이 비밀이라서다. ‘라이온 킹’ 공연 중 상주하는 가면, 퍼펫 관리자는 5명. 보통 대극장 뮤지컬에서 소품을 총괄하는 관리자가 2, 3명인 걸 감안하면 특별 대접이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