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출입기자는 정보기관에서 깐깐한 신원 조회를 받는다. 결과가 나오는 데 3주쯤 걸린다. 어느 정권에서나 그랬다. 청와대 출입기자는 대통령을 근접 취재하고 국가 기밀에 가까이 접근하는 자리이니, 국익을 위한 일이다. 신원 조회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 기자가 역대로 몇 명 있었다고 한다.
□ 약 10년 전까지 여의도 정당들도 출입기자 정보를 샅샅이 조사했다. 당 출입신청서에 주민번호, 학력, 가족관계, 고향부터 본적까지 써 내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핵심 정보는 고향과 본적이었다. 지역주의로 작동하는 정치판에서 기자의 출신 지역은 내 편인지 네 편인지 판별하는 근거였다. ‘한나라당 출입하는 호남 기자’ 혹은 ‘새천년민주당 출입하는 영남 기자’. 그런 차별과 낙인의 말을 무심하게 입에 올린 시절이었다. 경상도에도, 전라도에도, 충청도에도 뿌리가 없는 나는 국회를 출입하며 이주노동자가 된 기분이었다. 출입기자가 많아져서인지, 세상이 바뀌어서인지, 요즘 정당들은 기자 신상 정보를 별로 묻지 않는다.
□ 더불어민주당이 최근 대변인 논평에서 한국인인 미국 블룸버그 통신 기자를 “검은 머리 외신”이라고 불렀다. ‘검은 머리’는 ‘외국인을 가장해 그다지 정의롭지 않은 일을 하는 한국인’이라는 뜻으로 쓰는 멸칭(蔑稱)에 가까운 말이다. 지난해 쓴 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김정은의 수석 대변인”이라고 비판한 것, 그래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외신을 빌려 대통령을 공격할 수 있도록 빌미를 준 것이 민주당이 물은 기자의 죄목이었다. 검은 머리이니 온전한 외신 기자가 아니며, 그러므로 그의 보도에 권위가 없다는 것이 논평에 깔린 민주당의 논리였다. 서울외신기자클럽을 비롯한 기자단체들의 반발에 민주당은 두루뭉술 사과했다.
□ 기자의 출신 성분이 자꾸 도마에 오르는 것은 사람들이 언론의 공정함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집권 여당 대변인이 기자의 ‘인종’을 공개적으로 문제 삼다니, 역시나 여의도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노란 머리 외신 기자’였어도 그렇게 함부로 깎아내렸을까.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당헌 제1장 2조) ‘어떠한 차이도 차별로 이어지지 않는 사회’(강령 11호)를 만들겠다는 민주당의 다짐은 어디로 갔나. 참고로, 나는 민주당이 얕잡는 ‘검은 머리’의 내신 기자다.
최문선 문화부 순수문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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