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시장의 화두 중 하나는 바로 ‘SUV’의 성장이라 할 수 있다.
과거 싼타페, 스포티지 그리고 윈스톰 등의 ‘라이트 미들’급 SUV들이 중심을 잡았던 SUV 시장은 시간에 따라 조금씩 체격을 키웠지만 쉐보레 트랙스와 쌍용 티볼리 그리고 르노삼성 QM3가 포문을 연 ‘소형 SUV’의 전성시대를 거쳤다.
그리고 최근에는 쌍용의 G4 렉스턴이 다시 불을 붙이며 고급화, 대형화의 추세가 다시 한 번 조명을 받고, 그 결과 연일 보도되는 경제 위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현대의 대형 SUV인 팰리세이드가 인기를 끄는 ‘대형 SUV’의 시대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 맞춰 한국지엠 또한 대형 SUV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부산모터쇼에서 대형 SUV인 쉐보레 트레버스를 공개하고, 국내 시장의 투입 결정을 알린 것이다. 트레버스는 지난 2008년 첫 생산되어 현재 2세대까지 이어지고 있는 쉐보레의 대형 SUV로 그 역사는 짧은 편이지만 넓은 공간과 뛰어난 주행 성능 등을 갖춰 북미 시장에서 많은 사랑을 받아온 차량이다.
그러나 쉐보레는 트레버스에 그치지 않았다.
실제 쉐보레는 지난 몇 년 동안 기존의 세단 라인업에 대한 중요성을 언급하면서도 크로스오버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드러냈던 브랜드다. 그렇기에 트랙스, 이쿼녹스 그리고 트레버스로 이어지는 ‘SUV 라인업’이 다소 빈약하다 판단한 것이다.
이에 쉐보레는 지난 1960년대부터, 그리고 가깝게는 2005년까지도 다양한 형태로 많은 사랑을 받은 크로스오버의 이름, ‘블레이저’를 다시 한 번 꺼내게 되었다. 2019년부터 미국 시장에서 판매를 시작한 쉐보레 블레이저는 트랙스와 이쿼녹스의 상위 모델로 트레버스와 함께 중량급 SUV의 라인업을 구축했다.
그렇다면 쉐보레 트레버스와 블레이저 중 국내 시장에 어울리는 차량은 무엇일까?
거대한 트레버스, 그리고 대담한 블레이저
체격적인 부분에서는 트레버스가 블레이저를 압도한다. 쉐보레 트레버스는 여느 대형 SUV보다도 큼직한 5,189mm에 이르는 긴 전장과 1,996mm의 넓은 전폭, 그리고 어지간한 성인 남성보다 높은 1,795mm의 전고를 갖췄다. 이는 국내에 판매 중인 쌍용 G4 렉스턴은 물론이고 크다고 정평인 난 현대 팰리세이드를 뻘쭘하게 만드는 체격이다.
물론 쉐보레 블레이저 역시 한 덩치를 자랑한다.
쉐보레 트레버스만큼은 아니지만 4,920mm에 이르는 긴 전장과 1,915mm의 넓은 전폭, 그리고 어지간한 성인 남성과 비견될 1,750mm의 전고를 갖췄다. 이는 대중들이 알고 있는 ‘현대 싼타페’나 ‘기아 쏘렌토’와 유사한 것이 아닌, 대형 SUV인 쌍용 G4 렉스턴이나 현대 팰리세이드와 비슷한 수준에 이른다.
물론 쉐보레 블레이저가 전통적인 박스 형태의 SUV가 아닌, 디자인적으로 도시적인 감성과 역동성을 강조한 만큼 공간에 대해서는 차이가 있다.
3열 SUV 그리고 역동적인 존재
쉐보레 트레버스와 블레이저는 그 역할과 구성이 명확한 차이를 보여준다. 5인승 차량을 애매하게 연장해서 7인승 모델처럼 구성하는 브랜드들과는 확실한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다.
물론 같은 브랜드의 차량인 만큼 전체적인 구성이나 요소들은 유사한 편이지만 트레버스는 스스로의 존재를 3열 SUV임을 정확히 드러낸다. 루프 라인을 트렁크 게이트 직전까지 직선으로 이어가며 3열 공간을 위한 헤드룸을 확보한 것이다.
실제 쉐보레는 트레버스의 3열 공간에 850mm에 이르는 레그룸을 마련해 여느 3열 SUV들과는 달리 실재하고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적극적으로 어필한다. 이와 함께 2열, 3열 시트를 폴딩할 때에는 여느 대형 SUV는 물론이고 대형 MPV 등을 압도하는 2,780L의 적재 공간을 선사한다.
넉넉함을 과시하는 트레버스에 반해 쉐보레 블레이저는 역동성에 초점을 맞췄다.
실제 인테리어 디자인 기조를 여느 SUV들과 달리 보다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카마로의 구성을 차용했다. 특히 대시보드의 구성이나 센터터널 하단의 에어밴트는 카마로의 모습과 일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3 시트의 구성을 갖춘 공간은 패밀리카의 용도로는 충분하며 2열 시트를 폴딩할 때에는 1,818L의 적재 공간을 선사한다.
순수한 가솔린 SUV가 될까?
쉐보레 트레버스와 쉐보레 블레이저는 미국 시장에서 각각 두 개의 엔진 라인업을 갖췄고, 서로 하나의 엔진은 공유한다.
트레버스의 경우에는 쉐보레 말리부 등을 통해 이미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2.0L 터보 엔진과 최고 출력 305마력의 V6 3.6L 가솔린 엔진을 마련했다. 모두 9단 자동 변속기를 통해 전륜 혹은 네 바퀴로 출력을 전한다.
반면 쉐보레 블레이저는 305마력의 V6 3.6L 가솔린 엔진을 택하면서도 엔트리 사양으로는 175마력을 내는 2.5L 가솔린 엔진을 사용한다. 변속기나 구동 방식은 트레버스와 유사하며, RS 및 프미미어 트림은 트윈 클러치 방식의 AWD 시스템으로 보다 능동적이고 효과적인 출력 배분을 추구한다.
미국 시양인 만큼 디젤 파워트레인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현재의 1.6L 디젤 엔진으로 소화하기엔 두 차량 모두 큰 차량이라 강력한 토크를 자랑하는 듀라맥스 2.8L 디젤 엔진이나 별도의 디젤 엔진 또한 요구되는 상황이다.
참고로 2.8L 듀라맥스 디젤 엔진은 최고 출력은 181마력에 불과하지만 최대 토크를 51.4kg.m에 이르는 강력한 토크 중심의 디젤 엔진으로 쉐보레 콜로라도에 활용되는 GM 고유의 디젤 엔진이다.
국내에서는 누가 더 인기가 있을까?
솔직히 말해 트레버스와 블레이저는 그 지향점이 완전히 다른 차량이다.
트레버스는 팰리세이드와 경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팰리세이드는 물론이고 혼다 파일럿, 포드 익스플로러 등을 압도하는 체격을 갖춘 모델이며 쉐보레 블레이저 또한 현대 싼타페, 기아 쏘렌토 등과 쌍용 G4 렉스턴 사이에 위치한 모델이다.
시장의 트렌드를 본다면 수입 차량으로서 국산 차량인 팰리세이드와 가격 차이는 크지 않으면서도 체격 및 주행 성능에서 우위를 점하는 트레버스가 인기를 끌 가능성도 높지만 충분히 거대한 체격과 함께 날렵한 디자인을 갖춘 쉐보레 블레이저 또한 외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결국 중요한건 한국지엠의 선택이다. 국내 도입을 위한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하고, 관련 법률 및 시스템 등을 새롭게 구성해야 하는 만큼 한국지엠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시장의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쉐보레 이쿼녹스가 분명 좋은 차량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 가격이나 국내 소비자들의 ‘중형 SUV’의 인식 등으로 인해 실질적인 경쟁 모델인 혼다CR-V나 토요타 RAV4가 아닌 현대 싼타페와 기아 쏘렌토와 경쟁해야 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차량 가격 정책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해야하겠지만, 이미 사장된 수준에 이른 쉐보레 이쿼녹스를 과감히 포기하고, 철저한 오버 사이즈 전략을 취하며 블레이저-트레버스의 SUV 라인업을 국내에서 동시에 선보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한국일보 모클팀 - 김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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