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닝썬 스캔들’로 클럽 내에서 이른바 ‘물뽕(GHB)’이 빈번하게 쓰인다는 사실이 드러난데 이어,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상습투약 의혹으로 이번엔 프로포폴 관리 실태가 도마 위에 올랐다.
25일 의학계는 은밀하게 유통되는 물뽕 못지 않게 프로포폴 또한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지적을 쏟아내고 있다.
하얀 색깔 때문에 흔히 ‘우유주사’라 불리는 프로포폴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진료 과정에서 자주 쓰이는 약물이다. 보통 사람들도 수면 내시경 같은 것으로 흔히 접할 정도이고, 작은 병ㆍ의원도 이런저런 진료 과정에서 처방을 자주 한다. 낯설다거나 위험하다는 느낌이 덜하다. 의사 출신 박호균 변호사는 “프로포폴은 일반인들도 누구나 쉽게 접한다는 점에서 다른 마약과 다르다”며 “상대적으로 친숙하다 보니 남용, 중독되는 경우가 많아 관리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작은 병ㆍ의원 입장에서 자주 드나드는 친분 있는 환자가 필요 이상의 투약을 요구할 경우 ‘고객 관리’ 차원에서 이를 뿌리치기도 힘들다. 더구나 물뽕 같은 약물은 ‘이걸 쓰는 건 곧 범죄’라는 인식이라도 있지만 ‘좋은 게 좋은 거’란 분위기 속에서 프로포폴은 범죄라는 인식조차 옅은 경우가 많다.
실제 서울 서초구의 한 피부과 및 성형외과 전문 의원의 A원장은 단골 환자 요구에 피부 미백, 보톡스 시술을 하면서 프로포폴을 투약했다. 미백, 보톡스 시술엔 수면 마취가 당연히 필요 없다. A원장은 2016년 9월부터 2017년 3월까지 단골환자 2명에서 25차례에 걸쳐 무려 2ℓ가 넘는 프로포폴을 투여했다. 수술할 경우 보통 프로포폴 100~200㎖ 정도가 쓰인다는 점을 감안하면 반 년 남짓한 기간 동안 이 2명의 환자는 수술을 10번 넘게 받은 셈이다.
A원장은 또 단골 환자가 다른 사람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휴대폰으로 보내면 그 사람들 명의로 졸피뎀 성분이 들어있는 수면진정제 ‘스틸녹스’ 처방전을 내준 게 48차례에 이르렀다. A원장은 지난해 4월 2심에서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불법 처방을 하고 나면 진료기록부와 향정신성의약품 관리대장도 조작해야 한다. 서울 강남의 산부인과 의원의 B원장은 한 환자에게 프로포폴을 12차례나 불법투약했다. B원장은 프로포폴 재고량과 향정신성의약품 관리대장 기록을 맞추기 위해 자기 병원의 간호조무사들이 산부인과 진료를 받으면서 프로포폴을 투약한 것처럼 꾸몄다. B원장도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런 사례는 H성형외과 전직 간호조무사가 폭로한 ‘이부진 프로포폴 상습 투약 의혹’과 고스란히 겹친다. 이 사장의 프로포폴 투약 의혹을 제기했던 탐사 전문매체인 뉴스타파는 병원 직원들의 온라인 대화방에서 장부 조작 정황이 드러났다는 의혹을 추가로 전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프로포폴 관리 강화를 위해 그 전까지 일일이 손으로 작성하던 향정신성의약품 관리대장을 지난해 5월 전산화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허술하다. 지난해 10월 바른미래당 최도자 의원실이 내놓은 자료를 보면 식약처의 ‘마약류 통합관리시스템’에서 환자의 주민등록번호 등 주요 정보가 누락된 사례가 지난해 5월부터 8월까지 석 달 동안에만도 무려 43만 건에 달했다. 최도자 의원은 ”병ㆍ의원이 환자 프로포폴 투여량을 조작하면 진료기록 위조를 적발하기 어렵다”며 “의도적인 조작이나 누락은 없는지에 감독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보완해야 한다”고 밝혔다. 식약처는 이런 지적에 대해 “시스템 보완을 위해 주민등록번호 기입 의무화 등 개선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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