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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 없는 한일관계] ‘정치적 꼼수’로 기름 붓는 일본… 강경모드로 불씨 키우는 한국

입력
2019.03.26 04:4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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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반일-혐한’ 악순환 고리

日, 주변국과 ‘안보 갈등’ 핑계로 헌법 개정ㆍ군사력 강화 노림수

韓, 동시다발 갈등 손 놓아… “일본 입장도 감안, 현실적 접근을”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1월 28일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도쿄=AP 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1월 28일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도쿄=AP 연합뉴스

의도적으로 갈등 키우는 일본

한일갈등이 좀처럼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일본에서 외교가 국내 정치에 활용되는 측면이 큰 데다 양국 외교전략이 충돌하면서 일본 외교에서 한국에 대한 우선순위가 밀려나고 있는 상황과 무관치 않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고노 다로(河野太郎) 외무장관 등은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양국 갈등사안이 불거질 때마다 강경 언사를 반복했다. 아베 총리는 대법원 판결에 대해 “국제법에 비춰 있을 수 없는 판단”이라 했고, 고노 장관은 문희상 국회의장의 일왕 사죄 발언에 대해 “무례하다, 말조심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상대국의 정서를 감안해 관계 개선에 나설 책임이 있는 정치인들이 오히려 갈등을 키웠던 것이다.

일본 정치인들이 한일 역사갈등을 정치적 입지 강화를 위해 증폭시킨 사례는 아베 정권 등장 이후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 한일 레이더ㆍ위협비행 논란 때 아베 총리의 동영상 공개 지시는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일본 국방당국은 실무급 화상회의에서 해결방안을 모색하기로 합의했지만 하루 만에 아베 총리 지시로 자위대 초계기 촬영 동영상을 공개하며 대내외 여론몰이에 나섰다. 마이니치(每日)신문은 국내 여론대책으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보인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아베 정부가 주변국과의 안보 갈등으로 평화헌법 개정과 군사력 강화의 명분을 얻으려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지지기반인 보수층 결집과 개헌에 소극적인 연립여당 공명당과 다수 국민들의 설득을 위한 의도된 갈등이라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2017년 사학스캔들로 궁지에 처하자 북한의 위협을 앞세워 중의원 선거에서 압승하는 등 외교를 내치에 활용한 전례가 있다.

지난 1월 아베 총리의 국회 시정연설에서는 한국에 대한 ‘의도적인 무시’가 드러났다. 전후(戰後) 외교의 총결산을 목표로 내세우며 미국과의 동맹 강화는 물론 중국, 러시아,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강조했다. 정작 한국과의 관계 개선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그간 적대적이었던 북한과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불행한 과거를 청산하고 국교 정상화를 목표로 하기 위한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도 긴밀히 연대한다”고 한 게 전부였다.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일본 정부 내에서 “당분간 한국과의 관계 개선이 이뤄지지 않아도 개의치 않는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과거엔 자민당이 한일관계에 강경 기조로 기울 경우 야당이 균형추 역할을 했다. 그러나 현재 야권이 분열한 데다 대법원 판결 이후 야권에서도 한국에 우호적인 의견을 찾기 어려워졌다.

양국간 대중ㆍ대북 외교전략의 차이도 관계 개선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부상에 맞서 미국, 호주, 인도 등과 ‘자유롭고 열린 인도ㆍ태평양 전략’을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안정화를 위해선 중국의 협조가 필수적인 만큼 선뜻 동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또 한국은 남북 경제협력 등에 적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으나 일본은 북한과의 국교정상화 협상을 위한 카드로 남겨두기 위해 미국 등 국제사회에 제재 유지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 잇달아 불거진 한일관계 악재들_ 그래픽=김경진기자
최근 잇달아 불거진 한일관계 악재들_ 그래픽=김경진기자

관계악화 돌파구 못찾는 우리 정부

한일관계 손상엔 한국 정부 책임도 작지 않았다. 물론 일본이 과거사 청산 해결 의지가 부족하다는 것이 주된 원인임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이 우발적인 독도 방문으로 분쟁화 빌미를 제공하고, 박근혜 전 정부 때는 위안부 문제 졸속 합의 등으로 사태를 악화하는 데 일조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2년 광복절을 앞두고 이명박 전 대통령은 독도를 찾았다. 현직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처음이었다. ‘정부가 일제강점기 위안부 청구권 분쟁 해결 노력을 하지 않는 건 위헌’이라는 전년도 헌법재판소 결정과 이를 계기로 급속도로 확산한 문제 해결 촉구 여론이 배경이었다. 2011년 9월 일본에 위안부 배상청구권 문제 관련 외교 협의를 요청하고, 같은 해 12월 한일 정상회담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 없이 자유무역협정(FTA) 등 미래 협력을 논하기 어렵다’며 압박도 했지만 반응이 신통치 않자 고강도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출구전략 없이 감정 대응을 했다는 비판이 힘을 받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강경 기조를 이어갔다. 당선자 신분으로 2013년 초 일본 정부 특사를 만난 자리에선 “역사를 직시해야 한다”고, 취임 직후 3ㆍ1절 기념사에선 “가해자ㆍ피해자란 입장은 천년이 흘러도 변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다 2015년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으며 돌연 입장이 바뀌었다. 박 전 대통령은 ‘올해 안에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스스로 과제를 떠안은 뒤, ‘일본 정부가 출연한 10억엔으로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재단을 설립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위안부 합의를 졸속 타결했다.

억지 봉합된 과거사 문제는 다시 한일 관계의 발목을 잡았다. 문재인 정부는 과거와 미래를 분리, 대응하겠단 투트랙 전략을 정권 출범 초반부터 세웠지만, 보수 결집, 군사대국 야심 실현을 위해 두 문제를 연계하는 일본과 타협점을 찾지 못하는 형국이다.

여기에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대일 청구권을 인정하란 대법원 판결이 지난해 나오고 한국 구축함이 자국 초계기를 향해 사격통제레이더를 조사(照射)했다며 일본 정부가 주장하는 등 갈등 사안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지자 양국 모두 “아예 문제해결의 손을 놔버린 것 같다”는 평가마저 외교가에선 나온다.

전문가들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과거사 문제에서 쉽게 물러설 수 없는 상황임을 직시하고, 현실적인 해법 마련에 몰두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기태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보수ㆍ우경화하고 있는 일본의 장기적 흐름을 인정하고 개선안을 모색해야 한다”며 “공공외교 강화, 민간교류 확대, 공식ㆍ비공식적 대일 접촉 라인 복원 등이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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