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 사회에선 ‘힘의 논리’가 목소리의 크기를 결정합니다. <한국일보> 는 매주 금요일 세계 각국이 보유한 무기를 깊이 있게 살펴 보며 각국이 처한 안보적 위기와 대응책 등 안보 전략을 분석합니다. 한국일보>
‘G2’ 미국과 중국의 무기가 공존하고 13억 인구 대국 인도와 대립하는 곳.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확인되는 유일한 이슬람 국가. 구(舊) 소련 전차와 미국제 전차가 나란히 행진하는 지역. 국내 반군과 무장단체, 심지어 알 카에다 등 국제적 테러 조직까지 활동하고 있는 나라. 언제든 인접 국가와 전쟁을 할 수 있다고 예상되는 세계의 ‘화약고’…. 인구 2억명의 서남아시아 파키스탄을 수식하는 표현들이다.
◇‘카슈미르 분쟁’ 인도가 주적
79만㎢(한국의 8배)의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는 파키스탄은 여러 민족과 언어가 혼합된 국가다. 주류인 펀자브인들에 반대하는 분리주의 세력도 활개를 치고 있다. 일단 파키스탄부터 인도가 영국에 독립할 때 분리 독립한 국가이며, 1971년에는 방글라데시가 파키스탄으로부터 전쟁 끝에 독립하기도 했다. 역사적으로도 페르시아와 아프가니스탄에 속했던 지역이 현재 파키스탄의 영토이기도 하다.
파키스탄의 주적은 인도다. 올해 2월26일에도 인도 공군이 48년 만에 ‘통제선’을 넘어 파키스탄 지역을 공습하기도 했다. 인도 측은 “테러리스트 훈련 캠프를 공격했다”고 주장했지만 파키스탄은 “인도 공군이 정전 협정을 위반하고 침범했다”고 반발했다. 파키스탄은 자국 내 테러리스트 근거지가 없다고 주장해 왔기 때문에 인도의 공격 자체는 인정했지만 “공격 받은 건물이나 사상자는 없다”고 덧붙였다. 뒤이어 27일에는 파키스탄과 인도 간 공중전이 벌어졌다. 파키스탄 측은 인도 공군기 두 대를 격추하고 조종사 1명을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파키스탄 공군은 미국제 F-16 전투기를 띄운 것으로 전해졌다. 파키스탄이 인도 조종사를 송환하면서 갈등은 잦아드는 모양새지만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4월 말 총선을 앞두고 국내 지지 세력 결집에 파키스탄과의 분쟁을 이용하는 모습이다.
인도와의 치열한 분쟁 상황 때문에 파키스탄의 무기체계와 외교ㆍ안보정책은 인도에 맞춰졌다. 인도와의 분쟁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대규모 군대를 유지하고 있다. 현역 65만여명에 예비군도 51만여명에 달한다.
적의 적은 우방이라는 등식에 따라 중국군과도 협력 관계에 있다. 무기체계 다수가 중국제다. 대 테러전쟁에 협조하는 대가로 몇몇 고성능 무기를 미국에서 도입했지만, 파키스탄을 불신하는 미국이 기술 이전에 소극적이어서 중국이 제공하지 못하는 신형 무기는 유럽에서 구입하기도 했다. 그래서 무기체계가 다국적이다. 스웨덴제 SAAB 340 조기경보통제기는 물론, 미국으로부터 도입한 F-16A/B와 F-16C/D도 운용하고 있다. 프랑스로부터는 잠수함을 들여왔으며 최근에는 터키를 통해 기존 보유 무기의 업그레이드도 시도 중이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인도군이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1,000억 달러가 넘는 무기들을 새롭게 도입하면서 파키스탄의 재래식 전력은 나날이 인도에 뒤처지고 있다.
핵보유국이라는 특성을 살려 파키스탄은 탄도미사일 개발에도 노력을 계속해 왔다. 2015년에는 최대 사정거리가 2,750km에 달하는 ‘샤힌-3’ 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핵 탄두와 재래식 탄두 모두 사용 가능하다. 2018년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과학원 광전기술연구소가 파키스탄에 ‘고정밀도 대형 광학 추적ㆍ측정 시스템’을 판매했으며, 이 시스템의 운용에 필요한 기술 교육을 위해 3개월간 전문가들을 파견했다고 보도했다. 다탄두(MIRV) 탄도미사일을 개발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2017년 1월 시험발사에 성공한 인도의 사거리 5,000km급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아그니-5'에 대항하기 위해 중국이 기술 제공에 나선 것이다.
◇일찍부터 핵개발 착수.. 북한과 연계도
인구도 국토도 인도에 비해 부족한 파키스탄은 일찍부터 핵개발에 착수했다. 하지만 파키스탄의 핵무장은 인도보다는 늦게 시작됐다.
미국과의 관계가 인도에 맞설 파키스탄의 핵개발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파키스탄은 1950년대 미국의 공산권 봉쇄정책에 매우 중요한 동맹국이었고 때문에 안보를 미국과의 동맹에 크게 의존해 왔다. 그러나 1971년 방글라데시 독립 전쟁 등 인도와의 무장 분쟁을 겪는 과정에서 미국과의 동맹이 약화됐고, 그에 따른 안보 공백 우려를 메우기 위해 파키스탄도 비밀리에 핵개발에 돌입했다.
미국은 파키스탄의 핵무장을 강력히 반대하면서 압력을 행사했지만 소련이 의도치 않은 도움을 준다.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면서 파키스탄의 전략적 가치가 급상승한 것이다. 미국은 파키스탄이 핵실험을 하지 않는 이상 파키스탄의 핵개발 시도를 방해하지 않겠다는 암묵적 동의를 내놓았고. 이로 인해 파키스탄의 핵무장은 큰 진전을 이뤘다.
냉전이 끝나고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면서 미국은 다시 파키스탄의 핵무장에 대해 압력을 행사했지만 이미 파키스탄은 상당한 수준의 진전을 거둔 상태였다. 1998년 인도가 핵실험을 재차 실시하자 파키스탄 이에 뒤질세라 5월 28일과 30일 연이어 두 차례의 핵실험을 실시했다. 현재 파키스탄은 250개가 넘는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확실한 것은 알려지지 않았다.
인도에 재래식 전력이 크게 밀리기 때문에 파키스탄은 다른 핵무기 보유국과 비교하면 핵무기 사용 원칙이 확연히 다르다. 국가 위기상황에서 핵무기를 선제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원칙을 채택했다. 인도보단 파키스탄의 선제 핵 공격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더 높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다시 말해, 인도는 파키스탄이 먼저 핵 공격을 해야 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파키스탄은 인도와의 대규모 무력충돌 때에는 선제 핵공격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수적으로 우세한 인도군이 파키스탄의 핵심 지역을 공격해 파괴하는 경우, 최후 수단으로 인도에 핵 공격을 하겠다는 것이다.
파키스탄이 선제 핵공격을 할 수 있다고 천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인도의 근심은 깊어진다. 재래전으로는 밀리지 않을 수 있는 자신이 있지만 핵이라는 변수를 언제나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인도 역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상호 핵전쟁으로 비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국제 사회의 우려도 날로 늘어가는 상황이다. 게다가 인도 해군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잠수함을 배치하면서 인도군이 파키스탄의 정보, 감시망을 벗어나 언제 어디서든지 파키스탄에 핵공격을 할 수도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파키스탄이 선제 핵공격을 주장하고 있지만 핵무기의 파괴력도 인도에 비해 부족하다. 인도군의 핵폭탄이 80kt정도의 위력을 낼 수 있는 데 반해 파키스탄의 핵폭탄은 60kt 정도로 북한 핵폭탄이랑 비슷하거나 이보다 성능이 부족하다는 관측이다.
1970년대부터 파키스탄은 북한과 탄도미사일 및 핵무기 기술 개발에 협력해 왔다. 1976년 줄피카르 알리 부토 당시 파키스탄 총리는 평양을 찾아 안보 협력의 토대를 구축했다. 1990년대 들어서는 파키스탄의 핵개발 노력과 탈레반 세력과의 관계로 국제사회가 파키스탄을 배제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북한은 파키스탄의 끈을 놓지 않았다. 북한이 개발한 로동 미사일이 파키스탄에 수출됐고, 파키스탄은 그 답례로 핵무기 기술을 북한에 전달했다는 게 정설이다.
‘파키스탄 핵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압둘 카디르 칸 박사는 북한과 이란, 리비아에 우라늄 농축에 사용되는 원심분리기 기술을 판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우라늄 농축 기술 커넥션은 기존에는 1994년 제네바 합의에 의해 동결된 플루토늄 재처리 능력만을 가지고 있던 북한이 비밀리에 우라늄을 통한 핵개발을 가능하게 했다. 제2차 북핵위기의 원인을 제공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북한 학생들이 파키스탄으로 유학을 가기도 했다. 셜리 칸 전 미 의회 고문은 2011년 “북한이 파키스탄에 300만달러 뇌물을 주고 핵물질을 제공받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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