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에서 침몰 직전에 빠졌다가 상선에 구조된 아프리카 난민들이 도리어 그 배를 납치했다. 물에 빠진 사람 구조했다가 뺨까지 맞은 상황에 처한 유럽 국가들은 공교롭게도 같은 날 자체적으로 실시하던 지중해에서의 난민 구조작전을 중단했다.
27일(현지시간) AP통신과 가디언에 따르면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부총리 겸 내무장관은 이날 리비아 해안 인근에서 터키 국적 유조선 ‘엘히블루 1호’가 난민과 이주민 108명을 구조한 뒤 이들에게 납치됐다고 밝혔다. 난민들은 이 선박이 자신들을 구조하고 리비아 트리폴리 항구로 향하자 항구에서 불과 6해리(약 11㎞) 떨어진 지점에서 배를 납치하고 선수를 북쪽 몰타 방면으로 돌렸다.
선장은 납치 이후 “난민들로부터 몰타로 이동하라는 위협을 받고 있다”며 몰타 당국에 구조를 요청했다. 몰타 경비정은 이튿날 오전 영해로 진입하려는 이 배를 멈춰 세웠고, 특수작전부대가 투입해 선박 점거에 성공했다. 모든 선원과 난민들은 몰타에서 이번 사건과 관련해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선박에 탑승한 난민과 이주민은 어린아이를 포함해 남성 77명, 여성 31명이라고 몰타 현지언론이 전했다.
앞서 납치 소식이 전해지자 유럽에서 강경 난민 정책에 앞장서고 있는 살비니 부총리는 이들을 “난민이 아닌 해적”이라고 규정하고 강력 규탄했다. 살비니 부총리는 “그들은 망원경으로만 이탈리아를 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해당 선박의 이탈리아 항구 정박을 불허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몰타군 대변인도 엘히블루 1호의 이동경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몰타 입항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구조된 아프리카 난민들은 ‘리비아에 내려주겠다’는 말을 듣자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에 따르면 이주민들은 리비아에서 △살인 △장기밀매 △감금 △고문 △강간 등에 일상적으로 노출돼 있다. 하지만 에티오피아 등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 출신 대다수는 지중해를 건너기 위해 리비아를 경유할 수밖에 없다.
불법 이주민들이 리비아로 돌아가길 거부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고무보트에 의지한 채 지중해를 건너던 난민과 이주민 95명은 차량 운반선에 의해 구조돼 리비아 미스라타 항구로 옮겨졌다. 이들 중 79명은 “리비아로 돌아가느니 죽는 게 낫다”며 무려 10일 동안 선박에서 내리길 거부했다. 결국 총기를 소지한 군부대가 배 안에 투입돼 이들을 강제로 끌어냈다.
한편 유럽연합(EU)은 이날 EU 차원의 지중해 난민 구조 작전인 ‘소피아 작전’을 축소한다고 밝혔다. 안전하지 않은 수단으로 바다를 건너는 난민을 구하기 위해 항공순찰과 해상순찰을 진행해왔는데, 이중 해상순찰을 중단하기로 한 것이다.
가디언은 이 결정이 ‘소피아 작전’으로 구조된 난민들을 더 이상 수용할 수 없다는 이탈리아 정부의 입장이 반영된 결과라고 전했다. 이탈리아는 지난해 12월부터 다른 회원국들이 난민을 더 받아들이지 않으면 작전을 계속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지만, 일부 회원국들이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부터 시작된 이 작전으로 구조된 난민은 약 4만5,000명에 달하며 이들은 모두 이탈리아에 수용됐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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