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당신의 런던 <3> 브렉시트로 갈라진 영국
※ ‘세계의 축소판’ 같은 다양성이 있고, 그 다양성을 존중하려고 노력하는 도시 런던의 이야기를 <한국일보>가 3주에 한 번씩 토요일에 연재합니다. 런던에서 유학 중인 김혜경 국경없는기자회 한국특파원이 그려내는 생생한 런던 스토리의 현장으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고작 3월인데 5월 말 같네(It’s only March, but it feels like the end of MAY).”
23일 주말을 맞아 런던 하이드파크 일대에서 열린 브렉시트 반대 및 국민 재투표 요구 집회 현장을 찾았다. 브렉시트를 추진 중인 테리사 메이 총리의 성(姓)과 5월의 철자가 같은 데 착안해 그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고 비꼰 한 참가자의 피켓에 피식 웃음이 났다.
주최 측 추산 최소 100만명. 영국 역사상 가장 많은 참가자를 기록한 2003년 이라크 전쟁 반대집회보다 큰 규모라고 했다. 영국인들은 세계대전 이후 가장 심각한 경제불황을 야기할 수 있다는 브렉시트를 눈앞에 두고도 특유의 유머감각을 잃지 않았다. ‘지금은 대혼란을 멈출 때’(Time to end this MAYHEMㆍ메이가 일부 들어간 대혼란이라는 단어를 중의적으로 활용한 것) ‘아이들에게 이걸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어요(We literally can’t explain this to our kids)’. 인파 사이로 재치 있는 피켓과 현수막이 넘실댔다. 참가자들은 영국이 가장 사랑한 재즈가수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노래를 같이 흥얼대거나 가볍게 춤을 추기도 했다.
하루 전날 잉글랜드 북부 헐(Hull)에서 기차를 타고 왔다는 대학강사 필립 크리스핀씨는 “언어유희로 가득 찬 배너들은 영국의 시위를 축제처럼 만드는 핵심요소임과 동시에 연대의 힘을 보여 주는 효과적인 도구”라고 말했다. 아들 둘을 데리고 동부 켄트에서 온 한 여성도 “다음 세대는 기성세대가 저지른 실수로 자신들의 미래가 결정되길 원치 않기에 함께 의사를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참가 이유를 밝혔다.
평소 30분이면 걸어갈 거리. 종착지인 국회 앞까지는 가지도 못한 채 네 시간이 훌쩍 흘렀다. 말이 행진이지 점거에 가까운 집회였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전국 각지에서 세대를 막론하고 모였다. 100만은 부풀려진 숫자라는 힐난도 나왔지만 집회의 뜨거운 분위기는 고스란히 전파를 탔다. 언론은 ‘브렉시트 취소’ 의회 청원 서명까지 500만명(29일 현재 약 600만)을 넘긴 이 상황을 국회가 더는 무시할 수 없을 거라 보도했다.
그러나 집회 밖 세상은 또 달랐다. 대학원생 시본 팔머씨는 “브렉시트 말만 들어도 지겹다. 시민들은 브렉시트를 둘러싼 정치인들의 편 가르기 싸움에 지쳤다”고 토로했다. 영국인 하우스메이트 역시 “런던은 영국 전역에서 가장 진보적인 도시 중 하나”라며 “네가 본 것을 그대로 믿지 말라”고 했다. 실제로 런던은 브렉시트 찬반투표 당시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와 함께 유럽연합(EU) 잔류에 강한 의사를 표한 지역이었다. 집회 당일 보수당의 피터 본 의원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740만명이 유럽연합을 떠나는 데 찬성했다. 집회 참가자들이 결코 나라 전체를 대변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최근 영국 민간기구 사회조사를위한센터(National Centre for Social Research)는 설문 조사를 통해 2016년 52대 48로 브렉시트가 가결된 것과 달리 지금 투표가 진행될 경우 45대 55의 결과가 나올 것이라 예상했다. 결과는 정반대여도 시민들이 두 갈래로 팽팽히 나뉘어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편은 갈렸으나 역설적으로 브렉시트가 영국 시민들에게 민주주의 가치를 다시 일깨워준 계기라는 느낌도 들었다. 반대로 “정말 그러냐”면서 정치 혐오와 피로감을 호소하는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 “이 나라에서 집회는 소풍 같은 것”이니 심각해지지 말라는 이도 있었다.
국민이야 그렇다 쳐도 정치권까지 분열을 거듭하면 안될 터. 그런데도 영국 국회는 27일 여덟 가지 브렉시트 대안을 놓고 이른바 ‘의향 투표(Indicative vote)’를 부쳤지만 어느 것에도 합의하지 못했다. 브렉시트 예정일이던 29일은 이제 EU 합의안을 관철시키고자 총리직까지 내놓은 메이의 운명을 가르는 날이 됐다.
집회 며칠 전 국회의원과 언론인이 참여한 한 토론에서도 진단은 비슷했다. 앤드루 아도니스 상원의원은 “지금 국회에서는 아무도 브렉시트 얘기를 안 하려 한다”고 했다. 그는 “유권자들이 가장 걱정하는 사안에 대해 소통하지 않는데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정치인들이 그들만의 셈법에 바쁜 사이, 영국은 이르면 내달 12일 EU를 공식 탈퇴한다. 그러나 여전히 추측만 난무할 뿐 아무도 6,600만명의 운명을 모르고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집회에서 울려 퍼진 와인하우스의 ‘Our day will come’ 가사처럼 조금만 기다리면 좋은 시절이 올까. 이렇게 분리된 나라에서 그건 누구에게 좋은 시절이 될까.
김혜경 국경없는기자회 한국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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