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우울 불면증 등 정신질환에 일부는 극단적 선택까지 고려
2017년 말 발생한 포항 지진과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피해자 대부분이 불안과 우울 증세, 불면증 등 각종 정신질환에 시달린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특히 제천 화재 피해자 3명 중 1명은 자살까지 생각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ㆍ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지원소위원회는 국가미래발전정책연구원과 함께 29일 오전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이 같은 ‘국내 중대재난 피해지원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실태조사는 지난해 10월부터 두 달간 포항 지진 피해자 40명과 제천 화재 피해자 30명을 대상으로 국가미래발전정책연구원이 실시했다. 경제ㆍ신체적 변화는 물론 심리적 피해와 구호 지원에 관한 내용 등을 피해자 면접방식으로 조사했다.
포항 지진의 경우 조사 대상의 82.5%가 재난 이후 불안 증세가 나타났다고 답했다. 불면증과 우울증이 생겼다는 응답은 각각 55%와 42.5%다.
제천 화재도 조사 대상의 73%가 참사 이후 불면증을 겪었고, 우울(53.3%)과 불안(50%) 증세를 호소한 이들도 절반이 넘었다. 이런 증세로 인해 포항 지진은 조사 대상 중 47.5%, 제천 화재는 31%가 수면제를 복용했다고 답했다.
포항 지진 이후 슬픔이나 절망감으로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은 경험이 있는 응답자는 60%에 달했다. 최근 1년간 심각하게 자살 생각을 해봤거나(16.1%), 실제 자살을 시도해봤다는(10%)는 답변도 적지 않았다. 제천 화재의 경우 슬픔이나 절망감을 느낀 비율이 76.7%나 됐고, 자살 생각을 해봤다(36.7%)고 답한 비율이 포항 지진보다 높았다.
재난 피해자들은 신체 건강도 나빠졌다. 포항 지진은 조사 대상의 67.5%, 제천 화재는 83.3%가 재난 이후 새로운 질환을 앓고 있다고 답했다. 포항 지진 이후 건강상태 변화에 대해 '나빠졌다'는 응답은 42.5%, '매우 나빠졌다'는 37.5%로 나타났다. 제천 화재의 경우는 '나빠졌다'가 43.3%, '매우 나빠졌다'가 13.3%였다.
경제상황 역시 재난 이후 급격히 악화됐다. 가구별 총자산은 포항 지진 조사 대상 중 34.1%, 제천 화재는 39.2%가 “줄었다”고 답했다. 반면 가구별 지출액은 각각 28.1%, 37.9%씩 늘었다.
국가의 지원과 진상조사 노력 등에 대해서는 두 재난 조사 대상 대다수가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실태조사 책임자인 박희 서원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포항 지진 피해자들은 지역적 특성 때문에 정부 지원을 제대로 못 받는다고 답했고, 제천 화재 피해자들은 세월호 때와 다른 대우를 받는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특조위는 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독립적 재난 원인 및 대응과정 조사단의 상설기구화 △피해지원 재정 확충을 위한 재난복구기금 신설 △재난지원의 공정성과 형평성 확보 △의료 및 심리지원의 한시성 문제 개선 △안전취약계층에 대한 우선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황전원 특조위 지원소위원장은 “재난 피해자들이 복합적인 고통을 당하는 것으로 드러난 만큼 피해지원에 대한 종합적이고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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