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행위를 두고) 투기라고 보는 시각이 있지만, 투기는 이미 집이 있는데 또 사거나, 시세차익을 노리고 되파는 경우에 해당된다. 저는 둘 다에 해당되지 않는다.”(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
고가 상가매입 사실이 드러난 후 여론의 질타를 받고 29일 결국 사퇴한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은 처음 논란이 불거지자 이런 해명을 내놓았었다.
실제 김 전 대변인의 전격 사퇴에도 불구하고,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등 7명의 장관 후보 가운데 4명이 3주택 이상 소유자라는 사실 등을 놓고 정치권과 네티즌들 사이에선 여전히 투자와 투기의 경계선을 둘러싼 설전이 한창이다.
대다수 국민들의 감정을 폭발시킨 고위 공직자들의 행위ㆍ변명과 별개로, 한국 부동산 시장에서 투자와 투기의 경계는 어디일까. 김 전 대변인과 장관 후보자들은 투자를 한 것일까 투기를 한 것일까.
◇애매한 투기-투자 경계
사전적 의미의 투자(投資)는 ‘이익을 얻기 위해 어떤 일이나 사업에 자본을 대거나 시간이나 정성을 쏟는 행위’다. 반면 투기(投機)는 ‘기회를 틈타 큰 이익을 보려고 하는 일. 또는 시세 변동을 예상해 차익을 얻기 위해 하는 매매’로 정의되고 있다. 쉽게 말해 투자는 시간과 정성을 쏟아 이익을 얻지만, 투기는 기회를 틈타 이익을 얻는다는 데 차이가 있다.
이를 부동산에 대입해보면 실거주 목적으로 아파트를 사거나 공장을 짓기 위해 토지를 매입하고, 장사를 위해 상가를 구입하는 것 등은 투자로 볼 수 있다. 반면 실제 사용하지 않고, 오직 시세차익을 위해 아파트나 토지를 구입한다면 투기에 가깝다.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갭투자’ 역시 실사용 목적이 아니니 투기에 가깝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사전에서처럼 현실에서 투자와 투기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실수요자에게도 ‘기회를 틈타 이익을 보려는’ 투기적 욕구를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당시 시장상황, 부동산 사용 목적, 자금 출처, 레버리지 비율, 위기대응 능력, 정보수집 과정 등 다양한 기준을 바탕으로 따져 봐야 투자, 투기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컨트롤타워 격인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도 자신의 저서 <부동산은 끝났다>에서 “투기와 투자의 경계는 무엇일까. 집값이 오르지 않는다면 투자라는 개념도 성립하기 어렵다”며 그 경계의 모호함을 설명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시장원리주의자들의 용어사전에는 ‘투기’ 자체가 없다. 그저 시장 신호에 빨리 반응하는 용감한 사람들이 있을 뿐”이라며 “하지만 그 과정에서 너무 많은 자원낭비와 서민들의 피해가 크기에 정부는 거품을 예방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김의겸의 상가 매입, 투자일까 투기일까
김 전 대변인의 상가 매입도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판단 기준, 즉 △당시 시장상황 △부동산 사용 목적 △자금 출처 △레버리지 비율과 위기대응 능력 등으로 살펴보면 김 전 대변인의 상가 매입은 실거주 목적으로 보기에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우선 김 전 대변인이 동작구 흑석동 상가건물을 구입한 지난해 서울은 집값이 폭등했던 시기다. 특히 상가가 있는 동작구는 지난해 한해 동안 아파트값이 21.8%(부동산114 기준)나 뛰어 서울에서 5번째로 상승폭이 컸다. 집값 폭등기에 시세차익이 크게 발생할 지역에 상가를 매입한 셈이다.
김 전 대변인은 30년 간 자가주택을 소유한 적이 없어 2주택자가 아닌데다, 매입한 상가건물의 재개발이 끝나면 팔순 노모와 함께 거주할 목적으로 매입했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실거주 목적이라면 완공까지 최소 4~5년이 걸리는 재개발 지역 대신, 기존 아파트를 샀어야 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레버리지 비율, 위기대응 능력으로 봐서도 역시 실거주 목적은 인정하기 어렵다. 김 전 대변인은 보유재산 14억원에 은행 등에서 11억원의 빚을 내 25억7,000만원의 부동산을 샀다. 전 재산에 11억원의 빚까지 끌어 쓴 ‘올인 투자’인 셈이다. 어떤 위기상황에도 몇 년은 버틸 위기관리 능력이 뒷받침돼야 투자라고 할 수 있다면, 김 전 대변인의 상가 매입은 오히려 ‘올인 투기’에 가깝다.
◇”일반인과 공직자는 도덕기준 달라야”
최근 국회 인사청문회를 치른 장관 후보자들도 이 같은 기준으로 볼 때 투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장관 후보자 7명 중 4명은 집을 3채 이상 보유한 다주택자다. 특히 부동산 정책 주무부서 장관 후보자인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부부는 서울 송파구 잠실동과 경기 분당 정자동에 아파트를 1채씩 갖고 있고, 세종시 소재 펜트하우스 분양권 1개를 보유 중이다. 대부분 투기지역이거나 투기과열지구로, 3채의 시세차익은 23억원에 달한다. 최 후보자는 분당 정자동 아파트를 장녀 부부에게 꼼수 증여한 의혹도 있다.
최 후보자는 투자와 투기를 구분하는 사전적 의미대로 보더라도, 사용하지 않고 오직 시세차익을 위해 아파트를 구입한 행위, 즉 투기에 더 가깝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관계자는 “다주택 보유로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었고 공무원특별공급을 악용해 투기에 나섰으며 청문회 직전 자녀에게 주택을 증여해 꼼수증여라는 비판을 받았다”며 “실거주 목적이 아니라 시세차익을 노린 명백한 투기 행위”라고 최 후보자를 비판했다.
김 전 대변인과 최정호 후보자는 고위 공직자라면 감수해야 할 윤리적 측면에서도 이런 비난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김 전 대변인은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규제에 총력을 쏟던 시점에 청와대 핵심 참모로서 10억원 넘는 돈을 대출받아 재개발 지역에 투자했다는 것만으로도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다.
특히 상가 임대료로 노후 생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김 전 대변인의 해명은 오히려 연금 등 사회안전망이 아닌 재개발 투자 이익을 부추긴다는 점에서 공직자로서 부적절했다는 평가다.
최 후보자 역시 정부가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다주택자들을 투기 세력으로 규정하고, 각종 압박을 통해 집을 팔도록 유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부동산 정책을 관장하는 주무 장관이 다주택자라면 ‘영’(令)이 서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김기중 기자 k2j@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