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어르신들의 교통 안전을 위한 파출소장의 번뜩이는 기지가 호평 받고 있다. ‘장수의자’ 얘기다. 경기 남양주시 별내동 주요 교차로 횡단보도 앞에 새로 생긴 이 의자는 노인들의 무단횡단을 예방해 교통사고를 막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유석종(55) 경기 남양주경찰서 별내파출소장은 2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어르신들이 무단횡단을 하시다가 교통사고를 많이 당하신다. 경로당에 나가 ‘무단횡단 하지 마시라’고 알려드리던 중 사연을 알게 됐고, 그 순간 답은 나왔다. 바로 ‘쉴 공간’을 만들자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유 소장은 지난해 9월 11일 동네 노인정에서 열린 교통 안전 홍보 간담회에서 어르신들에게 “왜 무단횡단을 하시냐”고 직접 물어봤다고 한다. 돌아온 답변은 “기다리는 동안 다리 통증 등 몸이 불편해 기다리기가 힘들다”는 것이었다. 유 소장에게 ‘횡단보도에 의자를 놓자는 생각’이 떠오른 순간이다. 그는 “고민을 하던 중 화장실에 설치된 유아용 접이식 의자와 전신주 옆에 놓인 사다리를 본 게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예상과 달리 실제 의자를 만드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세상에 없던 물건을 만드는 일에 선뜻 나서는 업체가 없었던 탓이다. 의자 개발 및 제작 비용이 없어서 어려움을 겪던 중 창대시스템이란 회사에서 만들어주겠다고 나섰다. 유 소장은 개발 비용 대신 특허 권리 등을 모두 양도했다.
약 3개월의 제작 기간을 거쳐 지난달 28일 장수의자 60개가 만들어졌다. 횡단보도 인근 기둥에 접이식 형태로 의자를 설치했다. 장수의자는 어르신들이 안전하게 사시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지은 이름이다.
장수의자는 지난 1일부터 별내동 교차로 곳곳에 설치됐다. 가장 먼저 과거 보행자 사망사고가 발생한 교차로에 설치됐고, 은행이나 병원, 마트 등 생활 편의시설이 집중된 주요 교차로에도 설치됐다. 유 소장은 “설치 과정을 지켜보시던 어르신들이 직접 앉아보시곤 아주 좋아하신다”며 “내일부터는 경로당과 노인회를 방문해 활용 방법을 홍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7년 발생한 전체 교통사고 중 노인 보행자 사망은 전체 보행자 사망(1,675명)의 절반 이상인 54.1%(906명)를 차지했다. 이는 전년보다 4.6% 증가한 수치다. 또 무단횡단 사망자는 전체 보행자 사망의 33.6%(562명)를 차지했다.
이정은 기자 4tmrw@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