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1970년대만 해도 치과용 국소마취제 ‘리도카인’ 전량을 높은 가격에 외국에서 수입해 썼다. 1979년 국내 최초로 리도카인 국산화에 성공한 제약업체가 광명약품 공업사(현 휴온스글로벌)다. 광명약품은 이후 리도카인을 일본, 베트남, 파키스탄 등에 수출하며 본격적인 제약회사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광명약품도 1997년 불어 닥친 외환위기에 휘청댔다. 그 즈음 경기 화성에 새 공장을 지은 게 부담이 됐다. 30억원이면 충분할 줄 알았던 공사비가 60억원으로 늘었다. 연 매출 20억원의 작은 제약회사가 대출 이자로만 월 수천만원을 물어야 했다. 창업주인 윤명용 회장마저 그 해 3월 지병으로 별세했다. 회사의 기획담당 이사였던 윤 회장 아들 윤성태 현 휴온스글로벌 대표이사 부회장은 당시 서른넷의 젊은 나이에 경영 일선에 나서야 했다.
광명약품은 자금줄이 막혀 악전고투했다. 직원들의 사기는 바닥을 쳤고 악재는 계속 겹쳤다. 1998년 봄 화성 공장에 불이 나 건물 하나가 전소됐다. 1965년 회사 창업 이래 최대 위기였다.
윤 부회장은 급한 대로 화재 보험금으로 빚을 갚았다. 평소 직원들을 아꼈던 선친 덕에 60여명의 직원들도 회사를 살려보겠다며 밤낮없이 일했다. 덕분에 반년쯤 지나 생산 능력이 화재 이전 수준으로 회복됐다.
회사가 한 단계 더 도약하게 된 계기는 윤 부회장의 예멘 출장이었다. 의약품 수출협상을 하러 간 길에서 그는 독일산 20㎖ 플라스틱 주사제를 발견했다. 당시 국내에 플라스틱 용기는 500㎖ 용량밖에 없었다. 20㎖ 용기는 모두 유리여서 제품이 깨지거나 제품에 유리 가루가 들어갈 수 있는 위험이 있었다. 광명약품은 1998년 12월 국내 최초로 20㎖ 플라스틱 주사제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비용을 기존의 10분의 1 수준으로 낮춘 이 주사제는 국내 시장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후에 내놓은 고용량 비타민C 주사제도 ‘대박’을 쳤다. 500㎎씩 담아 팔던 비타민C 주사제를 한 대학병원에서 유독 많이 구입하는 게 의아해 병원에 가서 확인해 보니 수술 후 회복 중인 환자나 만성피로 환자들이 한 번에 40~50개씩 주사를 맞고 있었다. 면역력을 높이기 위한 조치였다. 가능성을 본 광명약품이 10g 비타민C 주사제를 만들어 내놓자 시장 반응은 뜨거웠다. 광명약품은 2003년 회사 이름을 휴온스로 바꿨고, 2006년 코스닥 시장에 상장했다.
윤 부회장이 회사를 맡은 직후 매출은 연 60억원 수준이었지만, 작년 매출은 3,787억원, 영업이익은 680억원으로 20년 전에 비해 50배 이상 성장했다. 대형 제약사의 문턱이라는 매출 2,000억원의 벽도 훌쩍 뛰어넘었다. 휴온스는 현재 300여개 제품을 50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휴온스가 이처럼 고속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연구개발(R&D)에 있다. 휴온스의 R&D 투자는 연 매출의 약 7%에 달한다. 2009년 11월 문을 연 충북 제천 공장은 먹는 약과 주사제, 일회용 점안제 등을 생산할 수 있는 최첨단 설비와 자동화 물류시스템을 갖췄다. 휴온스는 2017년 국내 제약사 최초로 주사제 완제품의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획득하고 2018년 5월 미국에서 국소마취 주사제 리도카인 복제약 허가를 취득하는 등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휴온스는 ‘웰빙’ 의약품, 건강기능식품, 미용, 기능성 화장품, 의료기기 분야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2016년 5월에는 글로벌 헬스케어 그룹으로 도약을 선언하며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지주회사인 ‘휴온스글로벌’ 아래 ‘휴온스’와 ‘휴메딕스’ 등 5개 자회사를 두고 있다. 휴온스글로벌은 2020년 매출 1조원 돌파를 목표로 세웠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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