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평양 협상때부터 대북제재 해제 집요한 요구… 약점 고스란히 노출
북한이 2월 평양에서 열린 실무 협상에서부터 대(對) 민수용 대북 제재 해제를 집요하게 요구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비핵화 논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몫으로 미뤄두고선 제재 해제 문제는 목록까지 만들어 꼼꼼하게 챙겼다는 후문이다. 제재 해제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태도가 미측에 ‘제재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확신을 심어줬고, 사실상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을 부른 패착(敗着)이었단 평가가 나온다.
북미 협상과정에 정통한 한 외교 소식통은 13일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평양을 찾았을 때부터 북한 실무진이 ‘핵 문제는 최고지도자 문제’라며 제재 (완화 또는 해제) 얘기만 했다”며 “미국이 풀어줬으면 하는 제재 리스트를 직접 만들어 요구했다”고 전했다. 비건 대표는 2차 북미 정상회담을 3주가량 앞둔 2월 6~8일 평양에 체류하며 김혁철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와 협상을 진행했다.
협상 과정에서 미국은 제재가 북한 경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가늠해보기 위해 “농ㆍ수산물 수출에 대한 제재 완화를 원하냐”고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던졌고, 북측은 냉큼 “예스(Yes)”라고 답했다고 한다. 광물ㆍ섬유 수출이나 합작 사업 설립 등이 필요하냐는 물음에도 망설임 없이 “예스”라는 대답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품목들은 북한 경제의 숨통을 조이고 있는 수출 관련 주요 제재 대상이다. 다만 “대량살상무기(WMD) 제조를 위해 필요한 물자에 대해서도 제재 해제를 원하냐”고 묻자 북측은 “그건 나중에 해줘도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북미 정상회담 준비 차원에서 열린 사실상 첫 협상에서부터 정상회담까지 북측은 일관되게 ‘민생ㆍ민수용 물자에 대한 제재 해제’를 요구한 것이다.
정상 간 담판을 앞두고 북측이 약점을 고스란히 노출한 데 대해 미국은 상당히 놀랐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특히 북한이 대북 제재 완화에 집착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자 미국은 ‘대북 제재가 작동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고 한다. 소식통은 “미국은 대화 기조를 유지하며 (제재가 가동되는) 현 상황만 잘 관리하면 북한이 백기를 들 것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하노이 회담에서 북측 입장에서 과도하다고 여길 만한 핵무기ㆍ핵물질의 미국 이전 등을 요구한 이른바 ‘빅딜 문서’를 건넨 것도 협상팀으로부터 북측의 절실한 입장을 보고 받은 뒤 내린 판단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전까지 미국은 대북 제재를 가하면서도 중국과 러시아의 도움을 받고 있는 북한에 실질적 효과를 미치는지 반신반의하고 있었다고 한다.
북한이 ‘하노이 노딜(No-deal)’ 이후 부쩍 ‘자력갱생’을 강조하며 제재에 의연한 척하는 것도 제재 완화에 집착할수록 얻어낼 수 없음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란 분석도 나온다. 노동신문은 이달 초 “우리가 가야 할 자력갱생의 길은 결코 순탄치 않다”면서 북미 비핵화 협상 장기전에 돌입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앞서 미국은 북한의 종전선언 요구에 냉담한 태도를 보이다가 이후 북한이 관련 언급을 자제하자 이를 협상 카드로 제시한 바 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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