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5℃’는 한국일보 중견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아이 엄마는 얼어붙은 채 손을 떨고 있었다. 기습적으로 날아든 말 한 마디로 온몸이 얼얼했다. “왜, 애비 없는 자식을 낳아서 세금으로 키우려 그래요?” 아이 출생신고를 하려던 미혼모 J는 9년이 지났어도 이 말을 한 공무원의 표정을 잊지 못했다. 세간의 시선이 크게 달라지진 않은 탓이다. 사회복지 전공자조차 말하곤 했다. “실은 몰랐어요. 이렇게 아이를 위해 애쓰는 건. 미혼모는 다 화장실에 영아를 유기하는 철없는 사람인줄 알았어요.” 회고하던 J의 한숨이 길었다.
A의 임신중단 시도 역시 끊임없이 눈총 받았다. 성폭력 상담소의 확인서까지 들고 갔지만 병원은 더 증빙해야 한다고 했다. 가해자를 고소하자 경찰은 허위신고 여부를 의심하며 확인서를 내주지 않았다. 가해자는 줄곧 ‘합의에 의한 관계’를 주장했다. 재작년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단을 위한 국제 행동의 날'에 공개된 사연의 주인공 A가 수술대에 오를 수 있었던 건 우여곡절 끝에 가해자가 검찰에 송치되고 난 뒤다. 임신 14주가 지난 때였다. 보통 태아의 신경생리학적 구조가 갖춰지기 전인 임신초기는 12주까지로 본다.
낳겠다는 결정은 손가락질 받고, 안 낳겠다는 결정은 처벌 받는 세계. 오로지 ‘정상가족’이라 규정된 법적 부부의 다산(多産)만이 축복받는 사회. 이 곳을 통과해 온 J와 A, 또 그를 닮은 숱한 여성의 의문은 이렇게 집약되고 있었다. 나의 결정은 왜 무턱대고 의심 받는가. 태어날 아이와 나의 생명, 존엄, 생애, 운명을 가장 절박하게 고민할 주체가 나라는 건 왜 이토록 간과되는가.
11일 낙태죄를 헌법불합치로 본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각계의 희비가 엇갈렸지만, 적잖은 이들이 표출한 건 ‘안도감’이다. 우리 사회가 이제서야 이 고심의 결과를 경청하고 납득할 준비가 되어간다는 위안 탓이다. 일각의 기대와 달리 그간 낙태죄는 임신중단 근절이나 생명 존중에 효과적이지 않았다. 음성적으로 이뤄지는 임신중단은 막지 못했고, 이뤄진 시술은 처벌하지 못했다. 대체로 시술 시기를 늦추는 방향으로만 기능했다. 생명을 지키겠다는 의도와는 반대다. 이 처벌 규정이 여성의 존엄, 건강, 선택권뿐 아니라 어떻게 생명 존중 정신을 역행했는지를 돌아보면, 낙태죄는 규율의 가면을 쓴 방임에 가까웠다.
가톨릭의 나라 프랑스가 닮은꼴 논쟁을 일단락 지은 건 45년 전이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이자 치안판사였던 프랑스 사상가 시몬 베유는 1974년 보건부장관으로 베유법(임신중단 합법화 법안)을 통과시켰다. 국내에는 ‘국가가 아닌 여성이 결정해야 합니다’(갈라파고스 발행)로 번역 출간된 의회 연설을 통해서다.
“낙태 수술을 즐겁게 받는 여성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 문제는 그저 여성의 말을 듣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당사자인 여성은 사실상 관련자인 척 하거나 곧 그런 척을 그만둘 제3자가 내려주는 허락보다 더 강력한 억제책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여성이 고립되거나 불안에 떨면서 낙태하지 않게 할 정부의 책임입니다.(…) 상담으로 여성은 곤경에 빠진 상황을 밝힐 수 있고, 그 곤경이 재정적인 문제라면 국가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게 됩니다. 그들이 자신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부디 신뢰합시다."
그는 지난해 7월 팡테옹에 안장됐다. 임신초기 임신중단을 허용한다는 것은 일각의 오해와 호도와 달리 ‘태아의 안위는 안중에 없이 모든 걸 여성의 마음대로 하겠다’는 납작한 의미가 아니다. 보다 안전하게, 보다 윤리적으로, 보다 생명경시 논쟁이 없는 시기에, 수술이 행해지도록 정부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미다. 우리가 겨우 서 있는 건 그 거대한 변화의 출발점이다. 비로소 2019년 4월 11일, 우리는 ‘불법 낙태’ 없는 땅을 향해 이륙했다.
김혜영 기획취재부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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