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北 입장 조속히 알려달라” 文대통령 “남북 정상회담 조기개최 추진”
‘노딜’(거래 무산)로 끝난 2월 말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의 여파를 수습하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머리를 맞댔다. 일단 북한을 대화 트랙에 붙잡아 둘 필요성이 있고, 정상끼리 톱다운 방식의 담판이 유효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한미 정상이 공감대를 형성했다. 대화 모멘텀을 이어나가기 위해 남북 정상회담을 우선 개최하자는 순서도 정했다. 다만 비핵화 방법론에 있어서는 온도차가 여전해 앞으로의 과제로 남았다.
일단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대화에 관심을 잃지 않도록 붙잡는 데에는 문 대통령이 성공했다는 게 대체적 평가다. 대표적 대북 매파로 분류되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까지 챙겨 만나는 등 공을 들였다. 미 행정부 전반의 강경 방향 선회에 제동을 걸려 한 것이다. 그러나 하노이 담판 결렬 뒤 양보 없이 신경전 중인 북미 간 이견 폭을 축소하는 데에는 역부족이었으리라는 관측이 전문가들 사이에 우세하다. 겨우 탈선을 막았을 뿐 북한을 유인할 대화 촉진 카드까지 미국에게서 받아내지는 못했으리라는 것이다.
청와대가 꼽는 최대 성과는 미측의 북미 대화 재개 의지 확인이다. 하노이 담판 결렬 뒤 급격히 소진된 북미 간 비핵화 대화의 동력을 되살려내기 위한 ‘모멘텀’이 확보됐다는 것이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회담 직후 현지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은 차기 북미 정상회담이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또 다른 이정표가 되도록 트럼프 대통령과 긴밀히 협력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고 전했고,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빠른 시일 내에 북미 간 후속 협의를 개최하기 위한 미측의 의지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단독회담 모두 발언에 이어진 기자단과의 문답에서 ‘3차 북미 정상회담이 있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단계를 밟아야 한다”면서도 “있을 수 있다”고 대답했다.
이는 하노이 회담 결렬 뒤 잠시 어렴풋해졌던 3차 북미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이 뚜렷해졌다는 의미라는 게 청와대 해석이다. 고위 관계자는 “하노이 회담 이후 제기된 여러 가지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대화 재개의 모멘텀을 살리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앞으로 비핵화 협상을 추진해 나가는 방안과 3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방안 등에 대한 구체적 의견 교환이 있었다”고 전했다.
‘통 큰 결단’으로 실무 협상에서 불거진 견해 차를 일거에 해소할 수 있는 톱다운 해법의 유효성이 여전하다는 데 두 정상이 공감했다는 사실도 청와대가 생각하는 소득이다. 정 실장은 “양 정상은 톱다운 방식이 앞으로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필수적이라는 데에 인식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에게 북미를 잇는 메신저 역할을 변함없이 기대한다는 사실도 이번 회담을 통해 새삼 확인됐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말미에 남북 정상회담 또는 남북 간 접촉을 통해 우리가 파악하는 북한 입장을 가능한 한 조속히 알려달라고 요청했다”고 전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귀국하면 본격적으로 북한과 접촉해 조기에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되도록 추진하겠다는 취지로 답했다”고 청와대는 덧붙였다.
그렇다고 미국이 현 입장을 바꾼 것 같지는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전 문답을 통해 “현 시점에서 우리는 ‘빅딜’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빅딜은 핵 무기들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했다. 현재 신뢰 수준에서 가능한 조치부터 차근차근 해나가자는 북한의 ‘단계ㆍ동시 비핵화’ 방법론을 수용할 의사가 아직 없다는 뜻이다. 국제 대북 제재망의 이완을 부를 수 있는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에 대해서도 “지금은 올바른 시기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제재가 계속 유지되기를 원한다”고도 했다. 대북 설득 카드도 주지 않고 문 대통령에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한 번 만나보라고 떠민 셈이다.
다만 문 대통령을 아예 ‘빈손’으로 돌려보내지는 않았을 거라고 기대할 만한 구석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전 문답에서 ‘북한이 비핵화에 관한 완전한 로드맵을 제안한다면 대북 제재 해제ㆍ완화 조치를 논의할 거냐’는 질문에 “분명 오늘 회담에서 중요한 의제가 될 것”이라고 답했고, 문 대통령이 제안한 ‘스몰딜’을 받을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그 딜이 어떤 것인지 봐야 한다”고 여지를 남겼다. 문 대통령이 회담에 들어가 이런 여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미측이 인센티브를 제시하지 않고 북한도 제재 국면 장기화에 대비해 자력갱생을 독려하는 상황에서 북한을 설득해 미국과 다시 마주 앉히는 게 간단치는 않다는 게 전문가 상당수의 의견이다. 국가정보원 산하 연구기관인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12일 “부분적 제재 완화에 미국이 소극적이고 북한이 불양보ㆍ비타협 전략을 실행함에 따라 설득 여지가 감소한 터에 남북 트랙에서 성과가 도출되기를 기대하는 건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도 “공개된 회담 결과에 각론이라고 할 만한 게 없고 그렇다고 미국과의 회담에서는 이면 합의가 있을 수도 없다”며 “북한으로 하여금 적극 나서게 할 만한 유인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북한 의도가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설령 한미가 합의했더라도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관련 발표를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을 마친 뒤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민들의 성원에 힘입어 한미 정상회담을 잘 마쳤다”며 “이번 정상회담 자체가 북미 간의 대화 동력 유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평가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워싱턴=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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