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이마트24옆에 노브랜드… 법의 허점 노린 대기업 꼼수?
알림

이마트24옆에 노브랜드… 법의 허점 노린 대기업 꼼수?

입력
2019.04.15 04:40
수정
2019.04.15 07:30
19면
0 0

5곳서 영업정지 가처분 소송

울산 중구에서 편의점 ‘이마트24(성남점)’를 운영하는 김경식씨는 지난해 7월부터 모회사인 이마트와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다. 점포 바로 맞은편, 점포에서 약 180m 떨어진 지점에 잇따라 ‘노브랜드’ 매장이 들어서며 매출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김씨의 점포는 이마트24 가맹점이고, 생활용품과 식료품을 판매하는 노브랜드는 이마트가 운영하는 직영점이다. 이마트24와 노브랜드는 취급 품목과 수요 고객층이 상당 부분 겹친다. 김씨는 노브랜드가 법에 명시된 영업지역을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이마트는 동일 업종이 아니기 때문에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맞서고 있다. 울산 성남점 외에 4곳(울산 현대점, 인천 마천점∙청라봄점, 경기 평택 중앙점)에서도 유사한 소송이 이어졌다. 향후 소송 결과에 따라 이마트24와 노브랜드 간 갈등이 유통업계 전반으로 확산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울산 중구 젋음의 2거리에 이마트24(오른쪽)와 노브랜드가 서로 맞은편에 나란히 위치하고 있다. 김경식씨 제공
울산 중구 젋음의 2거리에 이마트24(오른쪽)와 노브랜드가 서로 맞은편에 나란히 위치하고 있다. 김경식씨 제공

◇가맹사업법 영업지역 침해했나

이마트24 점포 5곳이 노브랜드를 상대로 영업금지 가처분 소송을 낸 근거는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가맹사업법)’이다. 이 법 12조 4의 3항은 ‘가맹본부가 가맹점사업자의 영업지역 안에서 동일한 업종의 자기 또는 계열회사의 직영점이나 가맹점을 설치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마트24(가맹본부)는 가맹점주들과 이 법에 명시된 영업지역을 반경 250m 이내로 합의했다.

소송을 낸 이마트24 가맹점주들은 자기 점포에서 15~250m 거리에 들어선 노브랜드 직영점이 법에 명시된 영업지역을 침범했다고 주장한다. 이마트24는 이마트의 자회사고 노브랜드는 이마트의 직영점이니 노브랜드는 이마트24와 계열 관계인 데다, 취급 품목이 겹치기 때문에 동일한 업종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역시 “가맹본부뿐 아니라 계열회사에도 영업지역 침해 금지를 적용하는 게 가맹사업법의 분명한 취지”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서울동부지방법원은 작년 11월 김씨의 소송을 기각했다. 당시 법원은 가맹사업법을 지킬 의무는 가맹본부인 이마트24에 있을 뿐 모회사인 이마트와는 관계가 없다는 취지로 김씨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마트24 울산 현대점 역시 비슷한 이유로 패소했고, 김씨는 이어진 서울고등법원 2심에서도 같은 판결을 받았다. 나머지 점포 3곳은 가맹본부와 합의하고(내용 비공개) 소송을 취하했다. 이 중 2곳은 영업 중이고, 1곳은 문을 닫았다.

◇”대기업의 꼼수” VS “전혀 다른 업종”

잇따른 패소 이후 지금은 소송을 냈던 가맹점주들 중 김씨만 유일하게 소송을 이어가고 있다. 김씨는 지난해 말부터 이마트24가 이마트로부터 노브랜드 제품을 들여오지 않는 대신 편의점 전용 이마트 자체 브랜드(PB) 제품을 내놓기 시작한 데 대해 “대기업의 꼼수”라며 비판했다. 가맹점주를 모집할 때는 인기 있는 노브랜드 제품을 팔 수 있다고 적극 홍보해놓고, 이마트24와 노브랜드 간 갈등이 불거지자 부랴부랴 두 점포 간 중복 제품을 없앴다는 것이다. 김씨는 “유통대기업을 믿고 가맹 편의점을 했는데, 그 대기업이 길 건너에 이름만 바꾼 직영점을 또 차리는 건 횡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노브랜드는 원래 이마트의 PB로 2016년 4월 출시됐다. 처음엔 이마트에서 주로 판매되던 노브랜드 제품들이 이마트24에도 들어가면서 소비자 반응이 뜨거워졌다. 이에 이마트는 2016년 8월부터 전국에 노브랜드 직영점을 열기 시작했고, 결국 이마트24 가맹점주들과 갈등이 불거지게 됐다. 이마트 측은 이마트24와 노브랜드는 전혀 다른 업종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마트 관계자는 “노브랜드 직영점은 매장 내 PB 상품 비중이 70%가 넘고, 크기도 편의점과 비교가 안 되는 ‘하드 디스카운트 스토어’”라며 “초기 개점 비용도 수억원에 달해 수천만원대엔 편의점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설명했다.

◇변종 출점 길 열릴까 우려

학계와 유통업계에선 법원이 이마트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여러 형태의 ‘변종 출점’ 길을 열어준 셈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김씨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임현철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는 “대기업이 계열사를 통하면 제약 없이 동일 업종 점포를 근접 출점할 수 있게 된 셈”이라고 말했다. 가령 어느 기업이 자회사를 만들어 자사의 화장품 점포 옆에 비슷한 화장품 점포를 다른 이름으로 열어도 제재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 교수는 “입법 취지와 법문이 일치하지 않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노브랜드 직영점은 현재 전국에 200여개가 있다. 이마트는 최근 경기 군포 등 3곳에 노브랜드 가맹점도 열 예정이다. 노브랜드 직영점과 가맹점이 확장세를 이어갈수록 기존 이마트24 상권과의 갈등은 더욱 심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마트24 노브랜드 법적분쟁 사례. 그래픽=송정근 기자
이마트24 노브랜드 법적분쟁 사례. 그래픽=송정근 기자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