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 교수-진은영 시인의 ‘문학 상담’
“소년이 물고기를 온통 희게 물들인다/피투성이의 심장을 싸늘하게 해체하는/냉혹한 꿈을/슬픈 내 사랑을 품에 안고/헤엄쳐 갔다/(……)/그다지도 짧고 눈부신 몸부림/산산이 부서지고 떨어지는/사랑의 발명”
어느 기성 시인의, 혹은 시인 지망생의 시가 아니다. 기성 시에서 뽑아낸 시어를 콜라주해 기자가 30분 만에 창작한 시다. 이미 완성된 시에서 시어를 빌려온 것이기는 했지만 시어를 고르고, 자르고, 조합하고, 붙이는 동안에는 나름대로 창작의 고통과 기쁨이 함께 했다. 완성된 시를 소리 내 읽자 세상에 없던 시 하나를 탄생시켰다는 감동이 마음을 가득 채웠다.
기자가 시를 만든 것은 11일 서울 서초동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인문학상담연구소의 ‘상담, 문학을 만나다’ 집단 프로그램에서였다. 이곳에서 시는 그저 문학이 아니다. 시 콜라주를 비롯해 시 필사, 시 집단 창작을 하면서 치유와 성장을 구한다. ‘문학, 내 마음의 무늬 읽기’는 이와 같은 문학의 다양한 사용법과 문학의 치유 효과를 다룬 책이다.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문학 상담 전공교수인 진은영 시인과 같은 학교에서 철학 상담을 가르치는 김경희 교수가 함께 썼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온 벽이 책으로 둘러싸인 연구실에서 12일 만난 두 교수는 문학 상담을 “마음의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문학적 활동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자기와 세계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돕는 활동”이라고 정의했다.
서구에서는 19세기 정신 질환을 치료하는 데 문학 작품을 활용하는 비블리오테라피(독서 치료)가 시작됐고 1960년대 널리 확산됐다. 독서 치료가 질환자나 상담이 필요한 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털어놓도록 하는 데 그친다면, 문학 상담은 모든 사람들이 문학을 매개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봄으로써 자아 성장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문학의 주제가 삶의 주제와 맞닿아 있는 데다, 은유나 상징 같은 문학적 기법이 직접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는 두려움을 방어해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한국에서는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에서 유일하게 2010년부터 전공 코스를 개설했고, 진 교수와 김 교수는 2013년 합류해 문학 상담 이론을 정립하고 실제에 적용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진 시인은 문학 상담 이전에도 시인으로서 문학을 통한 사회적 실천을 고민해왔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혜신 박사와 함께 사회적 트라우마 치유를 다룬 책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를 내기도 했다. 문학이 갖는 ‘치유’의 힘은 의학이 추구하는 ‘치료’와 다르다. 치료가 고통의 원인을 찾아내 제거하는 것에 방점을 찍는다면, 치유는 고통과 함께 살아나갈 수 있는 힘을 기르는 데 목표를 둔다. “트라우마는 내가 과거에 겪은 일을 없던 걸로 만들 수가 없다는 데서 시작해요. 재난이나 사건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가 없죠. 어떻게 하면 이 고통과 함께 살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하는데, 그게 고정된 사유의 틀로는 안 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삶의 문제들을 새롭게 볼 수 있도록 ‘다른 비유’를 떠올려 보는 거죠. 그게 바로 비유의 힘이고, 문학의 힘이에요.”(진은영)
문학 상담에서는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 탁월성만 중시하는 엘리트주의 문학과는 다르게 모두가 자신의 고통과 슬픔을 글로 써내면서 느끼는 치유의 감정에 예술의 본질이 있다고 본다. 그러면서 ‘만인의 작가 되기’를 제안한다. “저는 동양 철학을 전공했는데, 동양 철학 자체가 어떻게 하면 철학을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자산으로 삼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학문이거든요. 삶의 문제를 찾는 여정을 상담으로 이어가는 게 자연스러웠죠.”(김경희) “저 역시 시를 너무 좋아해 시인이 됐지만, 전문적으로 문학적 훈련을 받은 건 아니었어요. 문학 상담은 ‘탁월한 문학’을 지향하지 않아요. 대신 모두가 자신만의 언어로 삶을 성찰하고, 치유하고, 윤택하게 만들 힘이 있다고 믿는 거죠. 문학 생산자와 소비자의 이분화를 깨는 거랄까요.”(진은영)
문학 상담은 ‘문학은 힘이 없다’는 말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표현하고 다른 이들과 나누는 과정을 통해 치유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힘’도 발휘할 수 있다고 본다. “문학이 개인의 백일몽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정책과 제도, 공동체로 확장되면 사회적 힘이 생겨요. 그게 바로 문학 교육과 예술 교육이 나아가야 할 길 아닐까요?”(김경희)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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