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완전 비핵화-일괄 타결 입장 불변
하노이에서 제재 효과 반증해버린 北
4ㆍ27 1년, 남북 정상회담 즉각 수용해야
1년 전 판문점에는 평화의 기운이 넘실댔다. 남북 정상은 도보다리에서 흉금을 터놓고 대화를 나눴다. 한반도 평화를 향한 4ㆍ27 선언이 발표됐다. 하지만 4ㆍ27 선언 1주년을 앞둔 지금 판문점에는 냉기류만 흐른다. 북미 협상은 시작 이래 가장 심각한 국면이다. 하노이 회담에서 미국은 비핵화의 궁극적 목표와 요구를 제시했다. 핵무기ㆍ핵물질 반출, 핵시설 해체, 핵개발 계획 신고와 완전한 검증이 핵심이다. 여기에 생화학무기 등의 제거까지 얹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영변 핵시설 폐쇄를 내밀었다가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합의할 준비가 안 돼 있다”는 면박을 당했다. 결정적 패착이다.
미국은 완전한 비핵화 없이 제재 완화는 없다는 입장에서 요지부동이다. 김 위원장은 연말 시한 제시와 ‘새로운 길’ 운운하며 미국에 새 ‘계산법’을 요구했지만 먹힐 리 없다. 하노이 회담에서 북은 제재 해제에 대한 간절함을 간파당했다. “빨리 가지 않겠다”는 트럼프 대통령 발언은 대북 제재 효과에 대한 확신의 발로다. 그러니 답은 트럼프 대통령이 아니라 김 위원장이 내놓아야 한다.
그러나 김 위원장으로서는 딱히 다른 방도가 없다. 전 세계를 향해 비핵화 의지를 누차 다짐한 마당이다. 그걸 뒤집고 핵실험을 재개하거나 ICBM을 쏘아 올릴 순 없다. 국제적 고립만 더 자초할 뿐이다. 핵을 버리고 경제건설 집중 노선을 택한 만큼 경제발전도 시급하다. 성과를 내지 못하면 핵 포기에 대한 강경파의 반발과 경제적 궁핍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불만이 폭발할 수 있다.
남측을 향해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 말라”고 화를 낸 것은 다급함의 표출이다. 중국에 기대어 보려 해도 제재 때문에 지원에 한계가 있다. 가뜩이나 중국도 미국과의 무역전쟁으로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 북러 정상회담을 한들 푸틴 대통령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다. 결국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에 진지하게 임하거나 우리 정부에 기댈 수밖에 없다. 시간이 문제다.
문재인 정부의 중재자 역이 더 중요해졌다. 하지만 현 단계에선 여지가 잘 안 보인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우리의 ‘굿 이너프 딜’(충분히 괜찮은 거래, 비핵화 목표ㆍ로드맵 합의+ 단계적 이행ㆍ보상) 중재안은 미국 지지를 얻는데 실패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스몰딜’(단계적 비핵화)에 고개를 저으며 완전 비핵화와 일괄 타결인 “올바른 딜”만 강조했다. 우리는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등 남북 경제협력의 제재 예외 인정도 받지 못했다. 중재를 하려 해도 북에 줄 당근책이 마땅치 않다.
그렇다고 손놓고 있을 수는 없다. 미국의 이해와 동의를 얻을 수 있는 실질적 비핵화 안을 북한으로부터 끌어내야 한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어제 “3차 북미 정상회담 전에 김 위원장이 핵무기 포기를 위한 ‘전략적 결정’을 했다는 ‘진정한 징후’를 보기 원한다”고 말했다. 영변 핵시설 폐쇄를 넘어 미국이 제시한 완전한 비핵화나 그에 근접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우리로선 4차 남북 정상회담 개최 시 북에 제시할 ‘진정한 징후’ 포함 조치를 협의ㆍ고민할 때다.
공은 김 위원장에게 가 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제재의 그물망을 벗어날 수 없는 게 북의 처지다. 김 위원장은 자신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의심을 제거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그게 아니면 체제 안전과 경제 발전을 보장받지 못한다. 다시 핵 단추를 만지게 되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만 초래할 뿐이다. 제재와 무관한 남북 교류사업을 중단하거나 저강도 무력시위로 위협해 보는 소아적 태도는 버려야 한다. 자주 거론하는 ‘민족의 일원’으로서 우리 정부와 다각적인 협의를 즉각 시작하는 게 바람직하다. 체면과 자존심까지 접고 태평양을 넘나드는 중재자 입장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4차 남북 정상회담 개최는 주저하거나 회피할 일이 아니다. 4ㆍ27 1주년도 좋고 다른 날도 좋다. 김 위원장은 빨리 문재인 대통령과 마주 앉아야 한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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