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당신의 런던]
런던에서 세월호 추모 집회 5년째
“매달 새로운 사람들 함께 해줘 희망”
영국인 젠슨씨, 한국인 아내와 기획
집회 60회 맞아 세월호 영화 상영도
런던 심장부에 위치한 트라팔가 광장은 영국 민주주의의 상징적 공간이다. 19세기 노동자의 참정권을 외친 차티스트 운동부터 여성의 선거권을 주장한 서프러제트, 이라크 전쟁 반대,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문 반대 집회까지. 3세기에 걸쳐 수많은 시위와 집회가 열렸다. “런던의 모든 집회는 트라팔가 광장에서 시작하거나 끝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여기서 매달 세째 주 토요일마다 세월호 추모 집회가 열린다. 2014년 5월 시작된 집회는 세월호 참사 5주기를 사흘 앞둔 지난 13일 60회를 맞았다. 매주 다양한 메시지를 들고나오는 여타 집회들과 달리, 여기에는 그 흔한 구호도 선전물 배포도 없다. 10명 남짓에서 많게는 60명 정도가 모여 90분 동안 말없이 자리를 지킬 뿐이다.
“세월호 희생자 부모님들의 침묵행동에서 착안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침묵이 반다나(머리밴드)를 하고 구호를 외치는 것보다 더 적극적으로 사람들의 참여를 끌어낸다는 걸 경험하고 있어요.” 영국인 앤드류 젠슨씨의 말이다. 현재 가정주부로 살고 있다는 그는 런던대 교직원으로 근무 중인 한국인 아내 대비 김씨와 5년 전 이 세월호 집회를 기획했다.
두 사람을 만난 17일, 트라팔가 광장에서 100m 남짓 떨어진 한국문화원에서는 세월호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기억의 부재’와 ‘엄마 나예요, 아들’ 상영회가 진행됐다. 백발의 남성과 히잡을 쓴 아랍 여성 등 30명 가량의 영국인 관객들이 먼 이국땅에서 벌어진 그 날의 비극을 숨죽인 채 지켜봤다.
이 역시 세월호 참사 5주기를 맞아 젠슨씨 부부가 준비한 자리였다. 한국문화원은 경북 성주 소성리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 갈등과 한진중공업 사태 등 한국 현대사의 주요 장면을 조명한 영화들을 꾸준히 선보여왔지만 세월호 이야기가 스크린에 걸린 것은 처음이었다. 아내 김씨는 “상징적인 날이다. 세월호 영화를 정부 소속 기관(한국문화원)에서 상영하게 될 줄은 몰랐다”라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노란 리본이 달린 목걸이를 걸고 관련 홍보물을 비치하는 두 사람은 영락없는 활동가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2003년 이라크 전쟁 반대 집회에 참여했을 때만 해도 이들은 ‘행동(Activism)’의 힘을 믿지 않았다. 젠슨씨는 “영국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모였는데도 정부가 이라크 공격을 감행하는 것에 실망해 한동안 어떤 집회에도 가지 않았다”는 경험을 털어놨다.
그랬던 이들이 본격적으로 시민사회 활동에 뛰어든 것은 2011년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투쟁 때부터다. 당시 영국으로 유학 온 한국인 여학생의 1인 시위에 깊은 감명을 받은 게 계기가 됐다. 그 후 이들도 위안부 문제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영국 사회에 알리는 등 다양한 이슈에 목소리를 냈다.
“솔직히 세월호 참사에 별로 놀라지 않았어요.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많이 봐왔기 때문이죠.” 정치적 이견을 가진 이들의 화살이 세월호 희생자 가족을 향할까 우려한 젠슨씨는 자신들의 세월호 집회가 정치색을 띠지 않도록 주의했다고 한다. 대비 김씨는 “또래인 희생자 부모들을 보며 우리는 아이가 없지만 얼마든지 내 일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라며 “전적으로 희생자 가족들을 지원하고 싶은 마음에 집회를 열었다”고 설명했다.
참사 당시 여러 국가에서 동포들의 연대가 있었다. 영국은 신고 없이도 집회가 가능한 국가라 더욱 장벽이 낮을 법했다. 대비 김씨는 그러나 “집회 참여에 따른 일상에서의 불이익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한국인들은 여기서도 비슷한 두려움을 드러냈다”며 “타인의 신변이나 재산을 해하지 않는 이상 집회 시위의 자유가 철저히 보장되는 이 나라에서 권리를 누리라고 알려주는 것도 매우 중요했다”고 말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부부는 매달 같은 자리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렸다. 극우 인종주의자들의 집회와 겹치면서 여성과 아동 참가자의 안전을 고려해 딱 한 번 장소를 바꿨을 뿐이다. 그러는 동안 아무도 집회에 오지 않을까 걱정하는 날도 있었고, 영국인이나 정부에 특별히 요구하는 바가 없어 무력감이 들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매달 새로운 사람들이 합류하고, 한국인 여행객들의 감사와 격려 인사를 들을 때면 힘이 났다.
대비 김씨는 이제는 친구가 된 희생자 가족을 포함, 집회를 통해 만난 다양한 인연들이 활동을 계속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했다. 젠슨씨도 “세월호 가족들과 힐스버러(1989년 힐스버러 경기장이 무너져 96명이 사망한 사고) 희생자 가족들을 소개해 준 게 기억에 남는다”며 “서로 대화는 잘 통하지 않아도 큰 위로가 되는 자리였다”고 뿌듯해했다.
트라팔가 세월호 집회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대비 김씨는 “폐쇄회로(CC)TV 증거 조작 등 최근 새로 드러난 이슈들 때문에 다시 첫날로 돌아간 기분”이라며 희망을 기다리는 일에는 기약이 없다고 했다. 5주기를 준비하면서 집회 종료도 고려했지만 정부만 바뀌었을 뿐 책임자 처벌이나 안전 보장 시스템 개선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은 매한가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세월호가 지겹다”는 정치인들이 있다. 두 사람에게 그들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 물었다. 대비 김씨는 “그들은 사람이 아닌 것 같다”라며 어려워했지만 젠슨씨는 “그들이 사람이라 희망이 있다”고 했다.
“사람이기에 마음을 바꿀 여지가 있잖아요. 앞으로 저희와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 수 없지만 시도해보는 것, 그게 ‘운동’의 본질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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