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 군벌의 수도 진격으로 시작된 리비아 내전 양상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의 돌연한 변심으로 크게 요동치고 있다. 그동안 서부 통합정부와 동부 군벌 사이에서 모호한 태도를 보여 온 미국이 동부 군벌 리비아국민군(LNA)을 이끄는 칼리파 하프타르 최고사령관에 대해 사실상 지지 의사를 밝혔다. 원유 가격 안정과 대테러 방침을 고려한 실리주의적 판단에 따른 것으로도 볼 수 있지만, 유엔과 미국의 서방 동맹국이 지원하는 서부 통합정부가 존립에 중대한 타격을 입으면서 내전이 격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20일(현지시간) 밤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서 공습이 벌어졌으며, 미사일 중 하나가 서부 리비아통합정부군(GNA) 캠프를 강타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외신은 리비아 통합정부가 트리폴리에서 유일하게 운영되던 미티가 국제공항을 폐쇄했으며, 지난 4일 LNA의 진격 선언 이후 현재까지 양측에서 227명이 숨지고 1,128명이 부상했다고 전했다.
로이터는 동부 군벌의 이날 공습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영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하프타르 사령관의 통화 사실이 공개된 이후 폭력이 급증하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 19일 미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나흘 전 통화에서 “대 테러전과 리비아의 석유자원 확보 등에서 하프타르 사령관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고 밝혔다. 유엔(UN)이 인정하는 리비아 통합정부의 파예즈 알-사라즈 총리대신 하프타르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힌 셈이다.
이는 당초 사태를 관망하던 미 정부의 입장을 180도 뒤집은 것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8일까지만 해도 “하프타르 세력의 군사 공격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돌연한 변심과 지지 선언으로 하프타르의 입지는 한층 더 커지고, 반대로 휴전을 위한 UN의 중재 노력은 어려움에 처했다.
그간 미국은 UN 등과 함께 공식적으로 통합정부를 지지하면서도, 애매한 입장을 보였다. 동부 유전지대를 장악하고 있는 하프타르 사령관을 통해 북아프리카 최대 산유국인 리비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탓이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행정부는 리비아의 석유 생산량이 미국 내 물가를 낮추는 데 중요하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또한 하프타르는 2014년부터 이슬람 원리주의를 추종하는 무슬림형제단을 주축으로 한 통합정부를 ‘테러 집단’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타도하겠다는 명분을 앞세워 군사작전을 펼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 표명은 LNA에 승산이 있다는 판단 아래, 실리적 선택을 내린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NYT는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이 당과 무관하게 ‘민주주의 지지자’ 역할을 해온 것과 급격하게 이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서부 통합정부가 형식상 민주적 절차에 따라 구성됐고 유엔과 서방 세계 지지를 받아 온 만큼 미국도 이를 따라야 한다는 논리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리비아 전문가 프레드릭 웨레이는 “원유가격 안정과 대테러 전투라는 미국의 냉철한 목표를 고려한다 해도, 정말 충격적인 변심”이라고 평가했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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