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 주최 전문가 좌담회
우리 집 침실은 안전한가. 최근 10년간 주택에서 발생한 화재 사망자 4명 중 1명이 침실에서 숨진 것으로 나타나면서 침대 매트리스의 화재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불이 났을 때 매트리스가 ‘플래시오버(flashoverㆍ화재가 급격히 확산되는 단계)’로 이끄는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면서다.
한국일보는 화재에 취약한 침대 매트리스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침실이 위험하다(1월 24일, 28일, 2월 1일자 보도)’ 시리즈에 이어 ‘화재사고 사망 피해를 줄이기 위한 침대 매트리스 난연(難燃) 규정 개선 방안’을 주제로 전문가 좌담회를 개최했다.
지난 17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한창만 지역사회부장 사회로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박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정욱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 제품안전정책국장, 신이철 방재시험연구원 선임연구원, 유용호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화재안전연구소 연구위원(가나다 순)이 이야기를 나눴다.
-실제 침대 매트리스의 화재 위험성이 어느 정도인가.
신이철 선임연구원(이하 신)=실내 가연물의 화재 위험을 판단하는 요소 중 하나가 ‘노출 표면적’이다. 침대 매트리스는 소파, 장롱과 마찬가지로 표면적이 넓고 불이 쉽게 붙는 쿠션재로 내부가 이뤄져 있다. 화재 시 화염을 인접 가연물로 빠르게 전파시키고, 플래시오버에 이르는 데 지배적인 역할을 하는 가연물이라 위험하다.
-매트리스 화재 안전성을 검증하는 방법으로 국가기술표준원이 제정한 이른바 ‘담뱃불 시험법(KS G 4300)’이 있는 것으로 안다.
유용호 연구위원(이하 유)=담뱃불 시험법은 국제표준화기구(ISO)의 표준을 차용한 것이다. 그러나 이후 2011년 ISO는 매트리스에 대한 실물 규모 화재 시험법인 이른바 ‘버너 시험법(ISO 12949)’을 정했다. 우리도 이제 버너시험법의 도입을 검토할 때가 됐다.
박정 국회의원(이하 박정)=2017년 국가기술표준원에서 ISO의 버너 시험법을 기준으로 표준화한 ‘KS F ISO 12949’를 만들었지만 강제 규정이 아니라 따라야 할 의무가 없다.
-최근 유튜브에서 난연 소재 매트리스와 일반 매트리스를 대상으로 한 화재 실험 동영상이 화제가 됐다. 신 선임연구원이 이 실험을 직접 설계ㆍ주관한 것으로 알고 있다.
신=실험 방법은 ‘KS F ISO 12949’로 실물 규모의 매트리스 상단과 측면을 버너로 각각 70초, 50초를 가열한 후 30분 동안 관찰하면서 발생하는 열량을 측정하는 시험이다. 난연 매트리스는 버너를 떼면 화염이 사그라지고 자연 소화됐는데, 일반 매트리스는 짧게는 4분 만에 다 타버렸다. 폼 매트리스는 폼이 녹으면서 국물처럼 뚝뚝 떨어지면서 옆에 퍼져 불붙지 않은 쪽까지 확산되기도 했다. ‘이 정도로 위험한 줄 몰랐는데 생각보다 심각하구나’라는 게 영상을 본 사람들의 공통적인 반응이다.
-해외의 난연 규정은 어떤가.
유=가장 엄격한 난연 규정을 둔 곳은 미국과 캐나다다. 2006년 미국에서 만든 실물 규모 화재 시험법(CFR 1633)을 ISO가 그대로 국제표준화한 게 ‘ISO 12949’다. 앞서 얘기한 방식으로 실물 크기의 매트리스에 버너로 붙을 붙여 실험한다. 이때 30분간 최대 열방출률이 200㎾이하, 10분간 15MJ(메가줄ㆍ총 열방출률을 나타내는 단위) 이하여야 통과다. 상당히 엄격한 조건이다. 그대로 적용하기엔 시장 반발이 예상되는 만큼 우리나라에 어떻게 적용해 어디서부터 단계별로 확대해나갈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공하성 교수(이하 공)=매트리스의 난연화는 화재 안전 측면에서는 좋지만 그로 인한 국민 부담을 얼마나 줄일 것이냐가 관건이다. 가격을 낮추는 방법도 제조업체나 매트리스 화재를 연구하는 분들이 추가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
-2017년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 상 매트리스가 기존 3등급에서 가장 낮은 4등급으로 격하되면서 제품 실험을 받지 않아도 국내 판매와 유통, 수입이 가능해졌다.
박정욱 제품안전정책국장(이하 박)=화재를 포함한 여러 가지 유해요소를 종합적으로 본 안전기준이다. 2018년 화재보험협회 자료를 보니 전자제품에서 불이 발생한 게 32%, 식품 15.7%, 종이ㆍ목재 13%였던 반면 매트리스 자체에서 불이 난 건 0.6%였다. 어디에서 불이 났나 봤더니 주방 29.6%, 침실 15.5%, 거실 8.6%로 침실에서 확실히 불이 많이 난 것은 맞다. 침대 자체에서 불이 붙은 것은 0.6%인데 불이 옮겨 붙으면 위험하고, 다행히 그렇지 않으면 그 자체로는 큰 의미가 없는 거다. 그 다음 사망 통계도 좀더 분석이 필요하다고 본다. 침실 화재로 사망이 많았다는 것과 매트리스에 불이 난 것, 옮겨 붙은 것 간의 인과관계가 있어야 침실 화재와 매트리스를 연계해 볼 수 있는데 아직 그 부분에 대한 명확한 분석이 없다. 침실 이외 장소에서 불이 나서 발생한 유해가스로 사망에 이르렀다고 볼 가능성도 높다. 불이 붙었을 때 매트리스가 유해한 것은 맞는데 매트리스가 화재 사망의 원인인지에 대해서는 좀더 다뤄볼 여지가 있다.
공=한정적이지만 단란주점이나 유흥주점 같은 다중이용업소의 소파에 대해서는 소방법에서 방염(防焰) 처리를 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을 도입했다. 매트리스의 난연과 같은 개념이다. 그런 위험성을 본다면 사실 소파보다 면적이 더 넓은 매트리스는 더 위험한 가구가 아닌가.
-국내에서는 정부에 앞서 난연 규정을 적용하는 등 선제적 대응에 나서는 업체로는 난연 매트리스를 개발한 시몬스 침대 정도가 있는데, 난연 규정이 의무화하면 중소업계에서 따라올 여력은 있나.
신=사실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이 따라올 수 있을까 우려가 많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최근 시험 의뢰가 많이 온다. 대기업이 할 수 없는 틈새시장을 공략하려다 수요가 없다 보니 투자를 못하고 기술만 갖고 있었는데 최근 난연 매트리스가 이슈화되면서 의뢰를 한 것이다. 우려와 달리 업체들도 난연화에 대한 준비를 어느 정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보다는 오히려 원가 절감 문제가 더 클 것 같다. 처음에는 수요가 적어 원가가 올라갈 수 있지만 이후 보편화되고 주거시설까지 확대된다면 대량 생산이 가능해져 충분히 가격을 낮출 수 있다고 본다.
박정=오히려 소비 활성화를 불러올 수도 있다. 또 침대를 수출할 단계가 됐는데 다른 나라의 규제에 맞추지 못해 수출을 못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소비를 진척시켜 우리 산업에 도움이 되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
-정부나 국회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유=우리나라도 기본적으로 ISO의 국제표준기준에는 부합하지만 다만 판단 기준이 빠져 있다. 앞서 얘기가 나왔듯 열방출률 200㎾, 15MJ 이하라는 기준은 상당히 세다. 이대로 도입할 것인지는 더 많은 논의가 있어야 되겠지만 우리나라의 기준을 만들고 실물시험법으로 가기 위해서는 정책기조에 드라이브를 걸어 줘야 한다고 본다. 일반 주거지역에 한꺼번에 하기보다는 단계적으로 고위험군으로 들어갈 수 있는 피난약자들이 다수 모여있는 요양병원 같은 군집시설에 먼저 적용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방법이 될 것 같다.
공=매트리스의 화재 위험성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공감대가 형성돼있다. 그렇다면 먼저 위험성이 높은 공공시설이나 다중이용시설부터 난연 매트리스를 사용하도록 규제하고, 일반 가정은 국민들 스스로 따라올 수 있도록 홍보나 계도를 해야 한다. 난연 매트리스가 일반 제품보다 비용은 더 들지만 실제 화재가 났을 때 결과적으론 경제적으로 더 이익이라는 것을 알려야 한다. 그렇다면 법으로 규제하지 않더라도 소비자들이 난연 매트리스를 구입하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싶다.
박=정부 정책을 하는 입장에서는 기본 목적에는 동의하지만 수단으로 만드는 건 어려운 문제다. 시간을 갖고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 일단 우리나라 표준시험법을 만들어 놨으니 일차적으론 준비가 돼 있다. 다만 이걸 강제할 것인지, 어느 단계까지 적용할 것인지는 논의가 더 필요하다. 생산자 간 이해, 소비자의 경우도 경제적 여유가 되거나 고급 제품을 선호하는 지 등 다양한 욕망을 조율해야 할 부분이 있다. 유럽연합(EU)과 일본은 우리가 하고 있는 강제 시험조차 강제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 부분까지 종합적으로 판단해 국민 안전을 위한 정책에 반영하겠다.
박정=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시민 의식이 높아지면서 안전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지만 그럼에도 아직 연구가 충분치 않다고 생각된다. 침실에서 불이 났을 때 세부적으로 발화점이 어딘지, 유독가스는 얼마나 발생하는지 세부적인 연구가 더 필요하다. 또한 부담이 되더라도 안전을 위해 쓸 수 있도록 시민의 선택권 차원에서 이런 내용을 꾸준히 알릴 필요가 있다. 적정한 시기에 법이 필요하면 선도적으로 제정할 수 있게 국회에서도 꾸준히 이 문제를 제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한창만 지역사회부장
정리=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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