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 블랙핑크에 신인 NCT127까지 지상파 방송사서 신곡 무대
“미국 방송이 ‘뮤직뱅크’?” 보아ㆍ원더걸스 10년 전 ‘미국 진출’과 달라
다섯 명이 노래해야 하는 데 정작 무대엔 마이크 하나밖에 없었다. 미국 유명 형제 그룹 조너스 브러더스의 현지 순회공연 오프닝 무대에 선 K팝 아이돌그룹은 ‘찬밥’ 신세였다. 노래 ‘텔미’와 ‘소 핫’ ‘노바디’를 연달아 히트시키며 한국에서 ‘국민 아이돌’로 불렸던 명성은 통하지 않았다.
◇박진영은 미국에서 ‘원더걸스 전단’ 돌렸는데
원더걸스가 2009년 시도한 미국 진출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원더걸스의 소속사인 JYP엔터테인먼트의 대표 프로듀서이자 가수인 박진영은 거리로 나가 원더걸스 홍보 전단을 돌렸다. 원더걸스는 조너스 브러더스 공연 후 나가는 관객을 붙들고 “사진 찍자”며 먼저 제안했다. 그룹 이름과 얼굴을 알리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미국 지상파 TV와 라디오 방송의 벽이 높아 주류 미디어에서 K팝을 소개할 기회를 잡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10년 후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BTS)은 지난 12일 새 앨범 ‘맵 오브 더 솔: 페르소나’를 낸 뒤 13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지상파 방송사 NBC의 간판 쇼인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에서 신곡 ‘작은 것들을 위한 시’ 무대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또 다른 아이돌그룹 블랙핑크는 19일 지상파 CBS 유명 토크쇼인 ‘더 레이트 레이트 쇼 위드 제임스 코든’에 출연해 신곡 ‘킬 디스 러브’를 불렀다. 방탄소년단은 1,000만여명의 청취자를 보유한 미국 유명 라디오 방송사 아이하트의 ‘엘비스 듀란 쇼’ 등에, 블랙핑크는 앞서 방탄소년단이 출연했던 키스FM ‘조조 온 더 라디오’ 등에도 초대받았다.
세계를 안방처럼 누비는 유명 K팝 그룹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신진 그룹 NCT127은 18일 지상파 ABC 아침 정보 프로그램 ‘굿모닝 아메리카’에서 내달 발표할 새 앨범 타이틀곡 ‘슈퍼휴먼’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한국에서조차 낯선 K팝 아이돌그룹의 신곡 첫 무대가 세계 최대 음악 시장인 미국이었던 것이다. 미국 지상파 방송사와 주류 라디오가 경쟁적으로 K팝 아이돌 그룹 섭외에 열을 올리는 분위기다. K팝 아이돌그룹 미국 진출 1세대인 보아와 원더걸스가 미국 시장을 두드린 2000년대 후반엔 상상하기 어려웠던 풍경이다.
방탄소년단부터 신인그룹까지 워낙 다양하게 미국 주류 미디어에 소개되다 보니 한국 음악 관계자들 사이에선 “요즘 미국 방송을 보면 (KBS 음악프로그램) ‘뮤직뱅크’ 보는 것 같다”는 너스레까지 나온다.
◇K팝으로 시장 확대 나선 미국 전통 미디어
보아와 원더걸스는 북미 최대 연예 에이전시인 CAA의 지원을 받고 미국 음악 시장에 발을 들였다. 하지만 현지 전통 미디어들은 제3세계 한국 가수의 소개를 꺼렸다. 주류 문화 시장에서 K팝에 대한 인지도가 낮아 대중적 호응이 떨어진다고 여겼다.
이후 빅뱅과 소녀시대를 비롯해 싸이 등 한국 가수들이 연달아 미국 시장을 두드리면서 K팝의 저변은 넓어졌다. 방탄소년단의 활약을 계기로 비주류 취급 받던 K팝의 위상은 높아졌다. 대형 K팝 기획사 고위 관계자는 “세계 최대 동영상 사이트인 유튜브에서 폭발적으로 K팝이 소비됐고, 미국 최대 음원 사이트인 스포티파이에선 K팝 카테고리가 따로 생겼다”며 “뉴미디어에서 분 K팝 열풍이 TV나 라디오 같은 전통 미디어에까지 옮겨 붙어 요즘 미국에서 K팝 소비가 대대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경제매체 마켓워치에 따르면 2015년 이후 스포티파이에서 K팝 소비는 해마다 65%씩 증가하고 있다. 전통 미디어가 뉴미디어에서 이뤄지고 있는 폭발적인 K팝 소비를 뒤늦게 확인한 후 K팝을 끌어안으며 시장 확대에 나서고 있다.
미국 내 높아진 문화 다양성 요구도 K팝 부상에 문화적 발판이 됐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트럼프 정부의 ‘백인 포퓰리즘’에 대한 반작용으로 제3세계 미국인들이 문화적 주체성을 내세우기 시작했다”며 “K팝이 해방구”라고 말했다. 빌보드의 칼럼니스트인 제프 벤저민은 본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미국 청년들이 K팝이 번창하는 소셜미디어와 함께 성장하며 취향이 변해 K팝을 편견 없이 봐 세력이 커지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 ‘아미’가 K팝 알려”
방탄소년단의 팬덤인 아미는 비영어권 음악에 인색한 미국 라디오 방송사의 편견을 허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클라호마주의 라디오 방송사 KJYO의 PD인 제이제이 라이언은 최근 빌보드와의 인터뷰에서 “방탄소년단 팬들이 라디오 DJ들에게 적극적으로 선곡을 요청하면서 ‘K팝이 무엇인가’를 환기했다”고 말했다. 미국 내 음악 소비 흐름을 조사하는 닐슨뮤직에 따르면 방탄소년단의 ‘작은 것들을 위한 시’는 샌프란시스코 라디오 방송사 KYLD에서 17일까지 80번 송출됐다. 곡이 공개된 지 닷새 만이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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