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파견업체 소속으로 한 기업의 프로젝트에 투입됐던 차원진(가명ㆍ36)씨는 하루하루를 불안한 마음으로 보내야 했다. “어떤 프로그램을 써봤느냐”는 기업 측 질문에 그는 전혀 다뤄보지 않았던 프로그램의 이름을 대며 얼버무리기 바빴기 때문이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그는 대학 졸업 후 한 컴퓨터학원에서 빅데이터 개발 과정을 6개월간 공부한 뒤 처음으로 한 파견업체에 취업 원서를 냈다. 하지만 실무 경력이 전혀 없던 차씨에게 이 파견업체는 “나이가 어느 정도 있으니 3년 경력이 있는 거로 계약하자. 연봉도 신입보다 더 줄 수 있다”라며 솔깃한 제안을 했다. 경력 있는 개발자를 파견할 경우 프로젝트를 수주할 때 인건비를 더 받을 수 있어 이익이 크다는 계산 때문이다. 차씨는 “파견업체에 취업한 뒤 업체가 강사를 초빙해 한 달짜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교육과정이 있었는데 나중에 해당 프로젝트 내용은 그대로 나의 허위 경력 3년 안에 진행한 프로젝트가 됐다”라며 “파견업체 사이에서 나이가 조금 있는 신입사원이면 경력을 부풀려 일터로 보내는 일은 아주 흔하다”라고 말했다.
금융권 ‘차세대 프로젝트’에 투입된 개발자들의 과부하의 한 배경으로 IT 인력 수급의 구조적인 모순 때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개발자 인력은 하청에 하청을 거듭하며 최하단인 파견업체에서 인력을 공급하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이들 업체에서 인건비를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 훈련이 전혀 되지 않은 신입이나 저년차 개발자들의 경력을 부풀려 투입하게 되고, 결국 업무 미숙으로 일부 개발자에게 일이 쏠리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실제 차씨가 속했던 파견업체에서 한 달간 교육한 14년 차 프리랜서 개발자 장현정(가명)씨는 “그나마 한 달이라도 교육을 시키고 현장에 보내는 파견업체는 아주 양심적으로 보일 정도로 경력을 부풀린 뒤 현장에 밀어 넣는 게 일반적”이라며 “최악의 경우 신입사원을 7년차라고 속인 것도 봤고 군필인데 미필인 것처럼 해서 경력 부풀리기를 합리화한 경우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학원에서 6개월짜리 교육과정을 이수한 이들도 파견업체의 이 같은 관행을 잘 알면서도 취업을 위해 서로 합의하는 것”이라며 “교육했던 이 중에 현장에 나간 뒤에 ‘회사에서 이런 걸 물어보는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느냐’라며 전화를 걸어오는 경우도 많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관행은 프로젝트를 발주하는 입장에서도 묵인하는 경우가 흔하다는 게 개발자들의 설명이다. 4년차 개발자 김영호(가명)씨는 “내가 다녔던 학원에서는 거의 3분의 2가 이런 식으로 경력을 부풀려 파견업체로 갔다”라며 “발주처도 검증할 만한 능력이 안 되고 시간이 없으니까 파견인력을 제대로 면담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일단 프로젝트를 기한 내 끝내기만 하면 이후 다시 수정할 수 있다는 생각이 팽배해 알면서도 제대로 된 업체를 찾아 나서려는 노력을 별로 하지 않는 악순환이 일어난다”라고 설명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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