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국내 축구계에서 인조잔디는 ‘아마추어 전용’으로 여겨진다. 흔히 중ㆍ고등학교 운동장에서 볼 수 있는 인조잔디가 단단하고 거칠다는 보편적 인식 탓이다. 또한 경기장 품질의 척도가 천연잔디-인조잔디-흙 순으로 도식화하면서 천연잔디가 아닌 곳에서 펼쳐지는 프로경기는 상상하기 어려워졌다.
하지만 해외리그에선 기후 여건에 따라 천연잔디를 대신해 인조잔디를 택하는 경우도 많다. 물론 그 첫 번째 이유가 잔디 생육에 불리한 기후와 막대한 유지비용 탓이지만, 이후 웬만한 천연잔디에 버금가는 품질의 인조잔디가 속속 개발되면서 인조잔디를 선호하는 리그가 점차 늘고 있다. 유럽 명문 클럽에선 인조잔디와 천연잔디를 혼합한 하이브리드 잔디가 ‘대세’로 떠오르는 추세로, 한국의 파주 축구국가대표팀 트레이닝센터(NFC)에서도 국내 최초의 하이브리드 잔디 설치작업이 진행 중이다.
프로축구 리그 가운데 인조잔디 활용 비율이 높은 곳은 단연 북미 프로축구 메이저리그사커(MLS)다. MLS의 인조잔디 구장들은 국제축구연맹(FIFA)의 인조잔디 인증 제도에서 최고 등급(2스타)을 유지하고 있어 국제 대회 개최도 가능한 수준으로 알려졌다. 실제 MLS 소속 구단 가운데 밴쿠버와 애틀랜타, 시애틀, 포틀랜드, 뉴잉글랜드가 홈 구장에 인조잔디를 설치했다. 단단한 재질의 인조잔디를 선호하는 미국프로풋볼(NFL) 팀들과 같은 홈 구장을 쓰며 지출을 최소화하는 자구책이기도 하다.
한국 국가대표 미드필더 황인범(23)이 소속된 벤쿠버 홈구장 BC플레이스스타디움의 경우 1년에 160일 이상 비가 오는 이 지역 기후 탓에 아예 돔 구장을 만들고 인조잔디를 깐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 대학팀, 여자축구팀과 경기장을 함께 사용하는 포틀랜드 팀버스는 홈 구장 프로비던스파크의 인조잔디를 2년마다 전면 교체하는 등 유지보수에 심혈을 기울인다고 한다.
유럽에서도 인조잔디 활용은 보편적이다. 네덜란드와 노르웨이, 스웨덴 등 연평균 기온이 10도 아래로 내려가는 북유럽 국가들과 천연잔디의 유지보수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2부리그 팀들에서 인조잔디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네덜란드 프로축구에서 소속된 헤라클레스 알메로와 FC 즈볼레를 비롯해 김남일(42)이 뛰었던 SBV 엑셀시오르 등이 인조잔디를 사용한다.
물론 인조잔디에 대한 거부감을 호소하는 선수들도 많다. 유럽리그에서 뛰다 MLS로 이적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38ㆍLA갤럭시)는 부상 우려 때문에 지난해 8월 시애틀과의 원정경기에 출전을 거부하기도 했다. 인조잔디 반대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었던 네덜란드 프로축구는 2020~21 시즌부터 천연잔디를 사용하는 구단에 리그 수익 배분에서 우선권을 주기로 했다.
이런 가운데 절충안으로 떠오른 건 천연잔디와 인조잔디를 혼합한 하이브리드 잔디다. 이탈리아 명문 AC밀란과 인터밀란의 홈 구장 ’산 시로’도 잔디생육 문제로 하이브리드 잔디를 쓰고 있고,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의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올드 트래포드와 첼시의 스탠포드 브리지, 아스널의 에미레이츠 스타디움도 하이브리드 잔디를 쓰고 있다.
하이브리드 잔디에서 인조잔디가 차지하는 비율은 대체로 5% 이내의 매우 적은 수준이지만, 천연잔디의 뿌리를 지탱해주는 역할을 해 내구성을 확보한단 장점이 있다. 또한 겨울철에는 인조잔디 때문에 그라운드 전체가 푸른 색이 유지돼 관중들을 위한 시각 효과까지 제공한다. 비시즌 기간인 여름엔 롤링스톤즈(올드 트래포드)와 아델(웸블리) 등 유명 아티스트의 공연을 유치해 부가 수익을 올리는데, 이에 비난 여론 부담도 상대적으로 적다. 손흥민(27ㆍ토트넘)이 새 구장 1호골 역사를 쓴 토트넘 핫스퍼 스타디움은 천연잔디 구장 아래 인조잔디를 설치한 이중 구조로, 각종 공연과 NFL 경기 시에는 천연잔디를 걷어내고 인조잔디를 사용하도록 설계돼 있다.
한국에서도 축구 국가대표팀이 사용할 하이브리드 잔디 도입 실험이 지난해부터 시작됐다. 스페인에서 개발된 ‘팔라우터프’ 시스템을 국내로 들여오는 과정에서 생육실험을 거치지 않은 채 파주NFC 백호구장에 전면 도입한 데다 공사 실패에 대한 구체적인 보상 계획이 명문화 되지 않은 채 공사가 시작돼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으나, 일단 축구계에선 국내 하이브리드 잔디 설치 성공 여부와 대표팀의 활용도에 큰 관심을 쏟고 있다. 시공업체 ‘윌링투’는 6월 개장을 목표로 막바지 공사에 들어갔으며, 현재 인조잔디를 설치를 완료한 뒤 천연잔디 파종을 앞둔 상태다. 협회 관계자는 “(하이브리드 잔디 도입으로)선수들의 무릎, 발목 등의 충격을 감소시키고 디봇(divotㆍ잔디 파임 현상)을 최소화해 훈련 시 선수들의 부상 위험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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