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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붐업! K리그] 사시사철 푸른잔디 위해… 보일러 깔아주고 바람 길 열어주고

입력
2019.04.25 07:0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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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누더기 그라운드 오명 벗어라

서울월드컵경기장의 ‘히팅&쿨링’ 시스템, 난방ㆍ냉각으로 잔디 개선 노력

대구FC 새 홈 구장은 코너 4곳과 관중석에 통풍 설계로 최상급 잔디 생육

#올해로 37번째 시즌을 맞는 K리그는 아시아 최고수준의 프로축구 리그로 평가되지만 스타들의 해외 이적과 구단 운영의 ‘자금줄’ 역할을 하던 기업ㆍ지방자치단체의 지원 축소 등 악재가 겹치며 암흑기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일보> 는 연중기획 [붐 업! K리그]를 통해 프로축구 흥행을 위한 과제를 짚고, 축구계 모든 구성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K리그 부활 방안을 심도 있게 모색하고 있다.

인천 유나이티드 홈구장인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시즌 첫경기가 열린 지난달 9일 관중들이 고르지 못한 잔디에서 펼쳐지는 K리그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은 사방이 막혀 통풍이 되지 않는 데다, 일조량도 적어 잔디 생육에 가장 불리한 설계란 평가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인천 유나이티드 홈구장인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시즌 첫경기가 열린 지난달 9일 관중들이 고르지 못한 잔디에서 펼쳐지는 K리그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은 사방이 막혀 통풍이 되지 않는 데다, 일조량도 적어 잔디 생육에 가장 불리한 설계란 평가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프로축구 K리그 각 구단들은 최근 수년간 시즌 개막 때부터 종료 때까지 ‘잔디와의 전쟁’에 매달린다. 말이 전쟁이지 해가 갈수록 급변하는 기후 탓에 봄에는 더디 자라나고, 여름엔 순식간에 죽어가는 잔디를 넋 놓고 바라보며 백기를 드는 경우가 다반사다. 어떤 해엔 극심한 가뭄으로 잔디 뿌리가 타 들어가고, 어떤 해엔 집중호우에 뿌리가 썩어 들어가 선수들의 경기력과 안전에 심각한 지장을 준다는 게 현장 목소리다.

K리그의 ‘누더기 그라운드’에 대한 아쉬움은 지난달 축구팬 21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본보 3월 28일자 24면)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K리그 구단들이 가장 노력해야 할 대목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들은 ‘경기력 향상’과 ‘스타선수 영입’과 더불어 ‘잔디 등 경기장 환경개선’을 꼽았다. 최근 1년사이 K리그 관람 유경험자 가운데 16%, 무경험자 가운데 16.1%가 환경개선의 필요성을 얘기했다. 주관식 문항에도 ‘잔디 보수 시급’과 ‘하이브리드 잔디 도입’ 등의 목소리가 많았다.

대구FC의 새 홈 구장 DGB대구은행파크에서 첫 경기가 열린 지난달 9일 관중들이 푸른 잔디에서 펼쳐지는 K리그 경기에 몰입하고 있다. DGB대구은행파크는 경기장 코너플래그 쪽 4곳에 바람 길을 열고, 알루미늄 재질의 관중석에도 통풍을 위해 틈을 둬 잔디 생육에 유리하도록 설계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대구FC의 새 홈 구장 DGB대구은행파크에서 첫 경기가 열린 지난달 9일 관중들이 푸른 잔디에서 펼쳐지는 K리그 경기에 몰입하고 있다. DGB대구은행파크는 경기장 코너플래그 쪽 4곳에 바람 길을 열고, 알루미늄 재질의 관중석에도 통풍을 위해 틈을 둬 잔디 생육에 유리하도록 설계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프로축구연맹과 K리그 구단들은 그러나 “(리그 경기를 치르는)구장 대부분이 잔디 관리엔 최악의 여건”이라고 하소연한다. 김진형 프로연맹 홍보팀장은 24일 “현재 K리그 홈 구장으로 쓰이는 월드컵경기장을 설계했던 20여 년 전만 해도 기후변화 대비의 필요성이 높지 않았던 데다, 비용을 절감하려다 보니 잔디 생육을 고려하지 않은 설계가 이뤄진 탓이 크다”고 짚었다. 특히 서울월드컵경기장과 대전월드컵경기장, 울산문수축구경기장의 경우 4면이 관중석으로 꽉 막혀있고 지붕까지 덮여있어 통풍이 안되고, 볕이 잘 들지 않는 공통점을 지녔다. 여기에 대체로 지방자치단체 산하 시설관리공단이 경기장을 운영하는 탓에 ‘세입자’인 구단들의 요구가 충분히 반영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럼에도 마냥 손 놓고 남 탓 할 수만은 없는 법. 연맹은 물론 각 구단들은 수 년 전부터 잔디문제의 심각성을 절감하면서 ‘사계절 푸른 잔디’를 위한 해법을 찾겠다며 팔을 걷어붙였다. 기후변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지만, 봄(3월)에 개막해 승강플레이오프까지 더하면 겨울(12월)까지 리그가 치러지는 탓에 선수의 경기력을 최상으로 끌어 올리고 잔디로 인한 부상까지 최소화 하기 위해선 새로운 잔디 도입에 대한 고민을 더 늦춰선 안 된단 판단에서다.

심성호 서울시설공단 차장이 18일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히팅&쿨링' 시스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홍윤기 인턴기자
심성호 서울시설공단 차장이 18일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히팅&쿨링' 시스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홍윤기 인턴기자

그나마 일찌감치 대안을 찾기 시작한 건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운영하는 서울시설공단이다.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이 열린 2017년 3월 기성용(30ㆍ뉴캐슬)이 “경기장 잔디가 좋지 않아 중국 원정 경기보다 서울에서 뛰는 게 더 힘들다”는 인터뷰를 남기는 등 선수들의 불만이 커지자 경기장 옆 포지(圃地)에 하이브리드 잔디와 독일산 켄터키블루그래스 등을 심어 생육실험을 진행했다. 국내 대부분의 경기장에 깔린 미국산 켄터키블루그래스는 15~25도에서 잘 자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평균기온이 점점 높아져 생육에 불리해지자 이를 대체할 잔디를 찾기 위해 나선 것이다.

여러 대안을 모색한 끝에 공단이 택한 대안은 ‘히팅&쿨링(Heating&Cooling) 시스템’이다. 용어 그대로 잔디 아래에 난방과 냉각을 실행할 수 있는 시설을 설치해 추울 땐 땅을 따듯하게 만들고, 더울 땐 지면의 열을 식혀 잔디 생육에 적절한 환경을 만들겠단 시도다. 쉽게 말해 잔디 아래 보일러를 깐 셈이다. 실제 지난달 3일 서울의 첫 홈 경기 땐 경기장 바닥 가운데 골 지역 잔디만 유독 푸른 상태가 유지되면서 겨울철 잔디 관리 해법을 조금이나마 찾은 모양새다.

지난해 말 서울월드컵경기장에 히팅&쿨링시스템이 설치되는 과정. 왼쪽 위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터파기, 배관포설, 잔디식재, 동절기 가동 현황. 서울시설공단 제공
지난해 말 서울월드컵경기장에 히팅&쿨링시스템이 설치되는 과정. 왼쪽 위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터파기, 배관포설, 잔디식재, 동절기 가동 현황. 서울시설공단 제공

하지만 시설 담당자는 “아직 성공을 예단하긴 이르다”고 했다. 심성호 서울시설공단 차장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경기장 남쪽 골 지역에만 시험생육 한 이 시스템은 일단 현재까진 효과를 보고 있지만, 여름을 견뎌 봐야 성공 여부를 가늠할 수 있다. 심 차장은 “시험생육이 성공한다면 전면도입을 논의해 볼 계획”이라면서도 “당장 올 여름 성공한다 하더라도 시스템의 안정성을 충분히 검토한 뒤 전면 도입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여름철 더위가 심한 대구와 포항은 경기를 치르기에 최적화된 잔디 컨디션이 지속될 수 있도록 자체적으로 노력 중이다. 특히 대구의 경우 새 홈 구장인 DGB대구은행파크를 설계할 때부터 잔디생육을 고려했다. 이동준 대구 경영기획부장은 “경기장 코너부근 4곳에 ‘바람 길’이 열려있는 데다, 관중석엔 열마다 틈을 둬 경기장 모든 곳에서 바람이 통하도록 설계됐다”고 설명했다. 포항은 스틸야드 자체의 통풍 여건은 좋지 않지만, 2013년 잔디가 크게 훼손된 일을 계기로 잔디와 경기장 아래 흙까지 모두 교체해 최상의 잔디를 깔았다. 이후 3~4명의 잔디관리 전문 인력을 투입하고, 대관행사를 갖지 않으면서 K리그 최상급 잔디를 유지할 수 있었단 게 포항 관계자 설명이다.

경기 구리시 GS챔피언스파크에 설치된 1호 K리그 인증 그라운드. FC서울 제공
경기 구리시 GS챔피언스파크에 설치된 1호 K리그 인증 그라운드. FC서울 제공
경기 구리시 GS챔피언스파크에 설치된 1호 K리그 인증 그라운드. FC서울 제공
경기 구리시 GS챔피언스파크에 설치된 1호 K리그 인증 그라운드. FC서울 제공

인조잔디 구장 도입에 대한 가능성도 조심스레 논의되고 있다. 프로축구연맹은 지난해부터 FIFA 기준을 적용한 그라운드 공인제도 도입해 구단들이 고품질 인조잔디를 연습구장 등에 도입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뒀다. 다만 인증 기준은 엄격하다. 국제축구연맹(FIFA)의 ‘퀄리티 프로그램’ 기준을 그대로 차용해 △수직공반발 △경사공반발 △공구름 △충격흡수성 △피부/표면마찰 △피부마모율 △수직방향변경 △회전저항 등 8가지 항목을 테스트해 모든 항목의 기준에 맞아야만 인증 받을 수 있다.

김진형 팀장은 “인증은 2년에 한 번씩 갱신해야 하며, 잔디 품질에 손상이 생길 경우 인증이 취소된다”고 설명했다. 천연잔디가 아니더라도 경기력에 지장을 주지 않고 선수 안전에도 큰 문제가 없다면 국내 프로구단들도 미국 등 해외리그처럼 인조잔디 도입을 고민해 볼만한 시점이란 게 잔디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경기장 설계 한계 등으로 매년 잔디 훼손을 겪어가면서도 예산이 부족해 잔디 교체나 보수에 주저하는 인천이나 대전에 대안이 될 수 있단 얘기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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