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대륙과 남아메리카 대륙 사이 남대서양에 사우스조지아 사우스샌드위치 제도가 놓여 있다. 사우스조지아는 면적 3,756㎢의 길쭉한 모양의 섬으로, 만년설로 뒤덮인 산과 빙하로 이뤄진 섬이다. 사우스샌드위치 제도는 그보다 작은 규모의 화산섬 11개로 이뤄져 있다. 이곳은 현재 영국의 해외 영토지만, 지리상으로 가장 가까운 나라는 아르헨티나다. 영국과 아르헨티나는 20세기 초부터 지금까지 이 제도를 두고 영유권 다툼을 벌여왔다.
망망대해 위 외딴 섬들의 집합이었던 이 제도에 최초로 발을 들인 사람은 영국인 탐험가 제임스 쿡이다. 쿡은 1775년 이곳을 발견하고 영국 영토로 선언했다. 이후 1908년 영국 정부는 사우스조지아와 사우스샌드위치 제도를 합병해 근방 포클랜드 제도로 편입시켰다. 당시 영국은 아르헨티나와 칠레 정부에 서한을 보내 이 같은 사실을 알렸고 두 정부는 별다른 항의를 표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르헨티나는 1927년 사우스조지아 섬, 1938년 사우스샌드위치 제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1904년 노르웨이 포경업자들이 아르헨티나 본토에 포경회사 ’콤파베라 아르헨티나 데 페스카(CAP)’를 세운 뒤 사우스조지아에 처음으로 정착지를 설립하고 영업을 한 전력, 그리고 1905년 아르헨티나 정부가 기상 관측소를 세운 사실이 그 근거로 제시됐다. 섬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영국인이지만, 이 섬에 최초로 거주한 사람은 아르헨티나인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아르헨티나는 영국과 법적 분쟁으로까지 번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1940~50년대에 들어 이 섬을 둘러싼 분쟁은 네 차례나 국제사법재판소(ICJ) 문턱까지 갔지만 재판 회부에는 실패했다. 아르헨티나의 반대 때문이었다.
양국이 분쟁을 벌이는 이유는 결국 해양 자원 때문이다. 인근 해상에 매장된 석유를 차지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이 제도가 남극대륙으로 향하는 전진기지로서의 성격을 지니는 것도 분쟁의 또 다른 이유다. 현재 사우스조지아 섬에는 영국의 남극해양기지가 세워져 있다.
양국의 영유권 분쟁은 1980년대 포클랜드 전쟁에 휘말리며 무력 충돌로까지 치달았다. 1976년 아르헨티나 정부가 사우스샌드위치 제도에 군대를 파견한 데 이어 1982년 4월 아르헨티나가 영국령 포클랜드를 무력으로 점령하자 양국은 교전을 개시했다. 75일간의 전쟁 끝에 6월 14일 아르헨티나의 항복으로 전쟁은 종결됐지만 아르헨티나는 아직도 패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양국의 분쟁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현재까지 합의를 보지 못한 상황이다.
다만 국제사회에서는 영국의 영유권을 더 인정하는 분위기다. 2009년 4월 두 나라는 사우스조지아 사우스샌드위치 인근 해역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자료를 유엔 대륙붕한계위원회(CLCS)에 제출했는데, 2016년 CLCS는 영국의 영유권을 인정했다.
홍윤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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