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치달은 패스트트랙 대치… 한국당, 문 의장 사보임계 결재에 감금 작전
채이배, 의원실서 6시간 감금됐다 탈출… 선진화법 7년 만에 ‘동물 국회’
여야 4당(자유한국당 제외)이 선거제ㆍ개혁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관철하려는 25일 결전의 날, 국회는 한국당의 ‘회의실 봉쇄’와 007작전을 방불케 한 ‘두 차례 사보임’(위원 교체), 채이배 의원 감금, 이에 따른 경찰 출동과 “구해달라”는 채 의원의 ‘창문 브리핑’에 국회의장 경호권 발동에 이르기까지 엽기적 충돌로 몸살을 앓았다. 패스트트랙 성사의 키를 쥔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 오신환 의원을 채이배 의원으로 교체하는 바른미래당 지도부 요청을 문희상 국회의장이 받아들이면서, ‘오신환 구하기’에 실패한 한국당이 채 의원과 사개특위 회의실을 타깃으로 삼으면서다. 이후 지도부가 “공수처법안에 논의가 더 필요하다”는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마저 임재훈 의원으로 사보임하고 팩스로 공수처법을 의안과에 제출하면서 한국당과 충돌, 문 의장이 경호권을 발동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고성과 멱살잡이, 여러 의원들이 서로 팔을 엮어 회의장 접근을 막는 ‘인간띠’ 방어, 거친 밀고 당기기가 난무한 ‘동물국회’의 모습은 2012년 국회선진화법 통과 이후 7년만이다.
◇유승민계 의사과 ‘육탄저지’ 문 의장 항의방문 시도했지만…
유승민 전 대표를 비롯한 바른정당계 바른미래당 의원들은 전날에 이어 오전 8시30분부터 국회 의사과 앞을 점거했다. 원내지도부가 오 의원에 대한 사개특위 위원 사보임계 제출을 몸으로 막기 위해서다. 그러나 오전 9시 40분쯤 사보임계가 인편이 아닌 팩스를 통해 의사과에 제출된 사실이 확인되면서 이들은 곧바로 문 의장이 입원해 있는 여의도 성모병원을 찾았다. 문 의장에게 사보임계 결재를 막아달라고 압박하기 위해서다. 문 의장은 전날 한국당 의원 80여명의 집무실 항의 방문 여파로 입원, 이날도 병가를 낸 상태였다.
하지만 문 의장이 이들의 면회 요청을 거부해 만남은 불발됐고 유 전 대표는 “이분들은 역사에 부끄러운 이름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성토했다.
같은 시간 비상 의원총회를 마친 한국당 의원들은 곧바로 국회 의안과로 향했다. 패스트트랙에 올릴 선거제 개편안과 공수처법 등의 법안이 의안과에 접수되는 것을 저지하는데 사활을 걸었다.
◇문 의장 ‘사보임’ 결재에 한국당, ‘채이배 감금’… “구해달라” 문틈 브리핑
오전 11시쯤 문 의장이 병상에서 바른미래당 원내지도부가 제출한 사보임 신청서에 결재 서명을 하면서 상황은 더 긴박하게 돌아갔다. 이날 오전 9시부터 면담을 위해 채 의원실을 찾았던 여상규, 이은재, 민경욱 등 한국당 의원 10여명이 ‘채 의원 감금 작전’으로 전략을 바꾼 것이다. 오후 2시 예정된 사개특위 회의에 채 의원이 참석해 공수처법을 패스트트랙에 올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감금 상태가 회의 1시간 전인 오후 1시까지 지속되자 채 의원은 영등포경찰서에 112 신고를 했지만 한국당 의원들이 소파와 의자를 이용해 의원실 출입문을 아예 봉쇄하면서 현장에 도착한 경찰들이 사무실 내부로 진입할 수 없었다.
이에 오후 2시가 넘어서 채 의원이 창문 틈새로 고개를 내민 상태에서 기자들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초유의 ‘문틈 브리핑’이 시작됐다. 그는 취재진을 향해 “한국당 의원들이 오셔서 밖으로 못 나가게 하고 있다”며 “경찰과 소방을 불러 감금을 풀어달라고 요구했다. 필요하면 창문을 뜯어서라도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국당 사개특위 회의실 봉쇄 … 채 의원은 6시간 만에 탈출
한국당은 ‘전방위적 국회투쟁’ 와중에 채 의원 감금과 ‘국회 본청 245호 사수 작전’을 투트랙으로 진행했다. 245호는 오후 2시 사개특위 회의가 예정된 곳이다. 전날 심야부터 철야농성 연장선상으로 245호실에 취침하며 회의실을 선점한 한국당은 문 의장의 사보임 허가 소식에 회의장 사수에 더 열을 올렸다. 의원 20여명이 점거한 245호실을 지키기 위해 한국당보좌진협의회까지 총동원한 것이다.
한편 채 의원은 감금 6시간째인 오후 3시 15분쯤 소방관이 의원실 출입문을 따는 방식으로 탈출에 성공, 국회 방호과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취재진과 국회 관계자들로 아수라장이 된 의원회관을 빠져 나왔다. 채 의원은 곧바로 공수처법 논의가 진행 중인 국회 운영위원장실로 들어갔다. 위원장실에는 사개특위 위원장인 이상민 민주당 의원과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와 함께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사개특위 소속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이 법안을 검토 중이었다.
채 의원이 운영위원장실에 들어가자 밖에서 점거 중이던 한국당 의원 40여명은 “청와대 친위부대 공수처 강력히 반대한다”, “좌파독재 장기집권 음모 강력 규탄한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권은희마저 사보임하고 법안제출, 한국당 반발… 文 경호권 발동
채 의원이 법안 검토에 참여한 이후 상황은 더욱 일촉즉발로 흘러갔다. 권은희 의원이 “공수처 법안과 관련에 추가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하자, 오후 6시 15분쯤 김관영 원내대표가 권 의원 대신 임재훈 의원을 투입시킨 것이다. 문 의장은 이번에 구두로 결재했다. 오 의원이 교체된 지 불과 7시간 만에 권 의원마저 교체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권 의원은 “김 원내대표가 사개특위 협상을 강제로 중단했다”며 “다들 이성을 상실한 것 같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권 의원 교체 이후 여야 4당은 합의한 공수처법안을 팩스로 부랴부랴 국회 의안과에 제출했다.그러나 검경수사권 조정과 관련된 형사소송법ㆍ검찰청법 개정안은 “꼼수 제출”을 규탄하는 한국당 저지로 팩스를 통해서도 접수하지 못했다. 의안과 팩스에 도착한 법안을 한국당이 먼저 가로챘고, 이후 팩스가 망가졌기 때문이다. 여야 4당은 검경수사권 조정법까지 접수가 완료되면 곧바로 사개특위와 정치개혁특위 전체회의를 열고 전날 제출된 공직선거법 개정안(선거제 개편)과 함께 패스트트랙을 완료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한국당 의원들이 국회 의안과를 점거하면서 인편으로 법안을 제출하려는 여야 4당과 한국당이 대치가 벌어졌다. 이에 문 의장이 오후 7시 20분쯤 경호권을 발동했다. 경호권은 국회법상 국회의장이 회기 중 의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행사하는 권한을 뜻한다.
경호권 발동에도 한국당 의원들과 보좌진들이 “팩스 접수 무효”를 주장하며 의안과 진입을 막으면서 밤샘 대치가 이어지고 있다. 이날 유승민 전 대표 등 바른미래당 내 패스트트랙 반대파 의원들도 법안 제출 시도를 저지하며 한국당에 힘을 보탰다.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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