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관영매체들 여론전 본격화]
대미협상 지렛대 확보한 계기로 ‘비핵화 협상 결렬 미국 탓’ 강조
北, 美 양보기미 보이지 않는 상황서 체제 안전 보장 부각도 성과
잘 풀리는가 싶던 한반도 정세가 위험에 처한 건 미국 탓이라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토로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다. 북러 회담을 계기로 러시아를 대미 협상 지렛대로 확보한 북한이 국제사회에 미국이 북한 비핵화에 진정성을 갖고 접근하지 않고 있단 식의 여론을 조성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26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루스키섬 극동연방대에서 전날 북러 정상회담이 열렸다고 전하며 김 위원장, 푸틴 대통령의 발언을 상세히 소개했다. 통신은 “(김 위원장이) 얼마 전에 진행된 제2차 조미 수뇌회담에서 미국이 일방적이며 비선의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최근 조선반도와 지역 정세가 교착 상태에 빠지고 원점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위험한 지경에 이른 데 대하여 지적”했다고 전했다.
푸틴 대통령은 ‘김 위원장 덕에 한반도 정세가 안정화됐다’는 취지로 말하며 “러시아는 조미 대화 실현과 북남 관계 개선을 위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지도부의 노력을 지지한다”고 밝혔다고 통신은 전했다. ‘평화와 안전 보장을 위한 여정’이라고 에둘러 표현한 북한 비핵화가 늦어지는 원인이 미국에 있고, 러시아가 이에 동조했다고 강조함으로써 국제사회 우호적 여론을 얻고자 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의 양보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서 우군 확보가 절실했던 북한으로선 러시아를 통해 대미 협상력을 어느 정도 높였다고 판단한 듯 하다. 김 위원장은 “조선반도(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은 전적으로 미국의 차후 태도에 따라 좌우될 것”이라며 ‘양보는 없다’는 메시지를 다시 한번 밝혔다. 다만 러시아를 비핵화 프로세스 대안 파트너보단 여전히 대미 협상 지렛대로서만 활용하고 있는 듯하다. 북러 정상회담 관련 보도 상당 부분을 대미 메시지로 할애한 것이 방증이다.
러시아와의 친선 과시는 대내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북미 정상회담 결렬로 인한 주민 불안을 잠재우는 데 활용할 수 있음은 물론, ‘빈손 합의’로 구긴 북한 지도부 체면을 살리는 측면도 있어서다. 대내용 매체인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도 이날 통신과 같은 내용의 보도를 전했다. 북한 매체들은 푸틴 대통령이 김 위원장 방북 초청을 흔쾌히 수락했다는 소식과 함께 향후 북러 경제협력도 확대될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북한 체제 안전 보장이 북러 정상회담을 계기로 해 다시 화두로 떠오른 것 역시 북한으로선 성과라 할 수 있다. ‘비핵화 전 제재 완화는 없다’는 미국이 북한에 줄 만한 다른 상응 조치가 생겨야 다시 협상을 시작할 수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가 부각시킨 체제 안전 보장 논의는 협상 물꼬를 트기에 좋은 기회라는 점에서다.
북한에 대한 국제적ㆍ법적 안전 보장을 위해 푸틴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6자회담 논의는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언급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다자 협상”과도 맥이 닿아 있다. 러시아 타스 통신에 따르면 노광철 북한 인민무력상은 북러 정상회담 당일 열린 제8회 모스크바 국제안보회의에서 “정전협정 서명국가와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정전 상태, 즉 법적으로 전쟁 단계에서 평화체제로 이전하는 협상을 적극적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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