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유진오의 헌법기초 회고록
※지난 한 세기 우리나라 대표 지성과 사상을 통해 한국사회의 미래를 생각해온 ‘김호기의 100년에서 100년으로’는 오늘로 60회를 다뤘습니다. 다음주 ‘에필로그: 역사의 기억, 기억의 미래’로 연재를 마무리합니다.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해 지난 100년 우리 지성사를 돌아보는 이 기획에서 가장 중요한 문헌을 들라면 어떤 것을 꼽을 수 있을까. 나의 경우 ‘3·1독립선언서’(1919), ‘제헌헌법’(1948), 김수영의 ‘풀’(1968), 장일순의 ‘나락 한 알 속에 우주가 있다(1991)’, 그리고 백낙청의 ‘6·15시대의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2005)’를 들고 싶다. 이 문헌들에는 민족주의, 민주주의와 공화주의, 민중과 시민, 인간과 자연, 그리고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이 담겨 있다.
널리 알려졌듯 3·1독립선언서를 작성한 이는 최남선이며, 제헌헌법을 기초한 이는 유진오다. 이 두 지식인들의 삶에는 빛과 그늘이 뚜렷하다. 지난 20세기 전반의 대표적인 천재들이었지만, 두 사람은 모두 친일파였다. 특히 유진오는 문제적 인물이었다. 지식인으로서의 그의 명성은 평생 하늘을 찔렀다. 그러나 동시에 친일파로 활동했던 것은 그의 인생에 짙은 얼룩을 남겼다.
지식의 분화가 빠른 속도로 이뤄진 현대사회에서 인문학과 사회과학에서 두루 업적을 남긴 지식인은 서구사회에서도 찾기 쉽지 않다. 작가이자 철학자였던 장 폴 사르트르와 작가이자 기호학자였던 움베르토 에코가 있었지만, 두 사람 모두 인문학의 테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유진오는 ‘김강사와 T교수’를 쓴 작가이자 제헌헌법을 기초한 법학자로 기억되고 있다. 문학과 사회과학을 모두 아우른 그는 르네상스 지식인이었다.
◇작가인 동시에 법학자
유진오는 190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그는 당대를 대표하는 천재였다. 1924년 경성제국대학 예과에 수석으로 입학하고 1929년 법문학부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일본 학생들과의 경쟁에서도 이겼으니 공부에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 셈이었다.
대학 시절부터 유진오는 문학과 법학에서 모두 두각을 나타냈다. 먼저 문학에선 1927년 잡지 조선지광에 ‘스리’를 발표함으로써 소설가로 데뷔했다. 초기에 그는 이효석과 함께 ‘동반작가’로 활동했다. 동반작가란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의 회원은 아니었으되 이들의 문학에 동조한 이들을 지칭한다. 1930년대 중반 이후 그는 순수문학으로 기울어졌다. 단편소설 ‘김강사와 T교수’와 ‘창랑정기’는 그의 대표작들이었다. 특히 ‘김강사와 T교수’는 지식인들의 내면의식을 밀도 있게 그린 작품으로 주목됐다.
한편 법학에선 경제제대를 졸업한 후 법문학부 조수를 맡고 예과 강의를 담당했다. 1932년부터 보성전문학교에 강사로 나가다가 1937년 교수로 취임했다. 당시 그는 식민지 시대를 대표하는 공법학자였다. 1945년 광복 이후 보성전문 교수와 경성대 교수를 겸임하다가 1946년부터는 고려대 교수를 맡았다. 그는 더 이상 문학에 관여하지 않고 법학자이자 교육자이자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주목할 것은 일제 강점기 말 유진오가 보인 친일 활동이었다. 1939년부터 그는 글을 쓰고 단체에 참여함으로써 친일 활동에 나섰다. 독립운동기념관 관장을 지낸 김삼웅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유진오는 일제 말기 각종 친일 발언과 글을 쓰고 친일단체에 가담하면서 지식인의 본분과 민족적 지절을 지키지 못하였다. 그러면서도 창씨개명을 끝까지 하지 않았고, 1945년 3월 말 (...) 퇴계원 소개지로 물러나 그곳에서 8·15 해방을 맞았다.”
◇제헌헌법의 기초자
학자로서 유진오의 가장 큰 업적은 제헌헌법을 기초했다는 데 있다. 해방공간에서 그는 독립된 우리나라의 헌법을 기초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헌법학자였다. 1948년 그는 헌법 및 정부조직법 기초의원회 기초전문위원을 맡아 제헌헌법을 기초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제헌헌법에 연관해 유진오가 남긴 대표적인 저작들이 ‘헌법해의’(1949), ‘헌법의 기초이론’(1950), ‘헌법기초 회고록’(1980)이다. 이 가운데 ‘헌법기초 회고록은 제헌헌법을 기초할 때 자신이 고민했던 문제들과 겪었던 일들에 대한 기록이다. 제헌헌법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생생히 알려주는 책이다.
서문에서 유진오는 말한다. “제헌 당시 나는 서생의 오기로 노련한 당대의 정치지도자들을 상대로 하여 제법 1 대 1의 게임을 벌였던 것으로 자부하였지만, 실은 그렇지 못했던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 권력의 남용이 방지되고 모든 사람의 인권이 보장되는 훌륭한 새 헌법이 국민의 총의로 하루 속히 출현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을 적어두고 있다.
제헌헌법이 갖는 의의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법학자 심재우는 유진오가 기초한 헌법이 근대민주주의 헌법이 갖춰야 할 기본 정신과 원칙들을 빠짐없이 반영하고 있었다고 평가한다.
구체적으로, 자유적 기본권과 사회적 기본권에 대한 포괄적 보장, 3권분립을 통한 권력 간의 견제와 균형, 독재방지와 책임정치 구현을 위한 내각책임제 권력구조, 사법권의 독립, 위헌법률 심사를 위한 헌법재판제도, 공공복리를 위한 사소유권의 공적 제한, 사회정의의 실현을 위한 경제적 자유의 공적 제한, 농지개혁 등이 그것이다. 여기에 더해, 부칙에 민족정기를 회복하고 민족적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친일 반민족행위자 처벌의 근거 조항까지 마련했다.
제헌헌법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세 가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첫째, 유진오는 내각제로 초안을 만들었지만 당시 유력한 대통령후보였던 이승만이 이를 반대해 권력구조가 대통제로 바뀌었다. 둘째, 제헌헌법에서 가장 중요한 조항은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와 ‘제2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일 것이다. 이에 대해 유진오는 ‘헌법해의’에서 “대한민국의 국체는 ‘공화국’이며 정체는 ‘민주국’인데, 그를 합하여 ‘민주공화국’이라 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셋째, 제헌헌법은 정치적 측면에선 자유민주주의 요소를, 경제·사회적 측면에선 사회민주주의 요소를 담고 있다. 유진오는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조화를 개인 자유의 제한을 통한 공공복리 또는 사회정의 실현에서 찾았다. 요컨대, 제헌헌법은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와 국민이 더불어 사는 공화주의의 정신을 오롯이 반영하고 있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몇몇 국가들이 외국 학자들에게 헌법 제정을 의뢰했던 당대 상황을 돌아볼 때 우리나라 제헌헌법이 우리나라 학자에 의해 기초됐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제헌헌법을 기초한 후 유진오는 초대 법제처장을 맡아 정부조직법 등 많은 법률을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 외에도 그는 고려대 총장과 신민당 총재로서 교육과 정치에도 작지 않은 족적을 남겼다. 지난 100년 우리 지성사에서 전무후무했던 이 르네상스적 지적 거인은 1987년 세상을 떠났다.
◇헌법 정신의 미래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며 모든 사회적 폐습을 타파하고 민주주의 제 제도를 수립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케 하며 각인의 책임과 의무를 완수케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여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결의하고 우리들의 정당 또 자유로히 선거된 대표로써 구성된 국회에서 단기 4281년 7월 12일 이 헌법을 제정한다.”
긴 인용이지만 제헌헌법의 전문(前文)이다. 유진오가 기초한 내용을 약간 수정한 것이다. 역사학자 박찬승이 지적하듯, 전문을 관통하는 이념은 민족주의, 민주주의, 균등주의, 국제평화주의다. 이 네 이념은 지난 100년 우리 지성사를 이끌어 온 핵심 가치다.
돌아보면, 민족주의를 추구했던 이기백, 민주주의를 열망했던 최장집, 균등주의를 지향했던 조세희, 평화주의를 모색했던 백낙청은 모두 제헌헌법의 정신적 자장 속에서 자신들의 지적 활동을 펼쳐왔다. 민족주의, 민주주의, 균등주의, 평화주의는 현재에도 유효한 시대정신이다. 변화하는 21세기의 상황에 걸맞게 이 시대정신들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미래적 과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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