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는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전환할 때 기회를 놓쳤고, 3G에서 4G로 전환될 때는 다시 시장 지위를 높였던 기억이 있다. 최근 수년 동안은 과도한 기술 혁신을 시도하다 신뢰를 잃기도 했다.”
올해 초 LG전자 스마트폰 사업 신임 사장 자리에 앉은 권봉석 모바일커뮤니케이션(MC) 사업본부장은 지난 2월 취임 후 열린 첫 기자간담회에서 담담하게 LG폰의 역사를 정리했다. 단 몇 줄로 끝났지만 LG폰의 전성기부터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위기까지 담아낸 말이었다.
LG전자 스마트폰 사업부문을 책임져야 하는 MC 사업본부장들의 어깨는 해가 갈수록 무거워졌고 5G라는 새 시장이 열리는 지금, 그 무게는 어느 때보다도 중하다. 이 시기에 LG전자는 지난 35년 동안 가동해 온 경기 평택 스마트폰 생산 공장을 멈추기로 결정했다. 현재 LG폰의 성적은 ‘15분기 연속 누적 적자 3조원’이다. ‘국내 생산 중단’ 카드는 벼랑 끝에서 꺼내 든 카드다.
◇‘아, 초콜릿폰의 영광이여’
LG폰의 전성기는 2005년 즈음이었다. 피처폰 시대를 풍미했던 대표적 제품 ‘초콜릿폰’을 시작으로 ‘샤인폰’, ‘프라다폰’ 등 해마다 ‘대박’을 터뜨렸다. 지금이야 직사각형의 똑같은 모양에 터치로 작동하는 게 기본이지만, 이때만 해도 휴대폰은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는 액세서리였다. LG전자는 ‘디자인’과 ‘스타일’을 담아내는 전략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휴대폰 시장의 대격변기가 시작된 때는 2007년 1월 9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무대 위에 오른 스티브 잡스가 청바지 주머니에서 아이폰을 처음 꺼낸 그 날부터였다. 피처폰 시대의 종말, 스마트폰 시대의 개막이었다.
애플이 문을 연 새 시대에 당시만 해도 변방 수준이었던 삼성은 갤럭시 개발에 곧바로 들어가며 재빠르게 중앙 무대로 올라탔다. 스마트폰 개발을 두고 격론을 벌이며 팔짱만 끼고 있던 LG는 노키아, 모토로라 몰락의 조짐이 보이자 부랴부랴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들었다.
◇화려한 반전의 역사
뒤늦은 대응은 참담한 결과로 되돌아왔다. 2011년~2012년 LG전자는 팬택에 국내 스마트폰 점유율 2위를 내주기도 하며 ‘굴욕’을 맛봤다. 전열을 가다듬고 내놓은 제품이 지금도 진행 중인 G시리즈의 첫 제품 ‘옵티머스G’다.
“이전까지 후발주자로서 경쟁사 제품을 따라가기 급급했다면, 옵티머스부터는 선발자로서 위상과 실력을 보여주겠다.”
옵티머스G 개발을 총괄한 LG전자 연구원이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애플에 대항하기 위해 구글이 내놓은 ‘안드로이드’를 탑재한 ‘안드로원’ 실패 후 옵티머스 브랜드로 스마트폰 사업에 공격적인 투자가 시작됐다. 카메라, 오디오, 화면에 충실한 제품으로 시작한 옵티머스 브랜드는 LG전자 스마트폰의 기본기가 됐다.
투자의 과실을 연 제품은 ‘G3’다. LG전자 스마트폰 중 처음으로 누적 판매량 1,000만대를 돌파하며 ‘휴대폰 명가의 자존심을 되찾았다’는 호평이 쏟아졌다. MC 사업본부는 G3가 나온 2014년 3,161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모듈폰과 무한부팅의 악몽
G3의 바통을 이어받은 ‘G4’에서 다시 위기가 시작됐다. 천연 가죽 디자인의 G4와 함께 오디오 기능에 집중한 V시리즈 시작을 알리며 첫 제품 ‘V10’을 내놨지만 전원이 스스로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하는 ‘무한부팅’ 논란에 휩싸였다. 기기 결함으로 밝혀져 무상 수리를 해 주는 전력을 남기고 말았다.
두 제품이 나온 2015년이 바로 LG전자 MC 사업본부의 연속 적자가 시작된 해다. 결정타는 ‘G5’다. 원하는 기능을 레고 조립하듯 끼워서 쓰는 세계 최초 ‘모듈형 스마트폰’이었는데, 모듈 사이 틈이 벌어지는 유격현상이라는 치명적 문제와 수율(투입한 원자재 대비 완성된 제품 비율) 예측 실패로 끝이 났다.
파격적 실험 대신 ‘기본기’를 살렸다며 내놓은 ‘G6’는 초기 호응을 보이는 듯했지만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도 영향을 미쳤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단통법은 휴대폰 지원금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지원금을 제공하는 게 핵심인데, 공개하는 지원금은 이동통신사와 제조사의 지원금을 합친 금액이다. 지원금 규모를 결정하는 마케팅 투자력이 삼성과 비교가 안됐다. 삼성의 높은 마케팅 자금은 휴대폰 유통 현장으로 흘러가 결국 LG폰 가격 경쟁력이 점차 낮아지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설명했다.
◇5G, LG폰 살릴 골든타임
우여곡절을 견뎌 온 LG폰은 새 역사의 기로에 섰다. 올해부터 상용화한 5G는 스마트폰 개막에 버금가는 변곡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 홀로그램 등 신개념 실감형 미디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수단으로 스마트폰의 역할이 크게 넓어지고 폴더블폰의 등장으로 폼팩터(구성ㆍ배열 등 구조화된 하드웨어 형태) 혁신 시기와도 맞물려 있다.
LG 첫 5G폰 ‘V50씽큐 5G’는 5월 초 시장에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폴더블 방식 대신, 또 다른 화면이 달린 커버를 끼워서 쓰는 듀얼디스플레이폰이다. 출고가는 119만9,000원으로 책정됐다. 듀얼스크린을 공짜(판매 초기 프로모션)로 주면서 5G폰 출고가를 120만원 아래로 잡은 건 뼈를 깎는 가격 정책이란 분석도 나온다.
제조업계 관계자는 “LG전자의 가장 큰 문제는 스마트폰 주류 시장에서의 지위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LG전자 기술력이 뛰어나다는 건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의 생산구조는 제품 팔수록 손해여서 언제든 해외로 생산라인을 이전해도 이상할 일 없었다. 그 결단을 올해 내린 것뿐”이라고 말했다.
시장 재편을 일궈야 하는 LG폰에 5G는 재도약을 위한 절실한 기회다. 생산거점 이전으로 수익성 개선을 위한 재정비 작업에 돌입한 만큼 ‘초콜릿폰’이 쓴 신화와 ‘G3’가 보여준 반전을 5G에서도 보여줄 수 있을지 모두가 집중하고 있다.
권봉석 사장은 2월 간담회에서 “5G는 LG만의 강점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가장 완성도가 높은 폰을 출시하도록 준비하겠다”고 약속했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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