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절벽의 비극, 20대 산재 리포트] <3> 스트레스에 짓밟힌 짧은 삶
전북 고교 영양사 “식단 수정 열 번 스무 번… 머리가 아프다”
전북 김제시의 D고교에서 근무했던 영양사 최인정(가명ㆍ사망 당시 27세)씨는 650여명의 학생과 교직원들을 위해 하루 세끼의 식단을 짰다. 유족에 의하면, 정이 많고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이었던 그는 늘 오전 6시 30분에서 7시 사이 출근했다. 근로복지공단과 경찰의 문서를 보면 주변인들은 최씨에 대해 “책임감이 강했다” “온순하고 자신이 희생하는 성격”이라고 기억했다. 어느 직장에서나 사랑받을 것 같은 최인정씨는 그러나 사회생활 2년 만이던 2017년 7월 12일 자택 인근 아파트에서 몸을 던져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사망은 지난해 1월 3일 산업재해로 인정받았다. 경력 이상의 과도한 업무와 책임을 견뎌야 했고, 동료와 상사는 그를 보호하지 않았던 냉혹한 직장. 민원이 발생하면 늘 총알받이로 나서야 했던 고인은 그렇게 20대 청춘으로부터 떠밀려야 했다. 고용절벽이라 불리는 일그러진 취업시장을 통과해 과도한 업무책임 앞에 내동댕이쳐지는 오늘날 20대의 현실. 감당할 수 없는 업무 스트레스 앞에 이들이 쓰러지고 있다.
◇동분서주했던 젊은 영양사
2015년 11월 D고교에 부임한 최인정씨는 첫해 영양사 업무를 무난하게 수행했다. 최씨는 점심시간에 학생 600명, 교직원 50여명의 식사를 제공했고,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을 위해선 아침과 저녁으로 70명 내외의 식사를 또 준비했다. 방과 후 수업 때 학생들 약 250명에게 저녁식사를 제공할 때도 있었다. 영양사는 최인정씨뿐, 조리원은 6명이었다. 그의 업무는 △식재료 검수 및 검수서 작성 △작업지시서 작성 △조리원 위생 관련 및 안전교육 △교육일지 작성 △조리과정 전반 및 배식 관리 △급식실 관련 제반 서류 작성 △조리실 및 급식실 청결관리 △조리원 초과근무 관리 △식단 및 레시피 작성 △월별 납품업체 정산업무 △연말 식료품 비용 정산 업무 △조리기구 및 용구관리 △월별 식재료 품의 및 입찰 진행 등이었다. 근로계약서상 근로시간은 오전 8시~오후 5시였지만, 출퇴근 기록에는 그가 오전 7시쯤 출근해 늦을 경우 밤 10시까지 일해왔다고 적혀있다.
이 학교 행정실장은 최씨의 사망 관련 근로복지공단 조사에서 “1일 3식을 제공하는 본교의 영양사 업무가 과중하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는데, 입사 첫해인 2016년도는 무난하게 잘 해냈다고 평가됐다”라며 “하지만 2017년도에 급식 불만 민원이 급증하면서 업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것 같다”고 진술했다. 2017년 5월 전북교육청에도 급식 관련 민원이 접수돼 학교로 조사를 나왔고, 급식만족도 조사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가 나왔다.
문제는 급식의 질은 영양사 혼자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데 모든 스트레스를 최씨가 감당했다는 점이다. 음식 맛은 조리원들의 책임이지만, 최씨의 부모님 또래의 그들을 지도하며 다그치긴 힘겨운 일이었다. 고인이 남긴 일기에는 “여사님들(조리원들) 소리에도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식단 수정을 열 번 스무 번 넘게 반복하고 있다”고 적혀 있다. 이런 경우, 학교측의 적극적인 지원과 개입이 요구되지만 사실상 학교는 손을 놓고 있었다. 이 학교 행정실장은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사실상 학교가 최인정씨의 혹독한 업무 환경을 방치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지금 재판이 진행 중이고 여러 복잡한 원인이 있어서 (그 사건에 대해)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사표도 받아주지 않자, 목놓아 울어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되지 않는 직장 상황은 20대 후반에 불과했던 최인정씨를 피폐하게 했다. 그는 2017년 6월 16일부터 7월 6일까지 신경정신과 진료를 받고 불안장애를 억제하는 약을 복용했다. 7월 6일 그는 끝내 교장에게 퇴직 의사를 밝혔으나, 대체 영양사 채용(여름방학)까지 근무해야 한다고 사표가 보류됐다. 언니 최연정씨는 “(사망 후) 동생 사무실에 가서 자료들을 뒤졌는데 사직서가 프린터에 하나 있었고, 책상에도 한 장이 꽂혀 있었다”며 “5월부터 사직하고 싶어했다”고 말했다. 최인정씨는 ‘사표를 안 받아준다’고 어머니의 목을 안고 울 정도로 힘들어했다. 언니 연정씨는 “그냥 내면 된다”고 말했으나, 사회 생활을 한지 얼마 안 된 인정씨는 책임감과 정신적 혼란 속에 그런 절차와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따져보지 못했던 것이다.
업무환경과 급식 관련 민원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최인정씨는 7월 11일 오후 조퇴한 뒤 다음날 새벽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던 자택 인근의 아파트 뒷마당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가 사망 전 작성한 유서에는 “엄마, 아빠, 언니한테는 너무 미안. 학교에서 누군가 관심이 있었다면 내 증상이 이 정도로 심해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앞으로 해야 할 게 막막한데 정신이 드니 지금은 막다른 골목이다…(중략) 나는 잘했다 생각했는데 머리가 아프다. 내가 했던 말이 전달이 안 되는데 그걸 어떻게 알까”라고 쓰여 있었다.
언니 최연정씨는 “안 그래도 어머니가 (사망) 전날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얘가 좀 이상하다’고 정신과를 알아보라 해서 대학병원과 주변 병원들을 알아봤어요”라고 말했다. 결혼해 따로 살던 언니는 사건 당일 동생 옆을 지키며 잠들었지만, 새벽에 몰래 빠져나간 동생의 인기척을 알아채지 못했다.
최인정씨 사망 관련 경찰 수사결과 보고서에는 “온순하고 자신이 희생하는 성격으로 최근 직장 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적혀 있다. 유족은 D고교 학교법인과 감독책임이 있는 전북교육청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대법원 판례는 “사용자는 고용 또는 근로계약에 수반되는 신의칙상의 부수적 의무로서 피용자가 노무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생명, 신체, 건강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물적 환경을 정비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마련하여야 할 보호의무 또는 안전배려의무를 부담하고, 이러한 의무를 위반함으로써 피용자가 손해를 입은 경우 손해배상책임을 진다”고 돼 있다. 학교측이 최인정씨의 일기가 본인 것이 맞는 지 필적감정을 하자고 했고, 이 때문에 소송은 5개월 가량 지체되기도 했다. 지난 3월 최인정씨의 필적이 맞는 것으로 나왔고,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다. 언니 연정씨는 “절실하게 필요했을 때 학교와 교육청 모두 외면했고, 노조 가입자가 아니다 보니 도와주는 곳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교육청을 수 차례 찾아갔는데 이 건을 아는 사람이 없었고 교육청 법률 담당자 김모씨를 만났더니 ‘어차피 돈 뜯어내려 하는 것 아니냐’는 소리를 하길래, ‘그러면 내가 돈 줄 테니까 애(인정씨) 데리고 와라’라고 까지 말했다”고 원통해 했다. 전북교육청 관계자는 “담당자는 올해 3월 말까지 근무하고 그만뒀기 때문에 왜 그런 말을 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가족들이 장례를 치르느라 집을 비운 동안 연락도 없이 찾아와 음료수를 놓고 간 게 학교 관계자들의 유일한 사죄 제스처였다. 언니 연정씨는 “장례식 자리에서 학교 이사장과 교장이 아버지 옆에 앉아 ‘(인정씨 후임으로) 빨리 인원 채용 공고를 내라’는 대화를 하더라”고 말했다. 학교측은 “당시 교장은 퇴직했고 장례식장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직장 내 ‘태움’ 조차 올해에야 첫 산재 인정
2017년 1월 대전의 한 기업 기숙사에서 목매 사망한 28세 여성 A씨도 최인정씨와 마찬가지로 산업재해를 인정받았다. 그의 사망 원인 또한 업무 스트레스로 알려졌으나, 유족 측은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다”며 취재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아직 젊은 자녀의 사망을 앞에 두고 가족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다.
일을 배우는 단계인 20대들은 업종을 불문하고 전반적으로 업무 스트레스가 높을 수밖에 없으며, 이런 구조가 관행화된 사례 가운데 하나가 간호사들의 ‘태움’(선배 간호사의 후배 괴롭힘)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약 1년 사이 ‘태움’으로 목숨을 끊은 두 명의 간호사 박선욱, 서지윤씨는 각 27세, 29세였다.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실 신규 간호사였던 박 간호사는 업무 스트레스로 체중이 13㎏이나 빠지는 생활에 시달리다 지난해 2월 15일 투신해 사망했다. 박 간호사는 사망 1년여만인 지난 3월 산재 승인을 받았다. 근로복지공단의 업무상 질병 판정서에는 “긴박한 업무수행이 고인에게 상당한 심리적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여지고, 특히 간호사 교육의 구조적인 문제로 직장 내에서의 적절한 교육체계 개편이나 지원 등이 이루어지지 않으면서(중략) 과중한 업무를 수행(중략), 고인의 사망과 업무 사이에 타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적시돼 있다. 서지윤 간호사는 서울의료원에서 5년간 병동 근무를 하다 간호행정부서로 이동한 지 12일 만인 지난 1월 5일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29일 집에 와 어머니에게 ‘나는 간호사 태움 태움 하는데, 그게 뭔지 지금까지 몰랐어. 그런데 진짜 이제는 알 것 같아’라고 말했다고 한다. 지난 1월 전북 익산에서도 28세 간호조무사 실습생 B씨가 동료들의 괴롭힘을 호소하며 목숨을 끊었다. 보건의료노조 오선영 정책국장은 “업무에 익숙하기 전 서로 태우거나 태움을 당한 경우가 많은데, 태움이 부각된 지 몇 년 되지 않았고 태움으로 인한 사망인지 그 원인이 잘 규명되지 않아 왔다”고 말했다.
양승엽 연세대 법학연구원 연구교수는 “산재는 업무와 인과 관계가 있어야 하는데 자살은 자유의지로 보고, 자살의 원인은 업무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 죽인 것이라는 해석이 견고했다”며 “그러나 업무에 의한 스트레스로 정신적 이상이 발현돼 자살했다면 다시 업무관계가 부활하는 셈이며 이를 증명하면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양 교수는 “업무 스트레스를 받다가 돌아가신 분들이 우울증 진단 등을 생전에 받았다면 (산재)입증이 쉬워지는데, 점차 개선되고는 있어도 병원을 가지 않으면 증명이 힘든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진희 기자 riv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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