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와 재팬, 새로운 시작] <중> 막 내린 ‘헤이세이’ 시대 중>
‘위령 여행’ 등 평화 행보… 30년간 ‘상징 천황’ 정착
“헤이세이(平成) 시대를 통해 ‘상징 천황’ 모델이 국민 속에 스며드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지난 18일 일본의 유명 작가 하야시 마리코(林真理子)가 아사히(朝日)신문 기고에서 밝힌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헤이세이 시대에 대한 회고다. 일본에선 이처럼 아키히토 일왕이 패전 이후 제정된 헌법에 명시된 ‘상징으로서의 천황’에 대한 인식을 정착시켰다는 평가가 많다.
30년 3개월에 걸친 재위기간 아키히토 일왕은 한때 신격화한 존재로서 ‘전쟁 책임’이 있는 선왕 히로히토(裕仁ㆍ재위 1926~1989)의 그늘을 지우고 새 왕실 모델을 만드는 데 진력했다. 대표 활동은 재해지역의 위로방문과 국내외 태평양전쟁 당시 격전지를 찾아 희생자를 위로하는 ‘위령 여행’이다.
헤이세이를 회고하는 TV 프로그램에선 2011년 동일본대지진 피해지역을 방문한 아키히토 일왕 내외가 대피소 바닥에 무릎을 꿇고 망연자실 상태의 피해 주민들 사연에 귀 기울이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일왕 방문으로 용기를 얻었다는 목소리가 절대 다수지만 초반에는 차가운 반응도 없지 않았다. 1991년 나가사키(長崎)현 후겐다케(普賢岳)산 분화, 1995년 한신(阪神)ㆍ아와지(淡路) 대지진 피해지역을 방문했을 당시 “일왕이 온다고 해도 달라지는 게 없다”, “방문보다 가설주택이나 빨리 지어달라”는 불만이 언론에 보도됐고, 보수세력들은 “일왕으로서 위엄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지난해 7월 서일본 폭우 피해지역 방문 등을 포함, 일왕 내외는 재위 중 37회에 걸쳐 재해 피해지역을 방문했다. 아울러 이도(離島ㆍ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낙도), 장애인 시설, 노인 요양소 등 소외계층을 챙겨 왔다. 왕세자 시절과 재위기간을 합해 60년간 일왕 내외는 전국 47개 도도부현(都道府縣ㆍ광역자치단체)을 세 차례 순회했다.
2차 대전 중 미군 공습 당시 고쿄(皇居ㆍ일왕 거처) 내 방공호에서 생활한 적이 있고, 11세 때 피난지인 닛코(日光)에서 종전을 맞이한 그는 국내외 격전지와 원폭 피해지역을 찾아 희생자들을 위로했다. 즉위 이후엔 1992년 중국, 1994년 하와이, 2005년 사이판, 2016년 팔라우, 2017년 필리핀 등을 방문했다. 특히 사이판 방문 당시엔 일본군 위령비 외에 태평양한국인평화탑을 찾아 참배했다. 그는 지난 4년간 종전 기념식에서 “과거를 돌이켜보며 깊은 반성과 함께 전쟁의 참화가 반복되지 않기 바란다”고 말했다. 재위기간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靖国) 신사를 찾지 않은 것도 주목된다. 과거사 반성에 부정적이고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에 거리낌이 없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이처럼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추며 평화를 강조한 행보에 영향을 준 것은 미치코(美智子) 왕비와 미국인 가정교사였던 엘리자베스 바이닝과의 만남이었다. 미치코 왕비는 국민들에게 메이지(明治) 시대 이후 첫 평민 출신 왕비로 기억된다. 아키히토가 왕세자였던 1957년 가루이자와(軽井澤) 테니스장에서 처음 만나 교제를 시작했고, 신분 차이를 이유로 한 반대를 극복하고 결혼했다. 슬하 2남1녀를 직접 기르면서 보육관에 맡기는 기존 전통을 깼다.
바이닝은 패전 이후 1946년부터 4년간 가정교사로서 13세의 왕자였던 아키히토에게 영어와 평화의 소중함을 가르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패전까지 남들과 평등한 대우를 받은 경험이 없었던 아키히토에게 경칭을 생략하고 ‘지미’라는 영어 이름을 붙여준 것은 유명한 일화다.
이처럼 아키히토 일왕은 헤이세이 시대 버블 붕괴, 잇단 자연재해로 인한 사회적인 불안을 달래주면서 일본 국민 통합에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일왕의 행보가 민주주의 시대의 정치 역할을 대신하고, 장기 불황으로 일본 사회가 점차 내향적인 성향을 띠면서 정치적 역동성을 저해하는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패전 이후 미국의 묵인 하에 천황제가 ‘국가 상징’으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에서 일왕에게 전쟁 책임을 묻기 어렵게 됐고, 아키히토 일왕의 긍정적인 이미지가 21세기 기준으로 보면 시대착오적인 천황제에 대한 건전한 문제 제기를 막아버렸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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