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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트랙 6박7일 전투… 정치는 없었다 '3류 여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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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트랙 6박7일 전투… 정치는 없었다 '3류 여의도'

입력
2019.05.01 04:40
수정
2019.05.01 11:07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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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야 수장들, 단 한번 회동 없이 거친 설전ㆍ무더기 고발 

 초유의 팩스 사보임ㆍ의장 병상결재 오명… 선진화법 무력화 

국회 사법개혁특위 이상민 위원장이 29일 밤 오후 문체위 회의실에서 열린 사법개혁특위 전체회의에서 공수처·검경수사권 조정안 패스트트랙 지정을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2019.4.30 kjhpress@yna.co.kr/2019-04-30 연합뉴스
국회 사법개혁특위 이상민 위원장이 29일 밤 오후 문체위 회의실에서 열린 사법개혁특위 전체회의에서 공수처·검경수사권 조정안 패스트트랙 지정을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2019.4.30 kjhpress@yna.co.kr/2019-04-30 연합뉴스

우여곡절 끝에 ‘개혁입법’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열차는 출발했지만 국회 역사에 아로새긴 또 한번의 ‘동물국회’ 오명은 선명하게 남아 있다. 6박 7일간 국회를 무대로 펼쳐진 패스트트랙 정국을 요약하면 한마디로 ‘정치의 실종’이었다.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할 여야의 수장들이 단 한 차례 회동 없이 거친 설전만 주고 받으며 고소ㆍ고발전에 앞장섰다. 대화와 타협을 근간으로 하는 여의도 정치는 설 자리가 없어 보였다. 상대당은 제압해야 하는 적(敵)일 뿐이었다.

24일부터 패스트트랙이 완료된 30일 새벽까지 ‘초유의 팩스 사보임’, ‘국회의장 병상 결재’ ‘최초의 전자 발의’ 등 ‘최초’라는 단어가 붙는 극한 대치 상황이 줄을 이었다. 이어 국회 의안과 점거, 의원 감금 해프닝이 벌어졌고, 마침내 빠루(노루발못뽑이), 망치 등의 연장이 등장하고 부상자까지 속출했다. 몸싸움 방지를 위해 2012년 실시된 일명 ‘국회선진화법’(개정 국회법)이 7년 만에 휴지조각이 되는 순간이었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24일 오전 여야 4당의 선거제·개혁법안 패스트트랙 문제로 국회의장실을 항의 방문한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설전을 벌이고 있다. 2019.4.24 연합뉴스
문희상 국회의장이 24일 오전 여야 4당의 선거제·개혁법안 패스트트랙 문제로 국회의장실을 항의 방문한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설전을 벌이고 있다. 2019.4.24 연합뉴스

 ◇중재자 국회의장의 부재… ‘팩스 사보임’에 문틈 브리핑까지 

막장 국회의 신호탄은 캐스팅보트인 바른미래당 지도부가 24일 “소신을 위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을 반대하겠다”는 오신환 의원에 대해 사법개혁특위 사보임(교체) 조치를 시사한 것이었다. 강제 사보임 철회를 촉구하기 위해 문희상 국회의장을 찾아간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거세게 항의했고, 이에 응수하던 문 의장이 저혈당 쇼크로 입원하면서 분위기는 급격하게 달아올랐다. 이 과정에서 문 의장이 임이자 한국당 의원의 양볼을 만진 것을 놓고 성추행 논란마저 불거지면서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할 국회의장의 부재 상황이 한동안 계속됐다.

25일 오전에는 바른미래당 지도부가 의사과 앞을 점거한 바른미래당 패스트트랙 반대파 의원들을 피해 사보임안(오신환→채이배)을 국회 의사과에 팩스로 제출하고 문 의장이 이를 병상에서 서명하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채이배 의원이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6시간 동안 감금 상태에 놓였다가 창문을 통해 기자들에게 ‘구해달라’는 내용의 브리핑을 한 것도 명장면으로 남았다. 과거 가택연금이 잦았던 독재시대에나 볼 법한 풍경으로 CNN 등 주요 외신에도 보도됐다. 이어 오 의원의 사보임 조치 이후 7시간 만에 사개특위 소속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마저 교체되면서 대치는 더욱 고조됐다.

국회 관계자들이 26일 새벽 여야4당의 수사권조정법안을 제출하기 위해 자유한국당 당직자들이 점거한 국회 의안과에 '도구'를 사용해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 관계자들이 26일 새벽 여야4당의 수사권조정법안을 제출하기 위해 자유한국당 당직자들이 점거한 국회 의안과에 '도구'를 사용해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7년 만에 휴지 조각된 선진화법… 한 차례도 마주 앉지 않은 여야 

격분한 한국당은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육탄 저지에 나섰다. 25~26일에는 사개특위 법안 제출을 막기 위해 의안과를 점거, 팩스로 들어온 검경수사권 조정 관련 법안을 낚아채 찢어버렸고 이 과정에서 팩스도 망가졌다. 26일 새벽에는 한국당이 점거한 의안과 출입문을 국회사무처 직원 등이 빠루와 망치를 이용해 열려는 시도도 있었다. 최루탄 투척과 해머, 전기톱이 등장했던 18대 폭력국회를 재현하지 않기 위해 도입한 선진화법이 무력화되는 순간이었다. 여당은 급기야 26일 헌정사상 처음으로 인편(人便)이 아닌 전자발의시스템을 이용해 법안을 제출했고, 허를 찔린 한국당은 최후의 수단으로 회의 개최를 막기 위해 회의장 앞 바닥에 드러누워버렸다.

총알이 오가는 전쟁터에서도 적군과 물밑 협상이 이뤄진다고 하지만 무법천지가 된 국회는 전쟁터만도 못했다. 여야 대치가 소강상태에 이른 주말(27~28일)에도 여야 수장들은 협상 테이블에 앉는 대신 한국당은 장외투쟁을, 더불어민주당은 전략회의를 하며 호시탐탐 회의 개최 기회를 노렸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30일 새벽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끝나고 정의당 의원들이 지나가지 못하게 누워서 길을 막고 있다. 2019.4.30 yatoya@yna.co.kr/2019-04-30 01:14:16 연합뉴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30일 새벽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끝나고 정의당 의원들이 지나가지 못하게 누워서 길을 막고 있다. 2019.4.30 yatoya@yna.co.kr/2019-04-30 01:14:16 연합뉴스

사개특위와 정개특위에서 각각 29일 밤 11시 54분과 30일 0시 33분 패스트트랙이 완료되기까지 여야 수장들은 대화 대신 고소ㆍ고발전에만 치중했다. 결국 여야의 무더기 맞고소로 피고발자 국회의원만 80명에 육박하면서 자신들의 정치적 운명을 스스로 검찰에 맡긴 한심한 신세가 됐다는 자조가 뒤늦게 흘러나온다. 때마침 의안과 문을 뜯기 위해 빠루까지 등장한 26일은 초ㆍ중ㆍ고 학생 900여명이 국회 본청을 찾은 날이었다. 과연 그날 학생들에게 국회는 어떤 모습으로 비쳤을까.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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