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매기는 ‘주류세’ 개편안을 놓고 기획재정부가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 주류 출고가에 세금을 매기는 기존 ‘종가세(從價稅)’ 대신, 술의 용량이나 알코올 농도를 기준으로 삼는 ‘종량세(從量稅)’로 바꾸자는 큰 방향은 정해진 상태다. 그러나 “가격을 올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종량세 전환을) 추진하려 한다”(2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는 정부의 원칙이 말처럼 쉽지 않은 게 문제다.
특히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소주와 맥주 가격이 엇박자를 낼 가능성이 높다. 종량세로는 비싼 술에 높은 세금을 매기면서 동시에 서민 주류에 낮은 세금을 부과하는 종가세의 취지를 살리기는 힘들어서다.
5일 관계부처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기재부는 주류세 과세 체계를 현행 출고가격 기준인 종가세에서 알코올 도수, 용량 기준인 종량세로 개편하는 방안을 이달 중 내놓을 예정이다. 관건은 상대적으로 이견이 좁혀진 맥주만 우선 종량세로 바꿀 지, 아니면 소주, 위스키, 와인 등 다른 술도 종량세로 한꺼번에 전환할 지다. 홍남기 부총리는 이에 지난 2일 “가격을 올리지 않고 전환하기 어렵다면 이번에 개편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검토하고 있다”며 “주종별로 의견이 수립되는 데 따라 단계적으로 갈 수도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국산맥주 역차별 해소
주세 개편 논의에 불을 당긴 건, 국내 주류 소비의 절반 이상인 맥주 가격의 형평성 문제 때문이다. 국산 맥주의 주세는 제조원가와 주류회사의 판매관리비, 이윤을 더한 값(과세표준)에 72%를 매긴다. 반면, 수입맥주는 수입업체가 신고한 수입가격에 관세를 더한 값을 과세표준으로 삼는다. 수입업체가 낮은 가격을 신고하면 세금을 낮춰 가격을 내릴 수 있어 ‘국산 맥주 역차별’ 논란을 불렀다.
이런 과세 체계는 중소 제조사의 수제 맥주나, 프리미엄 맥주가 활성화 되는데도 걸림돌이 돼 왔다. 규모의 경제를 누릴 수 없는 수제맥주나 고급 원재료를 사용하는 프리미엄 맥주는 상대적으로 제조원가가 높을 수 밖에 없는데, 이를 기반으로 세금을 매기다 보니 일반 국산ㆍ수입맥주와 가격차가 더 벌어지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아예 가격 대신 맥주의 양을 기준 삼아 세금을 매기자는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지금은 맥주 과세표준(제조원가+판매관리비+이윤)에 주세(과세표준의 72%), 교육세(주세의 30%), 부가가치세(과세표준+주세+교육세의 10%) 등 총 112.96%의 세금이 매겨진다. 종량세로 바꿀 경우 맥주 1ℓ당 835원(권성동 의원 안 기준) 안팎의 주세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국세청이 심기준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맥주 1ℓ당 835원의 주세를 매기고 교육세와 부가세 세율을 그대로 유지할 경우 시중에서 2,500원에 팔리던 국산 맥주 500㎖ 1캔 가격은 363원 하락한 2,137원, 같은 가격의 수입 맥주 가격은 89원 상승한 2,589원에 팔리게 된다.
◇소줏값 인상이 고민
하지만 정부로선 서민들의 대표 주종 소줏값 인상이 고민이다. 우선 맥주에만 종량세를 도입하면 다른 주종과의 과세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그렇다고 맥주와 같은 방식의 종량세를 소주에도 도입하면 소주에 붙는 세금을 높이거나 위스키에 붙는 세금을 대폭 낮춰야 한다.
가령 알코올 농도 15도를 기준으로 500원의 세금을 매긴 뒤 1도가 높아질 때마다 100원씩 세금을 높일 경우, 알코올 농도 17도인 희석식 소주에는 700원의 주세가 붙는다. 여기에 교육세와 부가가치세를 더하면 1,000원대의 세금이 매겨진다. 현재 참이슬 출고가(1,081.2원)가 과세표준 507.7원과 세금 573.5원(주세 365.5원, 교육세 109.7원, 부가가치세 98.3원)으로 구성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소줏값이 지금보다 500원 가량 상승하는 셈이다.
더구나 이는 도매가격으로, 유통ㆍ판매과정에서 붙는 물류비용ㆍ마진 등을 감안하면 체감 소줏값은 훨씬 더 오를 수 있다. 보통 3,000~4,000원 하는 음식점 소줏값이 한번에 5,000원으로 뛸 수 있는 셈이다. 실제 지난달 하이트진로가 참이슬 출고가를 1,015.7원에서 1,081.2원으로 65.5원 올리자, 편의점 판매 가격은 1,650원에서 1,800원으로 150원 뛰기도 했다.
반대로 ‘고급술’ 위스키는 오히려 가격 인하 효과를 누리게 된다. 가령 수입가 3만원인 위스키에 현재 방식대로 세금을 매기면 실제 출고가는 6만3,888원(주세 2만1,600원ㆍ수입가격의 72%)이지만 소주와 같은 방식으로 알코올 농도 40도 기준 3,000원의 주세가 매겨지면 출고가는 3만7,290원까지 떨어진다.
소주 가격이 비싸지고 위스키 가격이 싸 진다고 해서 정부가 소주에만 별도의 낮은 기준을 적용할 수는 없다. 두 주종이 모두 증류주 항목으로 분류돼 있어, 세율을 차별화 할 경우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위반이 된다. 앞서 WTO는 지난 1999년 소주에 35%, 위스키에 100% 세율을 적용한 한국의 주세제도가 WTO 협정에 위배된다고 판정해 지금의 72% 일률 과세를 만든 바 있다.
이준규 경희대 교수는 “주세 제도의 종량세 전환은 긍정적 측면이 있지만 소주 산업에는 타격을 입힐 것으로 보인다”며 “종가세 체계를 일시에 종량세로 바꾸기보다는 5~10년에 걸쳐 종량세 비중을 넓히는 등 소주산업이 경쟁력을 키울 적응기간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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