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에필로그: 역사의 기억, 기억의 미래’
‘100년에서 100년으로’는 지난 100년 우리 현대사를 돌아보고 미래 100년을 내다보려는 기획으로 지난해 2월 말부터 시작했다. 2019년 올해 3ㆍ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이 기획이 초점을 맞춘 것은 우리 현대 지성의 역사였다. 세상을 움직이는 건 사상이라고 말한 이는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였다. 우리 현대사를 움직여온 사유와 담론, 이를 포괄하는 사상을 미래지향적으로 성찰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선 자리와 갈 길을 탐색해 보려고 했다.
◇대한민국 100년의 기억
우리 역사에서 지난 100년은 ‘대한민국’의 역사였다. ‘대한민국’이 본격적으로 표방된 것은 정확하게 100년 전인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서였다. ‘대한(大韓)’이 뜻하는 바는 ‘우리나라’이고, ‘민국(民國)’이 의미하는 바는 ‘국민이 주인’인 나라다. ‘대한민국’이란 ‘국민이 주인인 우리나라’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주목할 것은 대한민국을 앞세운 임시정부가 3ㆍ1운동의 정신을 계승했다는 점이다. 3ㆍ1운동의 가장 중요한 의의는 일제 식민지배에 맞서서 민족 해방과 민족 자결을 요구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요컨대, 3ㆍ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은 우리 역사에서 근대 민족주의와 민주주의의 출발점을 이뤘다.
이런 대한민국의 역사를 그렇다면 어떻게 봐야 할까. 이에 대해선 두 가지를 주목하고 싶다. 첫째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은 그 과거를 반복하기 마련”이라는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의 충고다. 우리가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그 역사에서 행한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 동시에 이룩한 성취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다.
둘째는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의 주장이다. 과거의 기억은 현재의 관점에서 늘 새롭게 해석되며, 이 해석을 기반으로 해 미래로 나아가게 된다. 다시 말하면, 미래란 허공 속에 놓인 게 아니라 과거의 기억에 대한 현재적 독해의 연장선 위에 펼쳐지는 것이다.
기억이란 과거의 경험에 대한 생각과 느낌이다. 이 기억은 실존적 기억과 집합적 기억으로 나눠진다. 실존적 기억은 개인의 삶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다. 사랑과 미움, 성공과 좌절, 고독과 연대에 대한 실존적 기억은 현재의 삶을 돌아보게 하고 미래의 삶에 용기를 준다.
집합적 기억은 크고 작은 공동체가 공유하는 기억이다. 3·1운동과 임시정부, 일제 식민지배와 민족해방운동, 광복과 분단, 산업화와 민주화에 대한 집합적 기억은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더 나은 미래로 이끄는 성찰의 출발점을 제공한다. 역사의 기억이 중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 기획에서 내가 전하려 했던 것은 이러한 기억에 대한 지식인의 책무였다. 진리를 탐구하는 이들에게 부여된 중요한 과제의 하나가 망각해선 안 될 과거의 기억들을 소환하고 다음 세대에게 전승하는 데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독립운동가와 정치가에 대한 기억
이 기획에서 다룬 60명의 인물들은 바로 그 기억의 지식인들이다. 몇몇 사람들은 지식인의 범위를 넘어선다. 이승만, 안창호, 김구, 이은숙, 여운형, 박정희. 김대중, 김영삼, 노무현은 독립운동가 또는 정치가라는 이름이 더 잘 어울린다. 하지만 이들이 지식사회에 미친 영향은 결코 작지 않다.
이들 독립운동가와 정치가를 주목한 까닭은 ‘시대정신’에 있었다. 지난 100년 우리 현대사를 이끌어온 시대정신은 세 가지였다. 독립된 국가와 사회를 이루려는 민족해방, 빈곤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산업화, 자유·인권·민주주의를 누리려는 민주화가 그것이었다. 이 민족해방과 산업화와 민주화는 독립운동가, 정치가, 그리고 지식인들의 삶을 끌고 또 밀어온 시대정신이었다.
이 기획에서 다룬 이승만, 안창호, 김구, 이은숙, 여운형 등은 모두 민족해방에 대한 순정한 열망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1945년 광복을 이룬 다음에 우리 정치가들은 새로운 국가와 사회를 위한 경제적 산업화와 정치적 민주화를 추구했다. 박정희가 산업화를 상징하는 정치가였다면, 김대중과 노무현은 민주화를 상징하는 정치가였다.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고 ‘사람 사는 세상’을 일궈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시대정신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온 후 김구가 남긴 간절한 바람이다. 김구는 우리와 다른 나라에게 모두 행복을 안겨주는 문화국가를 꿈꿨다. 동북아는 물론 인류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문화국가는 대한민국 미래 100년에서 추구해야 할 궁극적 목표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상가와 예술가에 대한 기억
민족해방, 산업화,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제도적 차원에서 사회변동을 이끌어왔다면, 존재의 위안과 구원과 해방에 대한 소망은 개인적 차원에서 우리 삶을 계몽시켜 왔다. 삶이란 자신에게 부여된 의미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본디 종교적이며 철학적일 수밖에 없다. 나는 누구인가, 어떤 삶이 바람직한 것인가는 우리 현대사에서도 반복해 던져진 질문들이었다. 지식인 함석헌, 박종홍, 김수환, 법정, 김형석, 신영복의 기여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돌아보면 지난 100년은 자본주의라는 현대성의 역사였다. 이 과정에서 나타난 소외, 불평등, 관료화 등 넘치는 지상의 비명들은 기독교적 사랑이든 불교적 해탈이든 철학적 자각이든 존재의 위안과 구원과 해방을 소망하게 했다. 인간은 본래 연약하고 외로운 미완성의 존재다. 이런 삶의 위안과 구원과 해방을 향한 김수환, 법정, 신영복의 언어는 쉽게 탈색하지 않을 소중한 기억들이었다. 신영복은 “사람이 희망”이라고 말한다.
“사람을 키우는 일이야말로 그 사회를 인간적인 사회로 만드는 일입니다. (...) 욕망과 소유의 거품, 성장에 대한 환상을 청산하고, 우리의 삶을 그 근본에서 지탱하는 정치·경제·문화의 뼈대를 튼튼히 하고, 사람을 키우는 일, 이것이 (...) 희망의 언어입니다.”
기억해야 할 또 다른 이름들은 예술가의 존재들이었다. 이 기획에서 다뤘던 예술가들은 시인, 소설가, 문학 및 문화평론가들이었다. 한용운, 이광수, 나혜석, 이육사, 윤동주, 황순원, 김수영, 박경리, 최인훈, 이어령, 김윤식, 김우창, 김종철, 조세희, 박완서, 유홍준, 박노해, 한강이 바로 그들이었다.
예술은 존재에 대한 사려 깊은 이해와 인생에 대한 의미 있는 실천을 이끈다. 나아가 예술은 자기 사회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데 타자와 공유할 수 있는 공감과 연대를 선물한다. 예를 들어, 민족 해방과 존재 해방을 추구한 한용운, 지난 20세기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돌아본 박경리, 가부장적 폭력과 후기현대적 규율을 성찰한 한강은 우리 현대 지성의 빛나는 성취의 하나로 평가할 수 있다.
◇역사학자와 사회과학자에 대한 기억
우리 현대 지성사를 이끌어온 또 하나의 흐름은 역사학자들과 사회과학자들의 탐구였다. 반만년에 이르는 전체 역사와 근대 이후 진행된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해선 역사학자 신채호, 김성칠, 이기백, 김용섭, 강만길의 기여가 결코 작지 않았다. 민족주의가 민주주의와 함께 우리 현대성을 이끌어온 가장 중요한 사상적 원천이었다면, 역사학자들은 이 민족주의에 새로운 해석과 생명을 불어 넣었다.
역사학의 시선이 우리나라에만 맞춰진 것은 아니다. 서양사학자 주경철은 서구 근대 역사에 대한 탐구를 통해 우리의 시야를 넓혀줬다. 동양사학자 민두기를 포함해 더 많은 역사학자들의 연구를 살펴보지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우리 현대사에 대한 사회과학자들의 기여에서 주목한 것은 산업화와 민주화, 분단과 통일, 법과 제도, 사회구조와 문화변동, 페미니즘과 생태학에 대한 탐구였다. 이 기획에서 다룬 유진오, 이용희, 장일순, 박현채, 리영희, 한완상, 이효재, 백낙청, 최장집, 정운찬, 박세일, 임혁백, 손호철, 조희연, 함재봉, 강상중, 신기욱, 장하준, 안승준은 이러한 연구들을 대표했다.
유진오의 헌법론, 장하준의 발전국가론, 이효재의 여성해방론, 장일순의 생태학, 백낙청의 분단체제론, 최장집의 민주주의론, 박세일의 선진화론 등은 광복 이후 우리 현대사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과거 100년이 ‘민주공화국’을 일궈왔다면, 미래 100년은 이 민주공화국을 풍요롭게 해야 한다. 민주주의자 최장집은 역설한다.
“우리는 아직도 민주주의를 말해야 하고 우리의 민주주의가 실질적인 내용을 갖고 발전할 수 있는 경로를 찾는 데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여전히 한국사회는 민주화의 과제를 안고 있다.”
지성의 역사를 인문학과 사회과학이 독점할 순 없다. 기획을 마무리하면서 갖는 또 하나의 아쉬움은 생물학자 석주명과 최재천을 제외하곤 자연과학자를 소홀히 다뤘다는 점이다. 자연과학에 대한 내 공부가 부족한 탓이었다. 앞으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제대로 다룰 것임을 약속 드린다.
◇대한민국의 미래 100년을 향하여
이제 우리 사회 앞에는 새로운 미래 100년이 기다리고 있다. 100년이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다. 지난 100년을 돌아봐도 일제 강점기, 광복, 산업화, 민주화의 사회변동이 이어졌다. 새롭게 펼쳐질 미래 100년의 역사는 크게 ‘단중기 미래’와 ‘중장기 미래’로 구분해 볼 수 있다.
단중기 미래는 ‘민주공화국 100년’(2019)과 ‘광복 100년’(2045) 사이의 기간이다. 이 단중기 미래에 우리 사회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토대로 해 성숙한 국가와 사회를 열어가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경제·사회적으로 완전한 선진국으로의 공고화, 동북아의 협력과 번영을 주도하는 중추국가로의 도약이 그 양대 과제를 이룰 것이다.
중장기 미래는 ‘민주공화국 200년’(2119)으로 가는 기간이다. 100년에서 100년으로 가는 이 기간에 우리 사회는 단중기 미래를 기반으로 해 중장기 미래 비전을 모색하고 추구해 가야 한다. 인류 평화와 번영을 선도하는 문화국가로의 부상은 중장기 미래의 중심 비전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면, 미래는 과거의 기억에 대한 현재적 성찰을 바탕으로 새로운 역사를 일궈나가는 과정이다. 기억은 지나간 역사를 증거하는 동시에 새로운 역사에의 용기를 선사한다. 지난 100년 우리 현대 지성의 고투에 대한 기억이 새로운 100년을 향한 용기를 안겨주길 소망하면서 이 기획을 마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지난 한 세기 우리나라 대표 지성과 사상을 통해 한국사회의 미래를 생각해온 ‘김호기의 100년에서 100년으로’는 이번주로 연재를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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