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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 사건 ‘THE END’ … ‘한국어 직원 있었다면 이야기 달라졌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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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 사건 ‘THE END’ … ‘한국어 직원 있었다면 이야기 달라졌을 수도’

입력
2019.05.04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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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안 티 흐엉(왼쪽 세번째)이 자신의 변호사 히샴 테 포테익(두번째), 베트남 외교부 관계자(첫번째) 등에 둘러싸여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공항 입국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하노이=EPA 연합뉴스
도안 티 흐엉(왼쪽 세번째)이 자신의 변호사 히샴 테 포테익(두번째), 베트남 외교부 관계자(첫번째) 등에 둘러싸여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공항 입국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하노이=EPA 연합뉴스

“배우가 되고 싶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을 살해해 수감됐다 3일 풀려난 도안 티 흐엉이 베트남으로 돌아왔다. 지난 2017년 3월 김정남 살인 혐의로 구속된 지 2년여만이다.

선글라스를 쓴 채 활짝 웃는 모습의 흐엉은 이날 오후 10시쯤 하노이 노이바이국제공항 보안구역을 빠져 나왔다. 카메라 앞에 선 그는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다”면서도 배우에 대한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지난 2017년 2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2터미널에서 리얼리티 TV의 몰래 카메라를 찍는다는 말에 속아 북한의 살해도구로 이용당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해왔다. 그는 또 “(배우가 되기 위해) 말레이시아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2017년 말레이시아 경찰에 체포 당시 흐엉의 직업은 ‘연예기획사 직원’으로 돼있다.

입국 절차를 거친 후 언론 앞에 나타난 흐엉은 수감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점으로 “외로움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꼽았다. 또 그는 “감옥에서의 생활 여건은 좋은 편이었고 대우도 나쁘지 않았다”며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정부, 변호인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날 흐엉의 언론 접촉은 예상을 깬 것이다. 같은 혐의로 수감됐다 앞서 풀려난 인도네시아 국적의 시티 아이샤는 언론 접촉을 하지 않았다.

이날 공항에는 흐엉의 변호인인 히샴 테 포테익(히샴 빈 압둘라) 변호사와 베트남 정부 관계자가 흐엉과 같은 비행기에 동승해 베트남으로 입국했으며, 노이바이 국제공항에는 외교부 고위 간부까지 나가 흐엉을 맞았다. 베트남 외교부는 인도네시아 여성은 풀려나면서도 자국 국민인 흐엉은 억류되자 지난 3월 주베트남 말레이시아 대사를 초치해 항의하는 등 흐엉의 재판을 앞두고 “베트남 정부는 최고 수준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흐엉은 간단한 인사를 마친 뒤 베트남 정부가 준비한 차량으로 북부 남딘성에 있는 집으로 향했다.

앞서 흐엉은 지난달 1일 살인 혐의에서 상해 혐의로 공소가 변경된 뒤 징역 3년 4개월을 선고 받았다. 또 모범수로 감형을 받아 이날 오전 7시30분께 말레이시아 까장 여성교도소에서 출소했다. 이후 이민국에서 관련 절차를 밟은 뒤 이날 저녁 7시15분께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베트남항공편으로 귀국길에 올랐다.

이로써 김정남 암살에 연루됐던 인물 전원이 자유의 몸이 됐으며, 김정남 암살 배후의 ‘공식적’ 실체는 미궁으로 남게 됐다.

지난 2017년 2월 19일 오후 말레이시아 경찰청에서 열린 기자회견서 수사당국자가 김정남 살해 혐의로 체포한 도안 티 흐엉의 신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당시 흐엉의 직업은 연예기획사 직원으로 돼 있다. 쿠알라룸푸르=정민승 특파원
지난 2017년 2월 19일 오후 말레이시아 경찰청에서 열린 기자회견서 수사당국자가 김정남 살해 혐의로 체포한 도안 티 흐엉의 신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당시 흐엉의 직업은 연예기획사 직원으로 돼 있다. 쿠알라룸푸르=정민승 특파원

지난 2년여의 시간 중 말레이시아 경찰이 북한의 화학 전문가로 알려진 용의자 리정철을 사건 직후 체포하고도 추방한 것은 결정적 실수로 남는다. 말레이 경찰은 당시 도주한 4명이 이용한 차량이 리정철 소유라는 사실 외 다른 물증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리정철을 석방하면서 추방했다.

석방 직전 말레이시아 이민국에서 진행된 영사 면담은 사건의 배후를 밝힐 수 있는 결정적 정황 증거로 꼽힌다. 주말레이시아 북한대사관 소속의 김유성 영사부장 겸 참사가 면담에 나섰는데, 면담 내용을 담은 유튜브 동영상에 따르면 김유성 참사는 리정철에게 “정말 수고했다”며 “안 그래도 내가 일사분란하게끔 나간 동지들이 리정철 동무에 대해서 걱정 많이 했다”고 하는 대목이 있다. 이에 리정철은 “고맙습니다”, “잘됐으면 좋겠다” 고 답한다. ‘일사불란하게 나간 동지들’은 리재남, 리지현, 홍송학, 오종길 등 북한인 용의자 4명으로 분석됐다.

말레이시아 수사 당국에는 한국어를 하는 직원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 동영상은 당시 추방 이후 약 1주일간의 시차를 두고 올라와 세상에 공개됐다. 리정철이 북한으로 돌아간 뒤다.

관련 동영상 :

흐엉은 인도네시아인 시티 아이샤와 함께 2017년 2월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김정남의 얼굴에 화학무기인 VX 신경작용제를 발라 살해한 혐의로 체포돼 재판을 받아왔다. 이들은 리얼리티 TV용 몰래카메라를 찍는다는 북한인들의 말에 속아 살해 도구로 이용됐을 뿐이라고 주장해왔다.

실제 두 사람에게 VX를 주고 김정남의 얼굴에 바르도록 지시한 것으로 조사된 리재남, 리지현, 홍송학, 오종길 등 북한인 용의자 4명은 범행 직후 출국, 인도네시아와 러시아, 캄보디아 등을 거쳐 북한으로 도주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일찌감치 이번 사건의 ‘영구미제’ 사건 가능성이 제기됐다. 당시 말레이시아 정부 내에서는 “여성들이 범행을 직접 수행했지만 평양으로 도주한 북한인들에게 이용당했다는 정황이 뚜렷하다. 북한인들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처벌하기는 쉽지 않다”는 기류가 적지 않았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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