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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할머니!”… 베니스 비엔날레로 간 강서경 작가의 ‘할머니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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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할머니!”… 베니스 비엔날레로 간 강서경 작가의 ‘할머니 기억’

입력
2019.05.09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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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경 작가가 서울 종로구 누하동 작업실에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신지후 기자
강서경 작가가 서울 종로구 누하동 작업실에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신지후 기자

두고두고 떠올리는 ‘할머니 기억’이 있을 것이다. 유난히 포근한 품, 쿰쿰한 블라우스 냄새, 굽은 손가락 마디 같은 것 말이다. 설치미술가 강서경(42)에게도 할머니는 가장 오래 간직해 온 작품 모티브다. 한없이 연약한 동시에 더없이 당당하기도 해 자꾸만 돌이키게 되는 애틋한 존재. 강 작가는 ‘할머니 기억’을 이탈리아 베니스까지 옮겼다. 8일 사전 공개된 베니스 비엔날레 지아르디니 본전시장에 설치된 ‘그랜드마더타워(Grandmother Tower)’ 이야기다.

강 작가는 랄프 루고프 베니스 비엔날레 총감독이 기획하는 본전시에 참여한다. 또 다른 본전시장인 아르세날레 전시장에는 ‘땅 모래 지류(Land Sand Strand)’를 내놓는다. 강 작가의 두 작품 모두 회화, 영상, 조형물을 연계한 설치작이다. 얼마 전 서울 종로구 누하동 작업실에서 만난 강 작가는 “돌아가시기 전 할머니 신체에서 너무 연약하지만 어떻게든 버티려는 어떤 의지를 읽었다”고 했다. “할머니 형상을 한 작품을 통해 한 개인이 사회에서 어떻게 목소리를 내고 지탱하는지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땅 모래 지류’ 역시 땅에 흩어진 모래가 모여 지류를 이루듯, 개개인이 어떤 방식으로 사회를 만드는가를 다룬 작품이고요.”

비엔날레가 열린 이탈리아 베니스의 지아르디니 본전시장에 8일 강서경 작가의 '그랜드마더타워'가 설치돼 있다. 국제갤러리 제공
비엔날레가 열린 이탈리아 베니스의 지아르디니 본전시장에 8일 강서경 작가의 '그랜드마더타워'가 설치돼 있다. 국제갤러리 제공

‘그랜드마더타워’는 원형 조형물 여러개를 쌓아 올린 탑 형태다. 주로 선형인 원형 조형물에는 다양한 색의 실이 감겨 있고, 탑 꼭대기로 갈수록 몸체가 기우뚱 기울어진다.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의 실루엣을 표현했다. 탑 여러 개가 전시장 곳곳에 설치되는데, 가장 높은 작품은 2m90㎝에 달한다. 강 작가는 “탑 하나하나가 각각 한 사람인 것처럼 서 있을 것”이라며 “한 번도 전시에 걸지 않았던 회화도 이번에 함께 선보인다”고 설명했다.

강서경 작가의 작품 '땅 모래 지류'가 8일 비안날레가 열리는 이탈리아 베니스 아르세날레 전시장에 설치돼 있다. 국제갤러리 제공
강서경 작가의 작품 '땅 모래 지류'가 8일 비안날레가 열리는 이탈리아 베니스 아르세날레 전시장에 설치돼 있다. 국제갤러리 제공
강서경 작가의 작품 '땅, 모래, 지류'가 8일 비안날레가 열리는 이탈리아 베니스 아르세날레 전시장에 설치돼 있다. 국제갤러리 제공
강서경 작가의 작품 '땅, 모래, 지류'가 8일 비안날레가 열리는 이탈리아 베니스 아르세날레 전시장에 설치돼 있다. 국제갤러리 제공

동양화를 전공한 강 작가는 전통미와 현대미를 잘 조화한 기법으로 세계에서 주목 받고 있다. 영상, 구조물, 액티베이션(관객과 함께하는 퍼포먼스)으로 구성되는 ‘땅 모래 지류’는 강 작가의 특기를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꼽힌다. 작품을 이루는 주된 소재는 전통 돗자리인 화문석. 강 작가는 경기 강화도를 수시로 오가며 장인들과 함께 화문석에 색을 입히고 엮었다.

관객을 작품 주체로 초대하는 강 작가의 액티베이션은 1인 궁중 무용인 ‘춘앵무’를 기반으로 한다. 조선시대 악보인 ‘정간보’에서 모티브를 딴 무보(舞譜)를 제작해 전시 현장에서 관객들에게 나눠 줄 예정이다. 액티베이션은 81개의 단순한 동작으로 구성됐다. “전시장에 있는 누구라도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콘셉트예요. 개개인이었던 이들이 작품 안에서 하나의 흐름을 만들고 결국 ‘함께’라는 경험이 생기는 거죠.”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 주제는 ‘흥미로운 시대에 살기를(May you live in interesting times)’이다. 강 작가의 작품 세계는 주제와 어떻게 맞닿아 있을까. 강 작가는 “설치,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다루지만 이 모든 게 하나의 ‘회화’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회화라는 시스템 안에서 작품들이 어떻게 확장될 수 있는가, 또 동양의 전통과 현대 미술이 어떤 지점에서 만날 수 있는가 같은 질문들이 관객들에게 흥미로운 감상을 전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서경 작가의 '땅, 모래, 지류' 작품 속 화문석이 이탈리아 베니스 아르세날레 전시장에 설치되고 있다. 국제갤러리 제공
강서경 작가의 '땅, 모래, 지류' 작품 속 화문석이 이탈리아 베니스 아르세날레 전시장에 설치되고 있다. 국제갤러리 제공

세계 최고ㆍ최대의 미술 축제인 베니스 비엔날레는 11일 공식 개막해 11월 24일까지 이어진다. 세계 작가 79명(팀)이 꾸리는 본전시에는 이불, 아나키 이 작가도 참여한다. 이불 작가는 비무장지대(DMZ) 감시초소(GP)에서 철거한 잔해물을 녹여 만든 4m 높이의 설치작 ‘오바드 V’를 선보인다. 각국이 기획하는 국가관에는 올해 90개국이 참여하는데, 한국관은 남화연, 정은영, 제인 진 카이젠 3명의 작가가 꾸린다. 주제는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로, 영상과 설치 작품이 주를 이룬다. 베니스 곳곳에서 윤형근(포르투니 미술관), 이강소(팔라초 카보토 미술관) 전시 등도 열린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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