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의 제국
우렌수 지음ㆍ김의정 등 옮김
글항아리 발행ㆍ596쪽ㆍ2만9,000원
15세기 영국에선 빨간색 옷을 아무나 입을 수 없었다. 왕족과 귀족, 그들의 하인들이나 착용 가능했다. 당시 염색에는 큰 돈이 들었고, 빨간색 옷은 재력이나 권력은 지닌 사람만이 구입할 수 있었다. 빨간색은 고위층을 상징하는 색이 됐다. 헨리 8세는 아예 법으로 빨간색 옷을 입을 수 있는 사람들을 정해놓았다. 산업혁명을 토대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가능해진 현대사회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들이다.
명나라(1368~1644)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정은 나라를 세우고 난 뒤 소비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마련했다. 가옥이나 가마, 복식 등에 대한 규정을 담은 ‘예교제도’로 사람들의 행동과 생활 방식까지 두루 통제했다. 유교를 바탕으로 한 신분사회였으니 상하와 귀천을 분명히 구분하기 위해서였다. 길에서 관리들끼리 마주치면 어떻게 서로 예를 표해야 하는지 상세하게 명문화한 규정까지 있을 정도였다. 예를 들어 하급관리가 세 품계 이상 높은 관리를 만나면 말을 끌고 피하고, 두 품계 위 고관 앞에서는 말을 끌고 길 옆으로 서야 했다. 명 태조는 “그 옷을 보고 귀함과 천함을 알 수 있고 그 용도를 보고 등급과 위험을 밝힐 수 있는” 사회를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다.
초기엔 조정의 뜻대로 사회가 운영됐다. 신생 왕조답게 규율이 잘 적용되는 편이었고, 법령도 비교적 엄격했다. 무엇보다 사회 변화의 동인이 없었다. 땅은 넓은데 인구는 적었고, 사람들은 검소하고 소박했다. 농사짓고 노역에 참여하는 데 여념이 없었고, 소비 능력도 없었다. 평민이 자신의 신분을 뛰어넘어 가마를 타거나 사대부의 복식을 따라 할만한 재력 자체가 부재했던 셈이다.
명 왕조 중기를 지나며 사정은 달라졌다. 성화ㆍ홍치 연간(1465~1505) 민간의 경제력이 갑자기 좋아졌다. 강남에서 상업이 번성했다. 대외무역이 활발해지면서 수공업자와 농민이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강남지역에 상품경제가 발전할 수 있게 되면서 상품의 생산이 촉진되고 물가 인하 효과가 나타났다. 명은 무역의 대가로 백은만 받았는데, 백은이 지속적으로 유입되면서 화폐 공급량이 크게 늘었다. 강남 지역의 도시화도 소비대중을 형성하는데 일조했다. 상인과 농민이 사치품을 탐했고, 신분질서는 급격히 무너졌다. 명 왕조는 사치금지령을 119번 내렸는데 성화 연간(1465~1487) 이후가 108번이었다. 위협을 느낀 사대부는 평민의 소비를 도덕적 잣대로 평가하려 했다.
대만 역사학자가 저술한 책은 소비가 폭발하고 신분사회가 재편됐던 명 말기의 사회상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가마와 복식과 여행과 가구 등의 소비 패턴이 어떻게 변화했고 신분제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살핀다. 영국처럼 명나라에도 대량 소비 사회가 등장했는데 산업혁명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은 이유는 무얼까. 저자는 가치판단이 영향을 줬다고 추정한다. 명의 지식인들은 이전과 다른 사치 소비를 경제적 관점이 아닌 사회적 관점에서 바라봤다. 소비가 부국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따지기보다 사회를 어지럽히는 행위로 본 것이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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