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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당신의 런던] 대기오염과의 전쟁 선언한 런던…이젠 “환경혁명”

입력
2019.05.11 04:4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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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남부 복스홀역 근처. 배기가스 초과 차량에 '공해세'가 부과되는 초저배출구역(ULEZ)을 알리는 표지판이 서 있다.
런던 남부 복스홀역 근처. 배기가스 초과 차량에 '공해세'가 부과되는 초저배출구역(ULEZ)을 알리는 표지판이 서 있다.

“런던의 대기오염은 비상 수준이다. 뒷짐 지고 있을 수가 없다.”

사디크 칸 런던 시장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지난 1월 런던의 석간신문 ‘이브닝 스탠다드’에서 읽었던 그의 칼럼은 오랫동안 잊히지 않았다.

때는 런던시가 ‘초저배출구역(ULEZㆍultra-low emission zone)’ 도입을 3개월 앞둔 시기였다. 이는 배출가스 기준에 맞지 않는 차량이 도심에 진입할 경우 공해 부과금을 지불하도록 하는 제도다. 같은 날 이 신문 다른 지면에는 소상공인들의 절규가 실렸다. 배달 차량 등을 친환경차로 빨리 교체할 수 없으니 제도 시행을 좀 늦춰달라는 요구였다.

칸 시장은 대기오염으로 최대 4만명이 조기 사망하는 영국에서 “미래 세대의 건강을 지키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문제”라고 칼럼을 매듭지었다. 상황을 일축하는 말이었다. 일부 반대 세력들에 대해서도 그는 “단기간에 정치적 지지를 받기 위한 시도”라며 “이 게임에 휘말리는 것을 거부한다”고 썼다.

세계에서 가장 급진적이라 불리는 초저배출구역 제도는 계획대로 4월 8일 시행됐다. 요약하면 배출가스 초과 차량은 런던 중심부의 혼잡구역 진입 시 하루 12.5파운드(약 1만9,000원)의 ‘공해세’를 내야 한다. 위반 시 과태료는 최대 1,000파운드(약 152만원). 하이드파크, 세인트폴성당 등 대부분의 유명 관광지가 이 구역 안에 있다. 우리로 치면 서울 사대문 안보다 조금 더 넓은 면적이다.

대상으로는 2015년 이전 출시된 경유차와 2006년 이전 휘발유차, 2007년 이전 오토바이가 해당된다. 서울시가 미세먼지 심한 날 2005년 이전 출시된 경유차에 대해서만 도심 통행을 제한하는 걸 감안하면 얼마나 강력한 조치인지 가늠할 수 있다.

이와 별도로 런던은 같은 구역에 대해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 사이 11.5파운드(약 1만7,000원)의 ‘혼잡세’를 부과해왔다. 그러니까 2014년 출시된 경유차 운전자가 런던 도심으로 출퇴근할 경우 하루에만 약 3만6,000원을 내야 한다. 한달 20일 출근한다고 했을 때 이 비용만도 72만원에 달한다. 여기에 주차비와 연료비까지. 아무리 런던의 물가가 높다 해도 런던 도심에서 차를 굴리려면 막대한 출혈을 감수해야 한다. 아니면 친환경차로 바꾸거나.

60여년 전 1만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최악의 스모그로 고통 받은 역사 때문일까. 런던은 초저배출구역 도입 이전에도 혼잡통행세(2003년)와 노후경유차 운행제한구역(2008년) 등을 시행해 왔다. 그런데도 택배 운송증가, 우버(Uber)같은 민간 서비스 확대로 늘어나는 차량 통행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뚜벅이인 내게 초저배출구역 제도는 반갑기만 했다. 한국보다 대기오염 수준이 낮다는데도 외출만 하고 돌아오면 콧속 깊숙이 붙은 검댕에 매번 놀라던 터였다.

시 자료에 따르면 런던 내 최소 360개 초등학교가 대기질이 법적으로 안전한 수준보다 나쁜 곳에 위치하고 있다. 대기오염의 절반은 자가용과 버스, 대형 트럭 배기가스 탓이다.

초저배출구역 시행은 이런 상황에 대한 특단의 조치였다. 인상적인 것은 전면에 ‘평등’의 가치를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사디크 칸 시장은 대기오염을 “사회정의의 문제”로 보고 “불평등과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런던에서 가장 빈곤한 지역은 가장 잘 사는 지역보다 이산화질소로 인한 오염에 25% 더 노출돼 있다. 자가용을 소유할 가능성이 낮은 빈곤 가정은 대기오염에 대한 책임이 상대적으로 적은데도 피해 정도는 더욱 큰 것이다. 서울에서 미세먼지 농도가 심각할 때 공기청정기나 특수 마스크를 살 수 없는 저소득 가정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과 같은 이치다.

차량 배출가스 감소로 공기가 깨끗해지면 모두가 수혜자가 된다. 소규모 사업자들의 불만과 다른 유럽국가에서 날아오는 유해물질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런던 시는 바로 이런 이유로 뚝심있게 정책을 밀어부치고 있다. 영국 내 심화하는 불평등을 줄이기 위한 거의 유일한 정책으로까지 보인다.

최근 런던교통국이 내놓은 조금 이른 성적표는 더욱 고무적이다. 시행 후 두 주간 도심에 진입한 차량 열 대 중 일곱 대가 배출가스 기준에 부합, 공해세를 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초 시가 예상한 65%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전체 차량 통행량은 줄고, 자전거 이용은 늘었다는 발표도 있다.

초저배출구역은 2021년 런던 전역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런던시는 2050년까지 도로 교통수단에서 나오는 배기가스를 제로로 만들겠다고 목표하고 있다. 올해 초 공개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40%가 확대를 반대했지만 철회 계획은 없다.

산업혁명의 발상지인 영국이 2025년까지 석탄 발전을 제로로 만들겠다고 공언했을 때 세계는 쉽게 믿지 않았다. 그런데 2016년에는 하루, 2017년 3일, 지난 8일에는 1주일을 석탄 발전 없이 살아가는 데 성공했다. 미래 세대를 위한 일관된 정책과 의지의 결과였다. 파란하늘도 그렇게 되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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