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 적용되며 평균 48만원→14만원선 줄어
지난 11일 오후 서울 강남의 A대학병원. 주말이었지만 이 병원이 보유한 2대의 자기공명영상(MRI) 검사장비 중 1대는 24시간 가동됐다. 병원 측은 나머지 1대도 곧 종일 운영할 계획이다. 지난해 10월부터 뇌ㆍ뇌혈관 MRI검사에 건강보험이 적용되면서 이 병원엔 가벼운 두통을 호소하는 경증환자들까지 검사 예약이 줄을 잇고 있다. 예약부터 촬영까지 걸리는 기간이 지난해 연초만 해도 일주일 이내였지만 최근엔 3, 4주에 이를 정도로 환자가 몰리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MRI검사의 환자 부담은 평균 48만원선에서 14만원선으로 떨어졌다. 이 병원 영상의학과 전문의 정모씨는 “정부가 건강보험 적용을 대대적으로 광고한 덕분에 의사가 보기에는 불필요한 MRI검사를 고집하는 환자가 많아졌다”면서 “외래환자가 늘어나니 상대적으로 병세가 중한 입원환자의 촬영이 야간으로 밀릴 정도”라고 귀띔했다.
◇문재인케어, 쏠림 현상 부채질
상급종합병원(상급병원)의 환자 쏠림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 모든 의학적 비급여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겠다는 이른바 문재인 케어가 본궤도에 오르면서, 상급병원 진입 문턱이 더욱 낮아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1월엔 선택진료비가 폐지됐고 7월부터는 상급병원과 종합병원 2ㆍ3인실 입원에도 건강보험 혜택이 적용됐다. MRI검사 건강보험 적용 역시 2021년까지 모든 신체 부위로 확대될 예정이다. 이처럼 의료비 부담이 줄면서 동네병원에서 치료가 가능한 환자들까지 고급장비와 인력이 있는 상급병원, 특히 수도권 대학병원으로 몰려들고 있다. 상급병원 병상 가동률이 2016년 이미 102%에 달한 상황인데 문재인 케어는 환자쏠림 현상의 촉매제가 된 셈이다. 실제로 지난해 3분기 기준 상급병원에서 사용된 진료비(건강보험수가와 자기부담금)는 2017년 3분기보다 20.5%나 증가했다. 전체 의료기관 진료비 증가율(8.5%)은 물론 종합병원(10.2%)과 병원(4.8%) 의원(6.8%)을 압도하는 수준이다. 또한 전국 의료기관 7만874곳 가운데 42곳에 불과한 상급병원에서 진료비(45조270억원)의 23%가 사용됐다. 이른바 빅(BIG)5 상급병원인 서울삼성ㆍ서울대ㆍ서울성모ㆍ서울아산ㆍ신촌세브란스병원의 건강보험지출(수가) 점유율은 8.5%에 달한다. 2012년(7.7%) 이후 역대 최고치다.
신영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빅5 병원 중 한 곳인 강남 B병원은 지하철역에 셔틀버스를 대기시켜 놓고 지역에서 상경한 환자들을 받아서 각종 검사 수익을 올린다”며 “이 같은 쏠림현상을 방치할 경우 정말 상급병원에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 예약을 하기는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보다 강력한 종별 분업 유인책 필요
의료계에선 상급병원에 환자가 쏠려 중소병원이 고사하면 그 폐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우려한다. 예컨대 수도권 상급병원에서 암 수술을 받더라도 퇴원 이후의 사후관리를 이어갈 지역병원이 부실하다면 치료 효과가 반감된다는 것이다. 또한 건강보험 재정 안정 대책이 미흡한 상황에서 상급병원의 급증하는 의료량을 통제하지 못할 경우, 62.7%(2017년)인 건강보험보장률을 2022년까지 70%까지 높이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보장성 강화계획도 달성이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한다.
복지부는 앞으로 5년 간의 건강보험 운영계획이 담긴 국민건강보험종합계획을 확정하면서 △동네병원으로 환자 회송(돌려보내기)사업 강화 △진료의뢰서 유료화 추진 등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현장 체감도는 낮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병원과 종합병원은 일반적 입원과 수술을, 상급종합병원은 희귀ㆍ난치성 질환을 진료하는 식의 종별 분업을 제대로 하려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일각에선 해외처럼 경증환자의 상급병원 유입을 법적으로 막거나, 경증환자가 상급병원을 찾을 땐 본인부담을 크게 높이는 방안까지 검토하자는 주장도 제기된다. 실제로 경상대병원은 1월부터 원내 가정의학과를 폐쇄했다. 현행법상 상급병원 가정의학과는 동네 병원이 발급하는 진료의뢰서 없이도 외래진료가 가능해서 경증환자 유입통로로 변질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김양균 경희대 의료경영학과 교수는 “상급병원에서 환자가 일정한 금액 이상 진료비 쓴 후에는 자기부담을 늘리는 지출관리체계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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