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율관세 우려 중국진출 업체 몰려… 외국인투자 80%이상 급증
부지 매물 품귀, 가격 두배로… “G2 무역분쟁 최대 수혜자” 평가
베트남 남부 호찌민시와 캄보디아를 연결하는 관문인 목바이 출입국관리사무소 인근에 자리 잡은 '태광 목바이 공단(TMTC)'. 베트남에선 드물게 염색 하수처리 시설까지 갖췄지만, 인구 밀집지에서 떨어진 탓에 2017년 부지 분양 시작 당시 '과연 팔릴까'라는 의구심을 받던 공단이다. 하지만 불과 2년만에 '부지 완판' 선언을 앞두고 있다. 공단 관계자는 "작년 말부터 문의가 급증, 현재 76% 분양률을 기록하고 있다"며 “문의가 여전히 쇄도해 남은 땅도 곧 모두 팔릴 것”이라고 말했다.
국경 지역의 공단은 이 정도지만, 노동력 조달이 용이한 대도시 인근 공단 땅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있다. 호찌민시 한인상공인연합회(코참) 관계자는 “2, 3년 전 ㎡당 40~50달러 수준이던 빈증 공단 내 부지 가격이 100달러까지 치솟았다”며 “요즘에는 그마저도 현금다발을 들고 중국에서 넘어온 기업들 차지”라고 전했다. 중국에서 온 기업들이 속속 공단 빈 땅을 차지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인근의 동나이, 롱안 등 인근 지역의 분위기도 비슷하다.
중국 푸젠(福建)성 샤먼(廈門)에서 15년째 매트리스 생산공장을 운영하던 A업체는 지난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인근 보고르의 한 공단으로 넘어와 올 2월 양산을 시작했다. 전량 미국으로 수출되는 물건들이다. 매트리스 부피를 반 이상 줄여 박스에 담는 기술 덕에 배달도 용이해 높은 인기를 끄는 제품이다. 품질은 1위 업체 템퍼에 뒤지지 않으면서도 5분의 1 이하의 가격을 유지하고 있는 게 최대 강점이다. 업체 관계자는 “미국이 중국 상품에 부과하는 관세로는 이 경쟁력을 유지하기 힘들어 인도네시아로 왔다”며 “우리뿐 아니라 2017년 서너 곳, 작년에도 네댓 곳이 중국에서 이곳으로 왔다. 올해도 인도네시아로 오려는 중국 진출 한국 기업들이 많다”고 전했다. 중국에서 인도네시아로 건너 온 업체 한 직원의 부인은 “미중 싸움이 평범한 주부의 삶을 바꿔놓았다”고 말했다.
미중 무역갈등으로 중국을 빠져 나온 국적불문 글로벌 자본들이 동남아로 몰리고 있다. 특히 저렴한 인건비와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제조업 기반을 갖춘 베트남은 물밀 듯 들어오는 자본에 표정 관리를 해야 할 정도다.
13일 베트남 기획투자부(MPI)에 따르면 올 들어 4월말까지 누적 외국인직접투자(FDI) 규모는 146억9,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동기(80억달러) 대비 80% 이상 증가한 것으로, 이 추세라면 연간 기준으로도 역대 최대치(358억8,000만달러)였던 2017년 기록을 무난히 경신할 전망이다.
해외자본의 투자프로젝트 건수도 급팽창 추세에 있다. 2015~2017년 연 2,500개 수준을 유지했으나, 지난해 신규 프로젝트가 3,046개로 급증하더니 올 들어서는 4개월만에 1,082개를 기록했다. 베트남 경제 전문지 ‘베트남 인베스트 리뷰(VIR)’는 “미국의 고율 관세 때문에 중국을 빠져 나온 생산시설이 베트남으로 몰려들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코트라 자카르타 무역관 관계자도 “한 해 베트남 진출 신고 국내 기업이 600여곳, 인도네시아는 60곳 수준”이라며 “이를 감안하면 중국에서 동남아로 넘어오는 기업 대부분은 베트남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탈중 자본이 아세안, 그 중에서도 베트남으로 몰리고 있는 것은 이 나라가 세계 주요 경제권과 발 빠르게 무역협정을 맺어놨기 때문이다. 베트남에서 생산하면 아세안경제공동체(AEC),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다양한 양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대부분의 나라에 무관세 혹은 저율관세로 수출할 수 있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등의 이슈로 지연되고 있는 EU-베트남 FTA도 올해에는 비준, 발효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코트라 동남아대양주본부 관계자는 “베트남의 수출 대상국 1위가 미국, 수입 대상국 1위는 중국인 점을 놓고 보면 미중 무역분쟁의 최대 수혜자는 베트남”이라며 “총리실은 물론 베트남의 각급 기관 단체가 미중 무역분쟁을 자국 산업기반을 다지는데 활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 기업도 ‘사드 사태’ 이후 중국에서 빼낸 생산시설을 일찍부터 베트남에 재구축하고 있지만, 다양한 국적의 자본들도 제조업, 부동산, 서비스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진출하면서 베트남은 미중 무역전쟁 와중에 지난 1분기 6.8%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중국을 탈출한 자본이 아세안 국가로 몰리는 이른바 ‘탈중입아’(脫中入亞) 현상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지난 1월 홍콩에서 열린 아시아금융포럼에서 참석자를 대상으로 ‘2019년 최대 투자 유망국’을 묻는 질문에 39%가 아세안을, 35%가 중국을 꼽았다. 중국을 택한 비율이 55%에 달했고, 아세안은 18%에 불과했던 2018년 조사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홍콩 매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아세안이 중국을 가리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한편 중국을 떠난 한국 기업들이 베트남으로 쏠리는 건 문제로 지적된다. 박번순 고려대 경제통계학부 교수는 “중국에서의 교훈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며 “베트남에 집중하더라도 주변국에도 투자, 언제 어떻게 닥칠지 모르는 위기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베트남 진출한 외국 기업의 수는 지난 3월 말 기준 한국이 7,661개로 가장 많고, 이어 일본(4,096), 대만(2,620), 싱가포르(2,210), 홍콩(1,501) 등의 순이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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