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이 14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으로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강제징용 손해배상 소송의 재상고심을 앞두고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와 사법부가 긴밀히 소통하며 선고 방향과 일정을 조율했다는 이른바 ‘재판거래’ 의혹에 대한 진술을 하기 위해서다. 재판부는 윤 전 장관의 비공개 요청을 거부했고 윤 전 장관은 공개 리에 진행된 재판에서 “구체적으로 기억나지 않는다”는 답변을 거듭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부장 윤종섭) 심리로 열린 임종헌 전 차장 공판에 나온 윤 전 장관은 외교 기밀 유출을 우려해 비공개 심리를 요청했다. “외교적 측면에서 민감한 기밀사항들이 포함돼 있는 문서가 많은데, 신문 답변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내용이 노출될 경우 국익에 미칠 영향이 심각하게 우려된다”는 이유였다. 그는 또 “실무자들이 이야기하는 것보다 전직 장관이 이야기하면 이해관계가 있는 다른 나라 정부나 국가에서 비중 있게 받아들일 것”이라며 “경우에 따라 내 진술을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이용할 수 있지 않나 걱정된다”고도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비공개 할만한 사유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비공개 요청을 반려했다. 이에 윤 전 장관은 “답하는 과정에서 우회하는 답을 할 수도 있다”고 반박했고 재판부는 “증인선서를 낭독했고, 선서 기재에 따려 사실 그대로 이야기하면 된다”고 쏘아 붙였다. 그러자 윤 전 장관은 “비밀여하에 관계없이 답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검찰은 이날 윤 전 장관을 상대로 당시 외교부가 강제징용 사건과 관련해 대법원에 재판 지연이나 배상 판결 번복 등의 대응 방안을 검토한 사실을 추궁했다. 검찰에 따르면 2013년 12월1일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 주재한 삼청동 공관 대책회의에서 윤 전 장관은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과 차한성 법원행정처장 등과 강제징용 사건을 논의했다.
하지만 윤 전 장관은 당시 상황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했다. 검찰 측 질문에 대부분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수많은 보고서들이 중요성에 따라 장관에게 보고되는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등으로 답변을 회피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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