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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형욱 국무조정실장 “즉석 해결 가능한 민원도 시간 끌면 갑질”

입력
2019.05.17 04:4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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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부 ‘反부패 개혁’ 어디까지 왔나] <5>

신고센터 제도적 토대 마련에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 곧 시행

보조금 부정 수급 AI 기반 모니터링 시스템으로 검증하고 적발

노형욱 국무조정실장은 1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진행된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에게 반칙과 특권을 없애는 반부패 개혁은 시대가 부여한 소명" 이라고 말했다. 이한호 기자
노형욱 국무조정실장은 1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진행된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에게 반칙과 특권을 없애는 반부패 개혁은 시대가 부여한 소명" 이라고 말했다. 이한호 기자

문재인 정부의 반부패 개혁은 역대 정부의 그것과는 다르다. 앞선 정부가 주요 범죄 단속과 수사에 열을 올렸다면, 이번 정부에서는 제도 개선에 역점을 두며 생활 속에 만연한 반칙과 특권을 없애는 데까지 나아갔다. 반부패 개혁을 ‘공정’의 영역까지 확장한 것이다. 정부 내에서 사실상 반부패 개혁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있는 노형욱 국무조정실장은 지난 14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반칙과 특권이 사회 전반에 만연하면서 급기야 국정농단으로 이어졌다. 결국 켜켜이 쌓인 반칙과 특권을 없애고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 달라는 촛불민심이 타올랐다”며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에 있어 반칙과 특권을 없애는 반부패 개혁은 시대가 부여한 소명”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노 실장은 특히 이 같은 문재인 정부의 반부패 개혁은 ‘사회적 혁신’이라고 단언했다. 적폐청산 차원을 너머 국민 눈높이와 시대에 맞지 않는 제도, 정책, 관행을 개선해 나가는 것은 국가가 생존하고 경쟁력을 갖추도록 해주는 혁신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노 실장은 “국제투명성기구가 내놓는 부패인식지수(CPI)는 우리기업의 신용도와도 직결된다. 부패인식지수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만 높여도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이 0.8%포인트 가량 높이는 효과가 있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저작권 한국일보]공공기관 갑질 특별단속 실적 그래픽=신동준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공공기관 갑질 특별단속 실적 그래픽=신동준 기자

노 실장은 일각에서 적폐청산 피로감을 호소하는 데 대해서도 “적폐청산이라는 단어가 주는 거부감이 큰 측면도 있다”면서도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 달라, 반칙과 특권이 없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는 게 여전한 국민적 여망이다. 정치적으로 해석할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에도 부조리나 권력형 비리의 개혁을 얘기하다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되곤 하지 않았냐”며 “일상에서 국민들이 느끼는 불합리를 해소해 나가는 반부패 개혁은 현 정부 내내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할 핵심 과제”라고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반부패 개혁의 의미는 무엇인가.

“역대 정부에서도 부정부패 청산을 외쳤지만, 결국에는 기득권층의 저항에 부딪혀 용두사미에 그쳤다. 그 결과 사회 전반에 걸쳐 반칙과 특권이 일상화했다. 문재인 정부는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근본적 개혁을 추진해 가고 있다. 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언급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필수다. 부정부패 청산뿐 아니라 정책과 제도, 관행까지 뜯어고치는 개혁이다.”

-흔히 말하는 적폐청산과는 어떻게 다른가.

“일상 속에서 발생하는 생활 적폐의 청산이다. 출발부터 불공정한 상황을 없애야 한다. 문 대통령이 약속한 ‘상식대로 해야 이득을 보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회의 평등이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공공기관 채용 비리, 사립학교 입시 비리 등 생활 적폐는 출발부터 불공정함을 만든다.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갑질, 오랜 유착을 바탕으로 한 토착비리 등도 마찬가지다. 일상 생활에서 매일같이 접하는 반칙과 특권을 청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생을 달리한 '고 박선욱 간호사 추모집회'가 서울 광화문역 인근에서 열린 가운데 박 간호사를 추모하는 팜플릿 위에 국화와 촛불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직장 내 괴롭힘으로 생을 달리한 '고 박선욱 간호사 추모집회'가 서울 광화문역 인근에서 열린 가운데 박 간호사를 추모하는 팜플릿 위에 국화와 촛불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2018년 신년사에서 사회ㆍ경제적 약자를 상대로 한 불공정 갑질을 생활 적폐로 규정하고 근절 의지를 밝혔다. 이후 정부는 갑질 사전 예방에서 피해자 보호까지 6단계로 구분한 ‘공공분야 갑질 근절 종합대책’을 내놓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또 공무원 행동강령을 개정해 갑질 개념부터 정립했다. 성실의무ㆍ품위유지의무 등에 뭉뚱그려 있던 것을 따로 떼내 구체화 했다. 징계 기준도 별도로 신설했다. 갑질 정도에 따라 파면ㆍ해임까지 가능하게 했고, 징계 감경 대상에서 제외해 무관용 원칙을 적용토록 했다. 노 실장은 “지난 10개월은 공직사회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의 ‘게임의 룰’을 바꾸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공공분야 갑질 근절에 힘을 쏟았다. 성과가 있었나.

“갑질 문제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제도적 토대를 마련한 것이 성과라면 성과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갑질 문제를 제기하는 것조차 꺼렸다면 지금을 달라졌다. 범정부 갑질피해신고센터를 만든 이후 10개월간 피해 상담 건수가 1,000여건에 이르고, 신고 건수도 늘고 있다. 갑질에 대한 인식이 자라난 결과다. 물론 생각하고 행동하는 기준까지 바꿔내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다. 민간영역까지 확산시켜야 하는 과제도 남아있다.”

-갑질 근절을 민간 영역까지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마땅한 정책 수단이 있나.

“간호사 태움, 조교에 대한 교수들의 갑질 논란 등을 계기로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이른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을 만들었다. 직장 내 괴롭힘의 개념을 명시하고, 피해 예방과 피해자 보호 조치에 대한 의무를 사업주에 부과했다. 갑질 피해를 산업재해에 포함시키도록 했다. 이들 법이 7월 시행에 들어간다면 민간 영역에서도 진전이 있을 것으로 본다.”

-행정을 지연하는 행위를 갑질로 규정한 것이 눈에 띈다.

“즉석에서 해결해 줄 수 있는 민원인데 굳이 시한을 채워가며 처리한다는 것은 부작위에 의한 갑질, 부패 행위로 볼 수 있다. 법령상 해석의 여지가 다양하고, 좀 더 적극적으로 민원인 입장에서 해석해 줄 수 있는 데도 굳이 피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신산업ㆍ신기술 출현으로 사회는 급격하게 변한다. 법ㆍ제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이를 해석, 적용하는 행정마저 소극적이라면 행정 자체가 걸림돌이 된다. 행정과 현장의 간극을 좁히지 못한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공무원이 복지부동 하게 되는 데는 뒤따르는 책임 문제도 있지 않나.

“적극 행정을 유도하려면 과감한 면책이 뒤따라야 한다. 우선 업무 추진 과정에서 중대한 절차상 하자가 없으면 면책하도록 했다. 감사원이 사전컨설팅을 통해 책임 범위를 분명히 해주는 제도도 활성화 하도록 했다. 아울러 승진ㆍ포상 등 인센티브를 획기적으로 강화할 계획이다.”

노형욱 국무조정실장이 14일 한국일보와 코리아타임스 공동 인터뷰에서 국고보조금 부정수급 문제 근절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심현철 기자 shim@koreatimes.co.kr
노형욱 국무조정실장이 14일 한국일보와 코리아타임스 공동 인터뷰에서 국고보조금 부정수급 문제 근절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심현철 기자 shim@koreatimes.co.kr

문재인 정부의 반부패 개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과제는 국고보조금 부정수급 문제다. ‘어금니 아빠 사건’을 비롯해 보조금을 ‘눈먼 돈’ 취급하는 심각한 도덕적 해이가 만연해 있다는 증거가 곳곳에서 드러난 탓이다. 청와대가 직접 ‘보조금 부정수급 근절 협의회’를 주관하는 등 개혁을 주도하고 있다. 특히 사후 적발ㆍ처벌보다 범죄 유인을 사전에 제거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노 실장은 “받아서는 안 될 ‘세금 도둑’이 보조금을 타가면 정작 꼭 필요한 사람이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게 더 큰 문제”라고 강조했다.

-반부패 5개년 계획 50개 과제에 포함될 정도로 보조금 문제가 심각한가.

“보조금 부정수급은 정부 불신을 키우는 중대 범죄다. 복지사각지대 해소와도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공공재정 측면에서도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 올해를 기준으로 보조금 총액은 77조 9,000억원에 달한다. 정부 총지출(469조여원)의 16.5%로 규모도 적지 않다. 정부출연금까지 합치면 100조원이 넘어갈 정도다. 소홀히 할 수 없는 문제다.”

-뿌리가 깊은 문제고, 적발도 쉽지 않다. 묘수가 있나

“결국 시스템의 문제다. 대상자 선정 단계에서 보조금을 받아선 안 될 사람을 걸러내는 게 중요하다. 재산ㆍ소득, 금융거래 등을 사전 점검만 했어도 걸러질 수 있는 부분이 없지 않다. 각종 행정정보를 연결한 통합관리시스템을 만들었다. AI(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부정수급을 검증하고 모니터링 하는 시스템이다. AIㆍ공공빅데이터 등을 활용해 부정수급 패턴을 찾고, 부정수급 징후를 사전에 발견해 해당 부처에 통보하도록 하는 조기경보시스템을 갖추게 됐다. 아울러 부정수급 사실이 적발되면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원천 배제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하고, 신고자에게 최대 30억원의 포상금을 지급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등 부정수급을 막을 이중ㆍ삼중의 차단망을 마련했다. 부정 수령금의 최대 5배를 과징금으로 부과하는 징벌적 제재도 최근 국회를 통과해 내년 1월 시행된다.”

인터뷰에서 노 실장은 문재인 정부의 반부패 개혁은 중단 없이 추진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히 반부패 개혁에 동의하면서도 적폐청산에 대해서는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데 대해서도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만들어 내라는 요구로 해석했다. 노 실장은 “적폐라고 하면 국정농단 수사를 많이들 생각한다. 권력형 부조리, 적폐청산 부분은 어느 정도 마무리가 돼 가고 있는 걸로 보인다”면서 “하지만 생활 속 부조리, 적폐청산은 계속 돼야 할 부분이다. 정치적 찬반으로 해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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