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천호 ‘에코맘’ 대표

또 다시 사업을 접어야 하나, 고민을 거듭했다. 경남 하동군에서 녹차 농사를 짓던 배태민(47)씨는 작목을 매실로 바꿨지만 여전히 수지가 맞지 않았다. 이후 양봉에도 손을 댔으나 같은 이유로 실패했다. 그러다 2017년 7월부터 양계 사업을 시작했다. 약 3만9,669㎡ 면적의 임야에 닭 500마리를 풀어 놓았다. 배씨는 “친환경 식재료에 대한 관심이 커진 만큼 건강한 닭이 낳은 건강한 달걀이라면 시장에서도 경쟁력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곧바로 위기가 찾아왔다. 판로를 뚫는 일부터 만만치 않았다. 소규모 양계 농가여서 인지도를 쌓는 것조차 어려웠다. 30구에 1만2,000원 하는 달걀은 창고에 쌓여 갔다. 유통기한이 지난 달걀을 울며 겨자 먹기로 땅 속에 파묻었다. 배씨는 “품질이 좋은 달걀을 생산해도 팔 수 없는 현실이 답답했다”고 말했다. 당시 월 소득은 50만~100만원에 그쳤다.

그랬던 그가 “요즘은 일하는 게 재미있다”며 닭을 2,000마리까지 늘릴 계획을 세우고 있다. 배씨에게 ‘일하는 즐거움’을 다시 선물한 기업은 같은 지역의 사회적 기업인 ‘에코맘의 산골이유식(이하 에코맘)’이다. 그는 지난해 10월부터 에코맘에 자연방사 계란 전량을 납품하고 있다. 배씨는 “살 맛 나는 시골을 만들려면 지역사회의 우수한 농산물을 우선 소비하는 사회적 기업이 보다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오천호 에코맘의 산골이유식 대표가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이자, 친환경 농산물을 공급받는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들판을 소개하고 있다. 에코맘의 산골이유식 제공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

2012년 설립된 에코맘은 하동군의 74개 농가로부터 쌀과 달걀, 소고기, 파프리카, 양파, 감자, 고구마 등 이유식과 유아 반찬 등에 들어가는 식재료를 납품받고 있다. 모두가 친환경 유기농 방식으로 재배된 것들이다. 현재까지 구매한 지역사회 식재료만 40억톤에 달한다. 지역 농가는 가격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친환경 농작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며 소득을 올릴 수 있고, 에코맘은 신선하고 검증된 식재료를 받을 수 있다.

에코맘의 정체성을 이유식 제조회사가 아니라, 농업 회사라고 설명한 오천호(37) 대표는 “어려움에 처한 농촌을 살리고, 유기농법을 통해 미래 세대에 건강한 땅을 물려주려는 좋은 일도 훌륭한 사업 아이템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가 회사 이름에 ‘에코’란 단어를 쓴 것도 우리 땅을 살리는 친환경(eco) 기업 활동이 사회에 울림(echo)이 됐으면 좋겠다는 이유에서다. 에코라고 읽히는 다른 뜻의 두 영어 단어를 고려해 이름을 지은 것이다.

에코맘은 지역과 기업이 상생하는 구조를 만들며 몸집을 키우고 있다. 매출은 설립 첫해인 2012년 1억원에서 지난해 70억원을 기록할 정도로 급격히 늘었다.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과 롯데백화점 명동 본점, 진주 갤러리아백화점 등 10곳이 넘는 백화점에 입점할 정도로 입소문도 탔다. 올해 매출 목표는 150억원이다.

에코맘에서 일하는 직원 수도 설립 당시 3명에서 현재 70여명으로 증가했다. 모든 직원을 지역 농민과 여성, 고령자, 지역 출신 대학 졸업자로 고용했다. 수매 단가를 시장 가격보다 높게 책정해 안정적으로 농산물을 공급할 수 있게 한 계약 농가 수 역시 2013년 4곳에서 현재 74곳으로 늘었다. 지역 농산물로 만든 제품으로 벌어들인 돈을 농작물 납품 농가 확대, 지역의 사회적 약자 고용 등으로 또다시 지역에 투자하며 지역과 기업이 함께 성장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는 셈이다. 에코맘이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리면서 하동군도 “평사리 들판을 농업과 환경, 관광이 어우러진 먹거리 단지로 조성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오 대표는 이유식 업계 최초로 2015년 12월 농림축산식품부의 ‘이달의 6차 산업인’으로 선정됐다. 6차 산업이란 1차 산업인 농ㆍ수산업과 2차 산업인 제조업, 3차 산업인 서비스업이 복합된 산업을 말한다.

사회적 활동을 새로운 수익모델로 삼아

에코맘은 2012년부터 5년간 지역사회에 5억1,600만원을 기부했다. 지금도 다문화가정 등 100여곳에 이유식을 후원한다. 이 같은 사회적 활동이 사회적 활동으로 끝나지 않고, 새로운 수익 모델로 이어지는 게 에코맘의 특징이다. 출범 초기 에코맘은 출산 전ㆍ후 여성을 위한 산모식과 이유식을 사업 소재로 삼았으나, 미혼모ㆍ다문화가정에 이유식을 후원하면서 이유식 시장에 확신을 갖게 돼 이유식 사업에 집중하게 됐다.

오천호 에코맘의 산골이유식 대표가 회사 텃밭에 청경채, 비트, 브로콜리 등을 심은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에코맘의 산골이유식 제공

오 대표는 “하동군 13개 면에 계신 동네 어르신들에게 연간 30차례 죽을 나눠 드리는 ‘사랑의 죽’ 활동을 하다가 아이디어를 얻은 게 현재 추진하고 있는 실버푸드”라고 말했다. 이어 “이유식과 죽은 태어나서 처음 먹는 음식이자, 생애 마지막에 먹는 음식”이라며 “사람이 스스로 자기 몸을 돌볼 수 없을 때 먹는 것인 만큼 친환경 식재료로 만든 죽이라면 향후 실버푸드 시장이 열렸을 때 경쟁력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올해 초에는 이미 초고령사회(65세 이상 고령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인구의 20% 이상)에 들어선 일본에 현장 답사를 다녀왔다. 국내 고령화 속도는 매우 빨라 한국은 2000년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이 7%를 넘기며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 2017년엔 이 비율이 14%를 웃돌아 고령 사회에 들어섰다.

에코맘은 2022년까지 농장(farmㆍ팜)과 캠핑을 합한 ‘팜핑’과 농민요양병원을 하동군 평사리 일대에 선보일 계획이다. 지역 경제 활성화와 농업에 대한 인식 전환, 친환경 농산물 보급 확대 등을 위해 도시 사람들이 직접 농사를 체험하면서 자연 속에서 휴양할 수 있는 팜핑장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오 대표는 “농민요양병원 건립은 일평생 땅을 일군 어르신들이 우리 땅에서 난 실버 푸드로 건강을 지키고, 평사리의 넓은 들판을 보면서 본인의 삶에 보람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나온 계획”이라며 “농민요양병원은 사회적 활동이 건강한 이윤을 낳을 수 있다는 걸 보여 주는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농업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사회적 기업이 생겨나 새로운 바람이 불고, 착한 수익 모델이 성공하기 시작하면 농촌도 다시 희망을 갖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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