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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안과 밖] 담뱃값 경고 그림 무섭지 않다는데…

입력
2019.05.19 14:00
수정
2019.05.19 18:55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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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지인이 상을 당해 대학병원 장례식장을 다녀왔다. 망자에게는 죄송하지만 평소 연락을 하지 못했던 친구들을 만나니 반가웠다. 식사를 마친 친구들이 하나 둘씩 사라졌다. 이야기도 하지 않고 갔나 싶어 남아 있는 친구에게 물어보니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고 한다. 장례식장 뒤편에 마련된 흡연부스에는 흡연자들로 가득했다. 친구들이 들고 있는 담뱃갑을 보니 보기에 끔찍한 그림이 부착돼 있었다. “이걸 보면서도 담배를 피우니”라고 면박을 줬지만 친구들은 “솔직히 그림을 봐도 별로 무서운 생각이 들지 않는다”며 담배를 피웠다.

2016년 12월 최초로 도입된 담뱃갑 경고그림이 작년 12월 새 그림들로 교체됐다. 기존 그림보다 훨씬 경고 수위가 높은 그림으로 교체했다는 것이 보건당국의 전언이다. 그동안 경고그림이 적용되지 않았던 전자담배에도 경고그림이 부착됐다.

경고그림 교체는 결국 ‘공포 수위’의 증폭이 아닐까 싶다. 경고그림에는 환자의 매우 구체적 모습이나 질병이 치명적 단계에 이르렀을 때의 상황 등이 시각화돼 새겨져 있다. 이렇게 하면 흡연자들이 담배를 끊고 금연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 보건당국은 믿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잠시 공포감을 경험한다고 사람들이 금연을 생각한다거나 혹은 흡연을 하지 않는 신념을 갖게 된다고 보장할 수 없다. ‘무서움’은 매우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감정이다. 현재 경고그림에 새겨진 환자들의 투병 모습은 분명 공포감을 주지만 불쾌감을 가질 뿐 흡연욕구를 잠재울 정도로 설득력이 강하지 않을 수 있다.

경고그림 수위가 높아지자 역으로 경고그림을 가리는 담뱃갑 케이스들이 날개 돋치듯 팔리고 있다. 편의점은 물론 인터넷에서 구입할 수 있는데 다양한 디자인으로 흡연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시장은 무서우면 피하고, 더욱 무서워지면 회피하려는 인간의 마음을 공략해 경고그림을 무력화시키고 있어 아무리 무섭고 끔찍한 그림이 나와도 흡연자들이 그림을 보고 금연을 결심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친구들에게 “여기에 니코틴이 중독, 발암물질에 노출된다고 써 있다”고 하자 친구들은 “니코틴 말고도 온 세상에 발암물질이 널려있다”며 웃는다. 한 친구는 “그러면 술은? 미세먼지는 어떻게 할 거야?”라며 되물었다.

백해무익한 것이 담배지만 사람들은 담뱃값을 올려도, 경고그림을 부착해도 여전히 담배를 핀다. 결국 담배로 인해 병원을 찾을 것이고, 누군가는 원치 않게 삶을 마감할지도 모른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병원만 이익을 보는 장사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자, 망자 모두 그들의 고객이기 때문이다. 담뱃값 경고그림이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날이었다.

유현재 서강대 지식융합미디어학부 교수(서강헬스커뮤니케이션센터장)

유현재 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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